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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Apr 21. 2023

여름 눈사람

한돌의 시

갑자기 더워진 여름에는 눈사람이 되고 싶다

차가운 심장으로 따뜻한 사람을 호러하는

핀란드 크리스마스 마을의 나무 장승

나보다 어리다고 생각한 스무살

눈싸움하면 일부러 눈 감던 너처럼

우리 눈싸움한 설악동 마을의 민박집

배낭에 묻은 여름 바닷가 모래들

영월 고씨동글

아프리카 마을의 검은 장승

나는 너의 눈동자에 남으려 했는데

너는 날 흔적없이 마른 코 삐뚠 눈사람으로 대했나봐

그 겨울

댓병 막소주에 취해 잠든 설악산은

밀가루처럼 눈을 마구 뿌려댔지

새벽에는 1미터의 눈속에 갇혀 있었지

등산로 폐쇄되고 도로 모두 막히고서

차가 다닐 수 없어 물치까지 걸어가다보니

3월 개강날이 지났었지

모두 설악산에서 조난당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났고

눈에 갇혀 산꾼 몇몇 죽었고     


기 쓰며 살다보니 지금껏 살았다     


너 나 같이 빠졌던 눈 쌓인 울산바위

차라리 빠져 버릴까 했던 눈구덩

빠지지 않으려 묶어둔 게 몸이었나 맘이었나     


흰 모래는 영원한 태고(太古)

파란 하늘에는 솜털구름 신기루

그대 고운 검은 눈동자

사랑의 역사 18번으로

내가 네 눈의, 나는 네 눈의 사랑

모두 사라진 젊은 기쁜 날

눈마을에 핀 우리 여름 백사장      



(여름 눈사람) 픽사베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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