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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Oct 20. 2023

책 이야기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2번째)

동아시아 냉전과 식민지·전쟁범죄의 청산

책 이야기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의 2번째 이야기다. 이 책은 부제가 「동아시아 냉전과 식민지·전쟁범죄의 청산」이고, 편집위원회(김영호, 이태진, 와다 하루키, 후더쿤, 알렉시스 더든, 하라 기미에 편)가 있었다. 


중요한 책이 출판되었는데(발행일은 2022년 4월 28일), 우리 언론이나 정치권은 왜 이리 무덤덤한지 갑갑해서, 내가 지난 10월 18일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를 잠깐 소개하였다.      


이 책은 본문만 654쪽, 모두 724쪽에 달하고 가격도 3만 8천원에 이르다 보니, 누가 책을 사고 보았을까 싶다. 이 책에서 중요하다 싶은 글과 구절을 정리하고 있다. 가장 앞쪽 「책을 내며」를 요약한다. 이 책 편집위원회(6인) 명의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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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책을 내며     


2010년, 한국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은 을사보호조약, 한국병합조약 등 구한말 한국과 일본이 맺은 협약이 근본적으로 ‘불법무효’ 임을 선언하는 한·일 지식인 1000여 명의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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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발효 70주년이 되는 올해(2022년)에 총 25편의 논문으로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철저히 해부,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4쪽)     


전후 아시아·태평양 질서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갇혀 있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48개국이 서명한 강화조약을 중심으로 미·일 안보조약이 뒤따랐으며, 강화조약에 참석이 배제되었던 한국은 이후 불리한 입장에서 강화조약의 틀을 따라 한·일 기본조약을 맺었다. 한·일 기본조약, 한·일 청구권협약 등 여러 한·일 협약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5쪽)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카이로 선언에서 밝힌 ‘일본의 탐욕과 폭력으로 불법 획득한 섬들을 주권회복 한다’는 원칙을 따르지 않고 일부러 미해결의 영토문제를 남겨 분쟁 요소를 만들었다는 의혹이 크다. 독도분쟁을 비롯해 태평양의 여러 섬들을 둘러싼 영토분쟁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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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프랑스의 프란시스 레이나 미국의 맨리 허드슨 같은 국제법의 대가들이 민족주의 원칙이 아니라 인권의 원칙 위에서 을사보호조약을 ‘불법무효’로 규정하였던 것 그리고 1963년 유엔총회에서 을사보호조약을 포함해 세계 4대 최악의 국제조약을 ‘불법무효’로 규정하고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것을 주목한다. (6쪽)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에 앞장섰던 고은 시인의 〈굿바이 샌프란시스코〉의 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을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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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바이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여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속박

   더 이상 견딜 길 없는 폐해 떨쳐

   아시아 태평양 신기원의 교향악이여 만당 울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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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편집위원회

김영호, 이태진, 와다 하루키, 후더쿤, 알렉시스 더든, 하라 기미에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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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봅시다     


위의 「책을 내며」라는 글은 한국, 일본, 중국, 미국, 캐나다 학자들의 공동 명의다. 여기에 이 책의 골자가 담겨 있어 보인다.       


이 책은 총 25편의 논문을 모은 학술적 글이니까 읽기가 쉬운 책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전율을 느꼈듯이, 아마 책을 읽는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소름 끼치는 이야기다. 1963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이 ‘불법무효’라는 안건을 통과시켰다는데 우리나 당시 정부가 이걸 알았을까 하는 거다.  예전 1951년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될 때에도 우리는 조약에 서명한 48개국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유엔총회 2년 후 1965년에 한일 국교정상화가 논의되었는데 우리가 이걸 알았을까? 일본은 알고 우리는 모르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유엔은 1948년에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인정하고,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6.25 동란)이 발발하고는 유엔 명의 합동군(유엔군)이 파병되기도 했지만, 우리가 유엔에 가입한 것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있던 시기, 1991년이었고, 이때 북한과 동시가입하였다.      


이 정부 들어 대통령이라는 윤 모씨는 지난 4월 24일 미국을 국빈방문하다며 WP와 가진 인터뷰에서 “100년전 일로 일본이 무릎 꿇어야 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지금 그나 그의 참모들은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무언지, 한일 국교 정상화에 앞선 미국과 일본, 유엔 이야기를 알고 있을까? 기막혀서 하는 말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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