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5월에 나온 김진명 장편소설 『풍수전쟁』은 가장 중요한 모티프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과 철령위 위치 문제를 제기한다.
작가의 말이다.(김진명)
‘조선의 건국을 불러온 고려의 요동 정벌은 철령위 사건 때문에 단행되었는데 철령의 위치가 어딘가에 대해서는 두 개의 주장이 정반대로 대치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명나라의 관소인 이 철령위의 위치에 대해 우리나라는 정확할 수밖에 없는 명나라 사료들을 완전히 무시한 채 근 백 년에 이르도록 한국 역사를 파괴하기 위해 만들어진 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허구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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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통치는 여러 제국과 비교해 보아도 유별났다. 이를 잘 설명한 책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재가 있어 그 내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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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국통치
근린제국주의와 동화정책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통치정책으로 동화(同化)주의를 표방했다. 동화주의는 기본적으로 ‘조선인의 일본인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 내선일체(內鮮一體), 황민화(皇民化)정책 등이 동화주의정책의 예다. (182쪽)
유럽 제국들은 유럽과 문명적인 기반을 공유하지 않는 비(非) 유럽지역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식민통치 과정에서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기반하여 ‘문명의 사명’과 같은 논리를 동원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유럽 제국들과는 달리 동일한 문명적 기반을 갖고 있던 나라들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일본은 식민지에 대해 동일한 인종임을 주장하는 인종주의나 같은 아시아 지역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아시아주의를 등장시킨다.
--- 현실적 차별을 정당화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식민지와 제국 일본의 ‘차이’를 강조하는 문명(文明)과 야만(野蠻)의 논리를, 식민지로부터 적극적 협조가 필요할 때에는 동양평화론을 비롯한 아시아주의나 인종주의 같은 논의를 끌여들여 내지(內地)와 외지(外地)의 ‘일체성’을 강조하였다.(183쪽)
한국 문화유산의 파괴
일본의 한국문화 파괴의 핵심은 한국인의 자기 긍지를 무너뜨리고 자기부정 의식을 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자기를 멸시하는 감정을 갖게 함으로써 선진화된 문명국가인 일본에서 배워야 한다는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한국통치에서 나타난 가장 핵심적 원칙이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특정한 방식의 ‘기억’과 ‘망각’이 요구되었다. 이른바 근대적인 학문방식을 통한 체계적인 역사왜곡이 이루어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체(停滯)되고 타율적(他律的)인 조선에 대한 이미지는 이렇게 확고해져 갔다. 한반도의 지배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서 경복궁(景福宮)의 근정전(勤政殿)을 가로막고 서 있는 형태로 조선총독부를 세웠으며, 국왕이 살던 창경궁(昌慶宮) 자리를 동물의 왕국인 창경원(昌慶苑)으로 만들어 놓았다.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한국의 문화유산 파괴에 관해서는 일일이 나열하는 것이 어려울 만큼 그 폭과 정도가 넓고 다양하다. (184쪽)
*『근현대 한일관계와 국제사회』 강상규·김세걸 공저, 방송대출판부,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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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참 나쁜 나라
일제는 이웃 나라 조선을 완전히 없애려 하였다. 이런 일들이 있었다. 이걸 제대로 배운 적이 있는가? 조선태형령(1912년), 창지개명(1914년), 3.1운동 탄압(1919년),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 학살(1923년), 창씨개명(1939년) 등이다.
두 가지만 살펴보려 한다. 조선태형령과 창지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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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태형령(1912년)
1912년 일제가 조선인에 대해 합법적 처벌수단으로 태형(笞刑, 작은 곤장으로 죄인의 볼기를 치는 형벌)을 시행할 수 있도록 제정한 법령으로, 3·1운동 발생 후인 1920년 폐지됐다. 일제가 조선을 식민통치하던 1912년, 치안 유지를 명목으로 조선인을 물증이나 정식 재판 없이 임의로 잡아다가 태형을 처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것을 말한다. 당시 일제는 이를 근거로 독립운동가나 항일사상가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일본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조선 태형령'의 주요 내용
<조선총독부 관보>에 전하는 ‘조선 태형령’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2조] 100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할 자 중 다음 각 호에 해당할 때는 그 정상에 따라 태형에 처할 수 있다.
1. 조선 내에 일정한 주소를 가지고 있지 않을 때
2. 무산자라고 인정될 때
[제11조] 태형은 감옥 또는 즉결 관서에서 비밀리에 집행한다.
[제13조] 본령은 조선인에 한하여 적용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선태형령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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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지개명(創地改名)
다음은 창지개명이다. 1939년의 창씨개명(創氏改名)이 사람의 성을 바꾸는 거라면, 창지개명(創地改名)은 땅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지명을 바꾸면 역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2019년 ‘인사이트’ 게재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다.
일본이 강제로 지명 바꿔버려 '창지개명' 당한 우리나라 지역 7곳 (인사이트)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이 강제로 지명을 바꿔버린 국내 지역 7곳을 소개한다.
강유정 기자, 입력 2019.08.02 13:47
지금으로부터 109년 전인 1910년, 일본은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제 침탈했다. 그러면서 일본은 자원 수탈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 조선총독부에 조선임시토지조사국을 설치했고, '조선 토지 사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국내 고유 지명들을 강제로 일본식으로 바꿔버렸다. 이를 두고 '창지개명'이라 칭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지역들이 창지개명을 한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하는 읽을거리로 뒤에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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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반성하지 않는다
일본은 우리의 고유영토인 독도에 대해 틈만 나면 자기네 땅(다케시마, 竹島)이라고 주장한다. 1905년 러일전쟁 중에 시마네현 고시에 슬그머니 게재하고는 이런 파렴치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얼마 전 대마도에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부산에서 최단거리 49.5km로 쾌속선으로 1시간도 안되어 갈 수 있는 곳인데, 여기에 위험물질을 저장한다는 것이다.
(뒤에 MBC기사를 읽을거리로 붙였다).
웬일인지 대한민국 정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1948년 정부수립 직후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적도 있었다. 원래 돌려주어야 할 우리 땅에다 핵폐기물 처리장을 건설한다는데 말이다.
이웃 나라와 사이좋게 지내는 건 중요하다. 그런데 한쪽은 늘 호시탐탐 침략을 노리는데, 방심하고 있다가 당한다.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이웃도 적도 없다는 걸 명심하자. 임진왜란도 한일합방도 그랬다. 우리에게 징비록(懲毖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일본과 100년 전 역사문제를 잊자는 엉뚱한 사람이 있다. 제발 역사공부를 하고,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서라. 그런 다음에 일본이나 동북공정을 진행하는 중국과 친해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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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전쟁과 남북통일에 대한 생각
원래 고려(高麗, ‘고리’라고 불러야 한다) 영토는 신의주에서 원산만이 아니라 방대한 지역에 걸친다. 즉 지금도 존재하는 만주의 철령(鐵嶺)부터 고려의 땅이었고, 북쪽으로는 하얼빈에 이른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황제국이던 고려가 명의 제후국 조선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른 역사는 ‘늘 그렇듯이’ 자기 합리화를 위한 조작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역사를 제대로 고치고 제대로 된 역사를 배우자. 그래야 남북통일도 이루어지고 우리 고토(故土)인 한대륙(韓大陸)도 수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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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1)
일본이 강제로 지명 바꿔버려 '창지개명' 당한 우리나라 지역 7곳 (인사이트)
강유정 기자, 입력 2019.08.02 13:47
오늘은 일본이 강제로 우리 고유의 이름을 바꿔버린 지역 7곳을 꼽아 원래 이름을 살펴봤다.
1. 일산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신도시 일산의 원래 지명은 '한뫼' 혹은 '한메'였다. 한뫼는 '커다란 산'이라는 순우리말이지만, 일본이 '한'을 '하나'로 오해해 일산이라고 지었다고 전해진다. 아마 원래 뜻 그대로 이름을 지었다면 '대산'이 되었을 것이다.
2. 양촌리
간혹 어른들이 '양촌리 커피'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프림과 설탕을 가득 넣은 커피를 말하는데, 이때 말하는 '양촌리'는 드라마 '전원일기' 속 배경 마을인 양촌리에서 유래했다. 양촌리는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데,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있다. 이곳의 본래 지명은 '햇살말' 혹은 '양짓말'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한자로 햇볕 양, 마을 촌이라고 바꿔 양촌리가 돼버렸다.
3. 탄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에 있는 탄현동도 원래 이름은 '숯고개'였다. '숯고개'라 불린 이유는 이곳이 황룡산, 고봉산 기슭에 있어 산속 나무를 이용해 숯을 만들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본이 한자로 '숯 탄' 자와 '고개 현'자를 쓴 탄현으로 이름을 바꿔 버렸다.
4. 신촌
홍익대,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 학교들이 밀집돼 있어 '젊음의 거리'라고도 불리는 신촌. 신촌의 원래 이름은 '새말'로 새로 마을이 형성됐다는 순우리말이다. 일본은 이때도 한자를 사용해 '새로운 신', '마을 촌'이라는 신촌으로 이름 지었다.
5. 양수리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양수리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손꼽히는 곳이다. 남한강과 북한강, 두 강물이 만나 하나의 강으로 흘러 '두물머리'로 불렸다. 하지만 일본은 발음이 힘들다는 이유로 '양수리'라고 바꿔버렸다.
6. 병천
한국인이라면 '아우내'라는 곳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바로 1919년 유관순 열사가 주도한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아우내 장터'가 있는 곳이다. 아우내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아우르다'와 '냇가'의 한자 뜻을 따 '병천'이라고 불리게 됐다. 지금은 천안시 '병천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며 '병천순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7. 인사동
우리나라 '전통 거리'로 유명한 인사동도 놀랍게도 일본이 창지개명을 한 곳이다. 지금의 인사동 부근에는 연산군 때까지만 해도 큰 절이 있어 '절골' 혹은 '대사동'이라고 불렸다. 또한 조선 시대에는 지금은 사라진 '방'이라는 행정구역이 있었는데 이 절골이라는 곳은 여러 방 중에서 '관인방'에 속해 있었다. 일제강점기가 되어 일본은 관인방의 여러 고을을 합쳤고 '관인방'의 '인'과 '대사동'의 '사'를 합쳐 인사동이라고 불렀다.
강유정 기자, k.yujeong@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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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거리 2)
일본, 대마도에 핵폐기물 처리장 추진‥한국에서도 논란? (MBC)
입력 2023-09-13 20:30 | 수정 2023-09-13 20:33
부산과 가까운 일본 대마도에 핵 폐기장 건설이 추진될 예정입니다. 일본 원자력 발전소에서 발생한 핵 연료 쓰레기를 모아서 땅에 묻는 사업인데, 어제 대마도 시의회가 추진안을 통과시키면서 건설 추진을 공식화했습니다. 주민들과 시민 단체들은 반발하고 있는데요. 도쿄에서 현영준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대마도 시의회가 고준위 핵 폐기물 처리장 유치를 위한 1단계 조사 추진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일본 전역 원자력발전소의 사용 후 재처리 핵연료 찌꺼기를 땅에 묻는 사업인데, 현재 홋카이도 2곳과 대마도가 유치에 나섰습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경제산업상]
"대마도의 움직임 등을 통해 전국에서 이런 관심이 높아져서 이해가 진행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매립 대상인 핵 찌꺼기는 강한 방사능을 내뿜는 고준위 핵폐기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일본 전역의 재처리 시설에 약 1만 9천톤이 쌓여 있는데, 이를 유리와 섞어 고체 덩어리 2만 7천개로 만들어 지하 300미터 아래에 보관합니다.
일본 정부는 1차 조사에 20억엔, 2차 조사에 70억엔 등 교부금을 내걸고, 낙후된 지역이 유치에 나서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대마도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