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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May 27. 2022

백두대간,  여름 산에서 한겨울을 만났다

여름에도 얼어 죽는다는 것이 실감 나는 산행이었다. 백두대간 강원도 양양-홍천-인제 지역에서다. (구룡령~조침령)     


8월 19일이니 일년 중 가장 덥다는 계절인데도 온종일 비에 젖어 걸으니, 몸은 물먹은  솜뭉치, 배낭은 딱딱한 바윗덩이였다. 그런데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식어 위험해지니까 계속 걸어서 몸을 데웠다는 것, 이게 진짜 워밍업(warming up)이다.     


내 경험으로는 완전히 방수되는 등산화는 없는 것 같다. 새벽에 뽀송뽀송하게 말려둔 등산화를 신으며 물 들어오지 말라고 비닐덮개니 무어니 다 해 보아도 어느 순간 습기가 차오는데, 처음에는 그저 선선하다는 느낌, 점점 등산화 안이 미끄러워지다가 이젠 양말이 물을 흡수하는지 차가워지고, 바닥이 철벅철벅하다가 발이 불어 신발이 안 벗어지는 단계에 이른다.     


이번 산행길에서 어느 山사람의 조난장소를 지났다. 산에서 멈춘 생 거기서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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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산의 한겨울           



아홉 마리 용이 아흔아홉 구비 넘는 구룡령(九龍嶺)에서

날던 새도 한 밤 자고 넘는 조침령(鳥寢嶺) 가는 길

억새 수크령 고사리 무성한 반백리(半百里) 능선     


해종일 는개가 대붕(大鵬)으로 세상을 덮고

검은 나비 한 마리 들꽃 위에서 날개 접고 파르르 떤다


GPS 경도 위도 방향만 있고 거리 없는 이정표(里程標)     


한여름 대낮에도 비에 젖으니

몸과 맘이 다 한겨울이다     


날것들은 좋겠다

비 오면 목욕하고 모처럼 곱게 단장하니

싸리나무 붉은 꽃은 좋겠다

이슬 먹고 하늘 먹고

열 많은 멧돼지는 시원해서 좋겠다     


고어텍스 등산화, 우의 속 등산복이 모두

상강(霜降) 지나 입동(立冬)인데

물 밴 돌덩이 배낭이 어깨를 누른다     


이제 멈추어라 가라앉아 버려라

네 청춘이 내일이 모두 물에 젖어드니

안갯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얼핏 보이는 비석 하나

‘山나그네 작년 5월 이곳에서 생을 놓다’     


움직여라 움직여라! 몸을 움직여라

데워라 데워라! 맘을 데워라

그래야---


(2017년 8월 19일 백두대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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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더불어 사는 것      


관악산 연주대(해발 629미터) 이야기다. 세종대왕(1397~1450, 재위 1418~1450)은 태종의 3째 아들이었다. 그런데도 왕이 되어 한글창제 등 큰일을 했지만 워커홀릭이었고, 그리 오래 살지는 못했다(향년 53세). 비만, 당뇨가 있었고 늘 육식을 즐겼다고 한다. 운동부족이었다.     


그런데 손위 형들인 양녕대군(1394~1462)과 효령대군(1396~1486)은 왕이 되지 못하는 바람에  자유롭게(?) 살았다. 양녕은 68세, 효령은 90세까지 살았다. 아마 양녕보다 효령처럼 사는 게   더 나은지 모르겠다. 그처럼 산(山)과 선(禪)을 함께 하는 것이 장수의 비법인 모양이다.           



오래 사는 법     



왕조를 던지고, 왕위를 던지고

파락호 되어

부처님 제자 되어     

자유롭게 살다보니


연주대에 올라서도 행복했다(?)     


그들은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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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주대에 올라서도 행복했다(?)’는 내가 지은 말이다. 연주대에는 두 가지 전설이 전한다. 연주대(戀主臺)라는 이름은 무언가를 연모하는 것일 텐데, 하나는 고려가 망하고 나서 유신(옛 신하)들이 이곳에 올라 개경 쪽을 바라보며 슬퍼했다는 설, 하나는 양녕과 효령이 왕위에서 멀어진 후 이곳에 올라 한양 쪽 궁궐을 바라보며 아쉬워했다는 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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