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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법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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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Aug 17. 2023

해병대원 순직사건을 조사한 수사단장이 항명했다고(?)

엉터리 나라가 되었다. 어쩌다 이리 개판이 되었나. 신성한 병역의무를 이행하라고 군대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이 밤잠 설치게 하는 일이 벌어져 있다.      


7월 홍수의 실종자 수색작전에서 순직한 해병대원을 수사한 보고서가 언론에 보도되었다. 국방부장관, 해군참모총장과 해병대사령관이 자필 서명한 문서라는데, 이걸 수사한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집단항명수괴’라는 무시무시한 혐의가 걸렸다. JTBC 보도를 뒤에 첨부하였다.    


전 수사단장이 언론 인터뷰를 한 것에 대해 해병대사령부가 규정위반이라며 징계하겠다고 한다. 이거야말로 방어권 행사 아닌가? (전시라면 사형에 처하는 범죄자라는데 말이다)


나도 젊은 시절에 40개월간 해병대 장교로 복무하였고(해간 66기), 군형법이 무서운 걸 잘 아는데, 이 사건이 하도 이상해서 군형법을 찾아보았다.     


‘집단항명 수괴죄’(군형법 제45조)라면 일종의 반란이다. 법정형이 적전이라면 사형(단일형), 전시라면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고, 평시에도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고, 정직과 명예를 긍지로 삼는 해병대 장교가 내란이나 국가반역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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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형법


8장 항명의 죄     


제44조(항명) 상관의 정당한 명령에 반항하거나 복종하지 아니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적전인 경우: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2. 전시, 사변 시 또는 계엄지역인 경우: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     

3. 그 밖의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제45조(집단 항명) 집단을 이루어 제44조의 죄를 범한 사람은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적전인 경우: 수괴는 사형, 그 밖의 사람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     

2. 전시, 사변 시 또는 계엄지역인 경우: 수괴는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그 밖의 사람은 1년 이상의 유기징역     

3. 그 밖의 경우: 수괴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그 밖의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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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등의 설명에 따르면 해병대 수사단(군 수사기관)이 상관의 ‘정당한 명령’을 집단적으로 위반해서 국가를 위태롭게 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군형법은 ‘정당한 명령’을 전제로 한다. 국방부장관 등이 나중에 달리 명령했나? 국방부(차관과 법무관리관)나 국가안보실 인사가 무슨 권한으로 군 수사에 개입하나? 군 수사기관의 판단에 대해 `누구를 넣고 빼라`고 지시할 수 있나?       


군사 행정은 군정과 군령이 나누어진다. 기본적으로 군형법에서 항명죄에 해당하는 명령이라면 군정 쪽이 아니라 군령, 즉 교전 등 군사작전에 관한 것이지, 이것이 사건수사 같은 영역에 적용될 수는 없지 않을까. 만약 항명죄의 대상을 군사작전 분야가 아니라 상급자의 지시에 모두 적용한다면 이것은 민주군대임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에 따르면 해병대 전 수사단장은 해병대사령관, 해군참모총장, 국방부장관에게 해병대원의 순직사건을 보고했다고 한다. 법령에 따라 경찰에 이관해야 하는데, 국방부 인사가 “사단장, 여단장을 빼라” 하더니, 이미 경북경찰청에 이관된 문서를 회수해 갔다고 한다. 이것은 직권남용, 공무집행방해 아닌가?   


여기 관여한 자가 국방부차관과 법무관리관이고, 대통령 국가안보실 인사라고 한다. 어떤 카르텔이 있어 누군가를 비호하고, 혐의를 수사단장에게 뒤집어씌운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이 대한민국,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발생할 수 있나?     


어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 국방부나 여당이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건이 전체 군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심대한데도 국회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니 큰일이다. 국회가 당장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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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일본제국 군대인가? 민주군대인가     


대한민국 국군이 20세기 전반기에 세계 전쟁을 일으킨 일제의 군국주의 군대로 바뀌었나?     


몇 년 전 군에서 있은 의문사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는 위원회가 있었다. 공군 여중사 자살사건 이후 군 수사기관의 수사결과에 재심을 의뢰할 수 있게 제도가 바뀌었다. 이런 일들을 군복무를 하지 않아 군의 실정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인사가 맡고는 군형법 위반을 운운하니 큰일이다.         


국회는 이번 사태를 엄정히 조사하고 관련자를 엄벌해야 한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는 젊은이와 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손보아야 한다.      


이번 정부 들어 북한이 주적이고 선제공격하겠다 하면서 남북의 긴장이 악화되는데, 이처럼 군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이 발생하다니---, 이번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50만 군인의 정신전력을 악화시킨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히 처벌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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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전 수사단장이 이해된다     


해병대 전 수사단장이 KBS 등 언론과 인터뷰한 것을 보고, 나도 처음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억울한 누명을 썼으니 말이다. 전시라면 사형(단일형), 평시에도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 집단항명수괴죄라는 무시무시한 죄명을 운운하는데---       


그는 해병대 군사경찰(헌병) 책임자로서 엄정히 수사하고 계통을 밟아 보고까지 마쳤는데, 국방부나 국가안보실에서 어떤 압력을 행사하였다.


이런 사건의 수사대상에 상한이 있을 수 없고, 이게 해병대사령관, 국방부장관, 대통령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국군통수권자라는 대통령도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던데---     


과거에 군에서 사건이 나면, 사단장 등 고위급부터 아래 지휘계통이 책임지는 게 관례였다. 이런 시스템이 지휘관이나 간부들로 하여금 병사의 생명과 안전확보에 엄청나게 노력하게 되는 요인이었다.       


작년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에서 159명이 사망해도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더니, 이번 해병대원 순직사건에도 대대장 이하 하급 지휘관만 책임지도록 할 수 있나?


이번 사건처럼 명백한 과실이 있어 보이는 사단장, 여단장을 배제한다면, 누가 병사의 생명과 안전에 관심을 기울이겠나? 대대장 정도가 병사들이 생명까지 위협받는 대민작업을 지시할 수 있나?    


나는 이번에 해병대 수사단에 압력을 행사한 자는 직권남용과 공무집행방해죄를 저지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어제 JTBC가 보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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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장관 서명 해병 수사 보고서 입수서명 바로 다음날 "이첩 멈추라"

[JTBC] 입력 2023-08-16 13:52 수정 2023-08-16 14:04          


해병대 채 상병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 보고서를 놓고 외압과 은폐, 축소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논란의 시작점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승인입니다. 박정훈 당시 해병대 수사단장으로부터 대면보고를 받은 뒤 이를 경찰로 넘겨도 좋다는 의미로 조사 보고서에 '서명'까지 했지만, 바로 다음날 보고서의 이첩을 멈추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국방부의 지시가 조사 결과를 은폐하고 축소하기 위한 시도인지, 아니면 국방부의 주장처럼 '법률적 검토가 추가로 필요'했기 때문인지를 판단해 볼 수 있는 조사 보고서를 JTBC가 단독 입수했습니다.    

 

 〈JTBC가 입수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 서명이 담긴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원인 수사 보고서'〉               



〈JTBC가 입수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 서명이 담긴 '고 채수근 상병 사망 원인 수사 보고서'〉               


박정훈 대령이 이종섭 장관에게 보고한 조사 보고서는 모두 11페이지 분량입니다. 조사 보고서에는 임성근 해병 1사단장과 박성현 7여단장 등 해병대 지휘부를 비롯해 포11대대장과 포7대대장, 중대장 그리고 하급 간부 3명 등 총 8명에 대한 과실치사 혐의가 적시되어있습니다.     


특히 임성근 사단장에 대한 혐의 사실이 가장 구체적으로 담겨있습니다.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임 사단장은 15일 오전 7시 20분 '실종자 수색' 지원 요청을 받았지만 이를 부대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부대가 예천으로 출발하는 시점에서야 뒤늦게 '실종자 수색'을 지시했습니다.     

임 사단장의 늦장 지시로 부대원들은 수색 작업에 필요한 안전 장비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됐습니다.     


또한 수색 작업이 시작된 뒤에는 구명조끼 착용 등 안전에 대한 지시는 없었습니다. 대신 해병대 체육복으로 복장을 통일하고 경례 태도를 철저히 하라는 식의 지시만을 반복적으로 내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같은 임 사단장의 지시에 현장 지휘관들이 부담을 느꼈고, 안전장비도 없이 무리하게 수색작업을 진행하다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해병대 수사단은 판단했습니다.     


7월 30일 오후 4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박정훈 대령으로부터 이같은 내용을 직접 대면 보고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보고 당시 배석한 참모진에게 과실치사 혐의 적용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조사 결과인 것 같다"는 대답을 들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리고선 보고서에 직접 서명을 했습니다. 조사 결과에 이상이 없고 예정된 날짜에 경찰로 자료를 보내라는 승인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박정훈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 보고서의 경찰 이첩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박 대령이 거부 의사를 밝히자 모두 5차례 전화를 걸어 반복적으로 지시를 했습니다.     


박정훈 대령은 "법무관리관하고 총 5차례 통화를 하면서 죄명을 빼라, 혐의 사실을 빼라, 혐의자를 빼라 등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며 외압으로 느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지시를 내린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30일 국방부 장관 대면보고에도 배석하지 않았고, 그다음 날 사건 이첩 중단 지시를 내릴 때는 보고서를 검토조차 못한 상황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시 말해 조사 결과를 구체적으로 확인조차 못 한 상황에서 '과실치사 혐의'내용을 보고서에서 제외하라는 명령을 내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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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법세기’는 ‘어느 법학사의 세상 읽기’를 줄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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