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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Jun 01. 2022

푸른 하늘을 쳐다보았다, 해병대의 추억

6월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가 선진국에 이르기까지 나라를 위해 헌신한 분들께 감사드린다. 오늘은 문득 떠오르는 군생활의 추억 중 평생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한다.       


1983년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나는 이때 김포·강화지역의 해병대 청룡부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날  우연히 나는 ‘이제 죽었다’는 임사(臨死)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때는 70여 일 전 이웅평이 미그기를 몰고 귀순하는 바람에 전방에는 경계태세가 강화된 시기이기도 하였다.     


야간 당직근무를 한 탓에 오전에 부대 안에 있는 비오큐(BOQ)에서 자고 나서, 점심 식사 후 테니스 코트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지하상황실에서 상황병이 뛰쳐나오며 ‘실전상황이다. 총원 전투배치하라’고 소리치고, 부대 스피커가 ‘실제 상황입니다. 지금 서울지역을 적기가 공습하고 있습니다.’고 웅웅댄다.     


그때 연병장에는 부대원들이 웃통을 벗고 반바지 차림으로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전투배치명령에 미처 군복도 챙기지 못하고 철모에 소총과 실탄만 챙겨 들고 각자 맡은 지역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어떤 해병대원은 무거운 중기관총(캘리버 50)을 혼자 메고 대공초소로 올라가고 있었고.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기에 군복부터 갈아입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테니스 코트에서 비오큐(BOQ)까지는 약 200미터 정도. 만일 실제 상황이라면 전방부대 본부인 이곳에는 적의 집중 포격이 있게 되고 포탄이 날아오는 시간을 감안하면 숙소에 이르기까지 살아남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뛰어가다가, 어차피 ‘나는 죽었다’하고 천천히 걸으며 하늘을 쳐다보는데,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이렇게 죽다니 억울하다’는 생각이었다. 이렇게 푸른 하늘, 꽃 피는 아름다운 계절에 (군인이 되어 총 한 도 제대로 못 쏘아보고, 좋은 세상을 내버려 두고 등등) 죽다니 --- 이건 아니다 싶었다.


머릿속에는 어릴 적에 고향(청주) 무심천에서 물고기 잡던 일, 어머니와 외가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일(아마 3~4살 정도), 그리고 이런저런 등 그때까지 살아왔던 인생(아마 인생의 전부)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밀려오고 있었다.      


숙소에서 복으로 갈아입고, 부대 본부에서 당직병이 건네주는 권총과 탄창(2개)을 받고나서 먼저 지하상황실에 들렀다. 이때도 역시 ‘서울은 현재 공습 중’이라는 방송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때 ‘옛다 모르겠다’하며 상황실 옥상에 올라가서 남쪽 서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폭격은커녕 흰구름이 떠가 맑은 날씨였다. 이상하다 하며 있는데 중국 민항기가 불시착했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좀 있다 보니 비상이 해제되었다.  

            

한편, 1983년 가을, 권총 사격장에서 겪은 사건이다. 작업모를 쓰고 45구경 권총 사격을 하는데, 마침 옆을 지나던 사격장 관리병이 “장교님 철모 좀 쓰세요”라고 하길래 화이바(방탄 헬멧, 흔히 철모라고 불렀다)를 쓰고 나서 2초 후에 내 철모가 빙 돌았다. 누군가 오발한 권총탄이 내 철모를 빗겨 맞춘 것이다.      


이런 일들이 모두 40년쯤 전인데 여태껏 내가 살아 있다니!   


나는 해병대 시절 이런저런 일들을 ‘푸른 언덕의 전설’로 기억한다. 그날 약 20초 동안 ‘나는 지금 죽었다’ 고 생각할 때 스쳐가던 파노라마와 철모에 총알을 빗맞은 밤에 잠이 오지 않아 철모의 약간 헤어진 헝겊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던 이모저모를 지금이라도 제대로 적어낼 수 있다면 아마 불후의 명작이 될 것이다.         


다음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중계방송을 보고 나서 써둔 글이다. 이때 나는 이제 남북통일이 되는구나 싶었고, 해병대 시절(총 40개월) 전방에서 근무했던 시간들이 내게 송두리째 달려온다고 느꼈다.



해병대 - 통일이 된다고 기뻐서 쓴 글 -      


구름 한 점 없는 토요일

며칠 전 봄비 내려 공기가 풋풋하다

보름 앞둔 둥근달이 휘둥그레 내려다 보고

개밥바라기 별이 저녁 점호에 구령하듯 반짝인다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MDL에 평화와 번영의 소나무       

한라와 백두의 흙

한강과 대동강 물     


34년 전 해병대가

김포 애기봉, 강화 고려산, 석모도, 교동도에서 날아왔다      


호랑나비 성큼성큼

인삼밭 꽃뱀

임진강 물수제비

벚꽃잎 염하강변

슬퍼진 애기감꽃

후덕했던 호박꽃

바람난 엘레지꽃     


맘속 한켠에 다시 모여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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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난 정부의 남북 접촉이 모두 정치적 어젠다처럼 보여 화가 난다. 이나저나 지금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1천 년(고려 개국 918년~1945년 광복) 하나로 살던 우리가 무엇 때문에 갈라져 있고, 우리를 둘러싼 4대 강국(미일중러)이 우리 일에 왜 간섭하고 있는 지다.


이제 세계 경제력 10위, 국방력 6위의 나라다. 우리 지정학(K-지정학) 제대로 정립하여 '바른 역사와 전래의 강역'되찾는데 모두 함께 노력한다면 멀지않은 장래에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올해는 강화도 고려산 철쭉보러가는 걸 깜빡해 버렸다. 매년 봄마다 연례행사로 는데 말이다. 그 철쭉이  이제는 다 졌을 거라 생각하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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