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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May 25. 2022

보은 속리산에 속세의 그림자가 여기저기 (세조길 유감)



보은 속리산 이야기다. 꼭대기는 1058미터 문장대다(요즘에는 천왕봉으로 바꿨나?). 예전에는 자주 갔었는데, 최근에는 가보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법주사~세심정 간 2.7km를 ‘세조길’이라 부른다고 한다. 세조가 신미대사를 만나러 복천암을 오갈 때, 피부병 치료차 목욕소(沐浴沼) 오갈 때 다니던 길이라는데.  

    

예부터 여기에는 정2품 판서(요즈음으로 장관급)인 정이품송이 있다. 예전에 세조(수양대군)가 법주사에 행차하는데 타고 있던 가마가 소나무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輦) 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가 가지를 번쩍 들어올렸다고 한다(1464년). 이 일로 장관 나무가 되었다(?)

     

요즈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눈동자 방향을 어딘가 고정하고, 스마트폰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을 텐데 정이품송의 충성심을 배우시라(?). 꼭 필요할 때 이 나무처럼 즉시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걸.     


나는 속리산(俗離山)은 산이름처럼 속세를 떠난 산이라 좋고, 법주사(法住寺)는 불법(佛法)이 차분하게 들어선 모습이 좋고, 거기에 새로 모신 미래불이 좋았더랬다. 그런데 거기에 진한 속세의 흔적, 특히 조카 단종을 나쁘게 해서 걸렸다는 피부병을 고친다며 그가 오고 간 길을 이름지어 ‘세조길’이라니. 한편 신미대사를 만나러 다닌 건 아마 ‘한글 창제’ 건이었을 텐데. 글쎄다 이건 좀.         


요즘 지자체마다 유명 장소를 경쟁적으로 ‘~~~길’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세조길’은 좀 거시기하다. 그가 왕위를 차지하려고 벌인 일들이 너무해서다.     


다음은 어느해 봄날 속리산에 대해 써 놓은 글이다.           



속리산(俗離山)     


   겨우내 자주 찡그리던 하늘이 기지개 펴고 파란 바다 메우더니 그 위에다 하얀 돛단배 띄운다 계곡물은 제 가둔 바위 미운 듯 세게 때리고 참으며 은둔의 시절 지낸 이끼들 펑퍼짐하게 하늘 괴고 앉는다 등산로 옆 호수에서 우르르르 송사리들 일개 분대씩 분열한다 산새들은 후르르 째잭 후르르 째짹 상견례한다 어떤 나무는 초봄에 꽃송이 피우고 잎사귀는 감추더니 그동안 몰래 여름차비 단단히 한 듯 갑자기 연초록색으로 연회 나갈 귀부인 정장 갖추었다 물 가둬 모내기 준비하는 걸 보니 모든 것이 다 물이 있어야 하는구나


     속세는 천왕봉 밑으로 싸 보내고

     세신정(洗身亭)에서 도토리 막걸리 한잔으로     


  거친 마음 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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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처럼 살아가기     


다음은 대나무에 대한 시다. 내 작은방 탁자에 최한선 등이 번역·해설한 ‘중국 대나무 명품 시선’『대숲에 부는 맑은  바람』(태학사, 2014)를 두고 있다. 시간 날 때마다 찾아보자는 취지다. 한편 속세를 내쳐 떠나지 못하고 대나무처럼 살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는 대용품이기도 하다.     


이 시집에서 ‘대나무를 읊다’를 골랐다.(황병규 : 생몰년 미상, 중국 상해 남회 생, 청나라 말기 때 시인)          


대나무를 읊다, 영죽(詠竹)     


굳은 절개 낳고 길러 하늘에 솟았으니

얼음 서리 다 맞아도 잎은 시들지 않네

다만 둥글음(원통, 圓通)이 있고 휘어짐이 없는 것은

대나무의 모습이 본래 뛰어남(초초, 超超)을 알겠네      


하늘 향해 우뚝 솟는 대나무는 일심(一心)과도 같다.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가 휘몰아쳐도 자기 몸 색깔을 바꾸지 않는다. 그 모양이 둥근 것은 모든 것을 두루 포용하겠다는 것이요, 휘어지지 않는 것은 어떠한 일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불굴의 의지를 말해준다. ‘대쪽 같은 선비’는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위 책 818~819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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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나의 ‘대나무’다. 그들이 천왕봉 등산로 주변에 떼 지어 있었다.           



대나무     


너를 두고 풀도 나무도 아니라 왜 했는지     


속리산 천왕봉 산길에 무더기 선 너들 그저

별 해 달과 바람 쐬며

사람바라기하며

그냥 주는 사랑이더라     


비 눈 오거나 바람 불면 흔들려야 한다는 조그만 희망이더라     


나도 너처럼 곧고디고 싶었어

힘들면 속세 떠나 속리산(俗離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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