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무원으로 일하던 2008년에 『무심천에서 과천까지』라는 자전 에세이를 썼다. 거기에서 그때까지 거의 50년동안의 인생을 적어보았다. 그러다가 이번에 루소의 고백록을 정독하였다.
- 『고백록』 장 자크 루소 지음, 박순만 옮김, 집문당, 1971(7판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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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라는 인물은 매우 매력적이지만,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문명과 사회 발전에 관한 글을 쓰면서 사회개혁을 꿈꾸지만, 나이가 들수록 현실 사회와 등을 돌리고, 점점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당하다가, 나중에는 프랑스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를 마련한 사람이 된다. 이 문제적 인물의 자서전 『고백론』은 벌써 250년이 지난 이야기인데도 현재도 매우 신선했다.
‘루소는 평생 1만 6천 페이지 이상의 글을 썼다. 그는 정치적 자유와 평등의 개념, 자연으로의 복귀, 새로운 교육관, 위대한 문학의 주제들을 다루었다.
그의 이론들은 웅변의 뜨거운 열기와 탁월하게 연마된 언어를 통하여 음악과 같은 울림을 가지고 전개된다.
사회에서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내세우기 위하여 겉모습(paraître)을 위장하고, 힘 있는 자들은 멋대로 법을 휘두르며 약한 자들을 착취하면서 선량한 본성을 잊어버린다. 지식인들은 자신의 지식을 출세의 도구로 이용하면서 권력과 야합한다. ’
(『프랑스 작품선』 이용철·오영주, 방송대출판부, 2016) 124~132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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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는 바람에 그리 되었나 모르겠다 (루소를 낳고 며칠 후 어머니가 사망한다).
루소는 공상적이고 정열적인 기질, 자부심, 부정에 대한 글을 쓴다. 사회에서 소외되어 가면서 50살을 넘어 살아온 인생 기록을 고백록(Les Confessions)으로 쓰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조그만 일상과 생각을 모두 담아 기록으로 남기려는 시도가 무엇이었나 말이다.
여기에 ‘엄마’라고 등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바랑부인이다. 루소는 20살 되기 전에 우연히 바랑부인을 만났는데, 언제부턴가 책에서 바랑부인을 ‘엄마’라고 부르고 있었다.
‘나에게 있어서 그녀는 누님 이상이었고, 어머니 이상이었고, 여자친구 이상이었고, 또 애인 이상이기도 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여인의 팔에 안겨 있는, 더구나 사랑하는 여인의 팔에 안겨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마치 근친상간의 죄를 범한 느낌이었다. 나는 그녀를 꽉 껴안고 눈물로 그녀의 가슴을 얼마나 적셨는지 모른다.---(184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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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7~1740년(25세~28세)에 루소는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 모양이다.
‘나는 아침 해와 함께 일어난다. 행복하였다. 나는 산보를 한다. 행복하였다. 나는 엄마를 마주 대한다. 행복하였다. 엄마 곁을 떠난다. 엄마가 그리워진다. 나는 숲속이나 언덕을 달리고, 계곡을 거닐고, 책을 읽고, 빈들거리고, 정원을 가꾸고, 과일을 따고 집안일을 거들었다. 행복은 어딜 가나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 행복은 어디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몸 안에 있었으므로 잠시도 나를 떠나는 일이 없었다.(200쪽에서)’
내가 인생(나는 지금껏 루소와 같은 길이의 인생을 살았다)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 시기가 언젤까 생각해 본다. 루소는 25세부터 28세라고 했는데, 이 나이에 나는 대학 졸업 후 해병대 장교로 입대하여 전방에서 근무하던 시기였다. 아마 가장 육체적 고통이 컸던 훈련시절이 지나며, 점차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내가 완성되어 간다고 느꼈던 시기가 아닐까. 아마 나도 이 나이가 가장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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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가 파리 하숙집에서 만난 테레즈 사이에서 아이 5명을 낳고는 고아원에 버린 부분에서 나는 갈등을 느꼈다. 그는 교육론을 쓴 사람인데,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아닌가라고?
그런데 이 자서전을 보니, 루소와 테레즈는 처음부터 결혼은 하지 않기로 하였고, 나중에도 테레즈와 (가끔은 장모도 함께) 살았다는 점에서 그의 사정을 이해해 보기로 했다.
‘나에겐 일정한 수입은 없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재능과 명성은 있었다. 거친 음식에 익숙한 편이었고, 비싼 물건을 사들인다거나 허례허식은 일체 멀리했다. 다소 게을러지기는 하였으나, 다급한 일에 부닥뜨릴 때는 곧잘 해결해 나갔다. 이러한 나의 게으름은 무위를 바라는 자의 나태라기보다 마음이 내켜야 일하는, 즉 독립심이 강한 사람의 게으름이라 할 수 있다.(316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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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백록 3부를 쓰려고 했다. 그런데 사회에서 점점 멀어지고, 『에밀』과 『사회계약론』이 금서가 되어 소각되기에 이르렀으니, 그의 고통이 어떨까 모르겠다.
말년에 이르러, 1772년에 자신이 자신을 심판하려고 『루소는 장 자크를 심판한다(Roussau juge de Jean-Jacques)』를 쓰기 시작하고, 1776년에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Rêveries du promeneur solitaire)』을 시작하여 10장까지 쓰다가 미완성으로 죽기에 이른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문경자 옮김, 문학동네, 2016
이 책의 첫번째 산책의 앞부분을 옮긴다.
‘마침내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나 자신 말고는 형제도, 이웃도, 친구도 교제할 사람이 없는 외톨이가 되었다. 인간들 중에서 가장 사교적이고 정이 많은 내가 만장일치로 인간 사회에서 쫓겨난 것이다.---그들에게서, 또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온 나, 나 자신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 내게 남겨진 탐구의 주제다. (7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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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껏 나도 루소의 삶(1712~1778년)과 비슷한 길이의 인생을 살았다. 아니 어쩌다보니 살아내었다. 앞으로 무얼 해야 하나. 루소처럼 새로 『고백록』을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