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 이야기 13
9월 1일은 일본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큰 사건이 있었는데, 관련된 나라 중 피해자 쪽인 그 나라는 웬일이 있었나 잊어(?) 버렸고, 가해국에서만 미미하지만 소식이 전해진다.
조선일보가 요즈음 연속 보도하는데, 오늘 자 기사 2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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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일어난 1일 저녁부터… 日경찰 “조선인이 살인 방화” 유언비어 퍼뜨려
계엄군, 다음날 조선인 살해 시작
日 일부 언론도 가짜뉴스 가담
유석재 기자, 입력 2023.08.29. 04:15
1923년 9월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이 혼란을 틈타 공격해 오고 있다’는 유언비어는 빠르게 유포됐고, 그 중심에는 일본 정부와 군·경이 있었다.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규모 7.9의 대지진이 도쿄·요코하마 등 간토(關東) 지방을 휩쓸어 10만 명 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공작을 펼치기 시작했다. 야마다 쇼지 릿쿄대 명예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지진이 일어난 1일 저녁부터 일본 경찰은 “조선인이 살인 방화를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다음 날인 2일 소문은 더욱 빠르게 퍼졌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산업시설을 파괴하고 있다” “약탈과 강간까지 하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일본 군인과 경찰관에 의해 퍼졌다. 고(故)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여러 지구의 경찰서장이 “조선인은 죽여도 좋다”고 공공연히 발언했다고 생전에 밝혔다.
2일 오후 6시에 계엄령이 선포됐고, 내무성 경보국장 고토 후미오의 명의로 “조선인이 각지에서 방화하고 있으며, 폭탄을 소지하고 석유를 뿌리는 자가 있으니 엄밀하게 단속하라”는 전문(電文)이 전국에 발송됐다. 실탄을 가진 계엄군이 출동해 도쿄와 지바 등에서 조선인을 살해했고, 퇴역 군인 등으로 구성된 무력 조직인 자경단(自警團)이 각지에서 조직돼 거리를 활보하며 학살을 자행했다.
군·경의 전문을 근거로 일부 언론이 생산한 ‘가짜 뉴스’ 또한 유언비어 유포에 한몫했다.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을 쓴 와타나베 노부유키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연구에 따르면, 9월 3일 발행된 오사카 아시히신문은 ‘조선인이 폭탄물을 들고 석유통을 운반해 방화하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것은 이날 오전 지바현의 해군 송신소에서 발신된 전문에 의한 것이었다. 4일 자 나고야신문은 ‘조선인이 열차 폭파 계획을 자백했다’고 했으나 이후 이 사건과 관련된 기록은 전혀 없다.
‘조선인 폭동’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자, 일본 정부는 5일 임시진재사무국 경비부 명의로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풍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이것이 사실이 되도록 긍정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는 해괴한 결정을 내렸다. 자신들이 유포한 유언비어가 사실인 것처럼 날조해 학살 책임을 은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후 일본 사법성의 조사에서 방화·살인·강도·강간 등을 저질렀다는 조선인 120명 중 115명은 ‘성명 불명(不明)’이었고 나머지는 ‘소재 불명’ ‘도망’ ‘사망’이었다. 소문의 실체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지금 일본에서 대부분의 양심적인 사람들은 ‘조선인 폭동’이 조작됐다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일부 극우 세력은 여전히 그것이 사실이었다고 주장한다”며 “관동대지진의 가짜 뉴스가 아직도 유포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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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목에 걸린 가시 놔두고 진정한 화해는 어려워”
[日 관동대지진 100년… 묻혀진 조선인 학살] [3]
도쿄=성호철 특파원
입력 2023.08.29. 04:14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목에 걸린 가시’와 같습니다. 이 문제를 숨긴 채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요.”
일본 도쿄에서 최근 만난 입헌민주당의 스기오 히데야(杉尾秀哉·66) 참의원 의원(상원 의원)은 “진정한 화해를 하려면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역사와 마주하고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 새로운 일·한 관계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9월 1일 규모 7.9인 강진이 도쿄를 덮치고 나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같은 유언비어가 번져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일본 정부는 공식 조사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 조선인 학살은 금기어처럼 여겨진다. 그 가운데 일본 방송사 TBS 기자 출신인 스기오 의원(2선)은 지난 5월 국회에서 다니 고이치 일본 국가공안위원장(장관급)에게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를 요청했다. 일본 국회에서 의원이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를 공론화한 건 100년 만에 처음이었다.
- 정치인들이 꺼리는 조선인 학살 문제를 공론화한 이유는.
“정치인이 되기 전에도 관동 대지진 때 유언비어 탓에 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알았다. 다만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는 잘 몰랐다. 알아보니 ‘(조선인 학살은) 정부가 조사한 바로는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록을 찾을 수 없다’가 입장이더라. 기록조차 인정하지 않고, 분명히 잘못인데도 100년간 관련한 국회 질의·응답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 조선인 학살은 일본 역사 교과서에도 실린 역사적 사실 아닌가.
“맞는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경찰·헌병 같은 공적인 입장의 사람들이 (학살에) 가담했다고 쓰여 있다. 2008년에 일본 내각부 산하의 중앙방재회의가 낸 보고서도 조선인·중국인 학살에 대해 기술(記述)했다. 중앙방재회의 보고서는 정부가 의뢰해서 나온 보고서다. 그런데도 부정한다. 일본 국회도서관에도 공식 기록이 있다. 그 사본을 보여주며 국회에서 질의했는데 정부의 답변은 ‘기록을 찾을 수 없다’였다. 자료를 더 모아, 다음 달 열리는 국회에서 다시 한번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다.”
스기오 의원이 말한 ‘일본 국회도서관의 공식 기록’은 이른바 ‘사이토 마코토 문서’로 사이토가 조선 총독을 지낸 1919~1927년, 1929~1931년 기록된 공식 문서 중 일부를 가리킨다. 당시 조선총독부 조사 결과 최소 813명이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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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태형령을 아는지?
오늘날에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에 태형(笞刑) 제도가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일제강점기 때 태형이 있었다.
1910년 조선(대한제국)을 강점한 일본은 1912년 〈조선태형령〉을 만들어, 일본인에게는 적용하지 않고, 조선인에게만 태형을 도입한다. 그러다가 1919년 3·1운동 이후 소위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이 법령을 폐지하였다.
시사상식사전에서 찾은 자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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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태형령(朝鮮笞刑令)
1912년 일제가 조선인에 대해 합법적 처벌수단으로 태형(笞刑, 작은 곤장으로 죄인의 볼기를 치는 형벌)을 시행할 수 있도록 제정한 법령으로, 3·1운동 발생 후인 1920년 폐지됐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통치하던 1912년,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조선인을 물증이나 정식 재판 없이 임의로 잡아다가 태형을 처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을 말한다. 당시 일제는 이를 근거로 독립운동가나 항일사상가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조선형사령>에서는 조선시대의 형전(刑典) 가운데서 태형 규정을 계승한 악질적인 태형령(笞刑令, 1912)을 문서화하였다. 그러나 1919년 3·1 운동 이후 일제는 소위 ‘보통경찰통치’를 표방하면서 태형령은 폐지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태형령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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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조선태형령이 없어졌지만 일제의 고문은 계속되었다. 이제는 그들이 만든 법에서도 허용하지 않는 형태로. 2023년 관동대지진에서 일본 군경이나 민간인 위주의 자경단(自警團)이 조선인을 살해한 것도 이것과 연속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치 문명의 혜택을 모르는 미개인을 다루는 것처럼 수천 년 이웃이던 나라를 취급하였다. 이것이 일제 강점기 식민지배의 원형이고, 문제점이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의 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100년 전 일 때문에 미래관계를 망칠 수 없다는 이야기도 맞다. 그러나 당사국 중 한쪽은 사실인정을 거부하고, 다른 쪽은 여기에 대해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으니 말이 되는가? 역사적 사실인데, 이걸 그저 묻어버리자 하면 없어지고 잊히는가?
지난 4월 윤석열의 WP인터뷰 발언을 내가 잊지 못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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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100년전 일로 日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 못받아들여” (동아일보)
신나리 기자 , 허동준 기자
입력 2023-04-24 20:25업데이트 2023-04-24 20:41
윤석열 대통령이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이) ‘무조건 무릎 꿇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의 안보 불안 문제가 시급해 일본 정부와의 협력을 미룰 수 없었다면서 이같이 말한 것.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일 관계 개선 및 한미일 안보 협력 중요성 등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일본이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아직 ‘성의있는 조치’를 보이지 않고 있고 한일 관계의 민감성을 고려할 때 발언에 신중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은 24일 공개된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지금 유럽에서는 지난 100년간 참혹한 전쟁을 수차례 겪고도 미래를 위해 전쟁 당사국들이 협력하고 있다”며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무조건 안 된다’거나 ‘(일본이) 무조건 무릎 꿇어라’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인터뷰는 20일 진행됐다.
윤 대통령은 “이는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국민) 설득에 있어서는 저는 충분히 했다고 본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일본 정부와의 협력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절대 납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WP는 전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한일관계 관련 내용에 대한 추가 설명’ 취지로 자료를 내고 “(무릎을 꿇으라는) 이런 식의 접근이 미래 한일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라며 “한일관계 정상화는 꼭 해야 하며, 늦출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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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신문이 1면에 이 사실을 보도하였다.
(2023년 6월 13일자 요미우리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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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나라 이야기』 는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는 나이에도 잘 이해되지 않는 이상한 나라 이야기를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