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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어법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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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윤수 Jan 05. 2024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권에 대하여

(미국 ‘행정부’와 한국 ‘정부’의 차이)

새벽 기사를 보니까 작년 말 국회가 만장일치(180명 참석에 180명이 찬성)로 의결한 ‘김건희 특검법 등’에 대해 정부가 국무회의를 열어 거부한다는 소식이다.      


예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미국과 한국은 모두 대통령제인데, 미국에서는 ‘행정부’라고 부르고, 우리는 ‘정부’라고 부를까? 지금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라고 부르지 ‘바이든 정부’라고 부르지는 않는데, 우리는 ‘윤석열 행정부’가 아니라 ‘윤석렬 정부’라고 부르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지? 그저 언어 관행이라고? 아니면 어떤 차이가 있나?      


곰곰이 따져보니 미국에서는 입법권이 모두 의회에 있고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행정을 하는데 그치지만, 우리나라는 정부에도 법률안 제안권이 있기 때문이다.     


이걸 조금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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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행정부     


미국에서 연방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입법, 행정, 사법 중 행정 분야를 관장한다. 그에게는 법률안 제출 권한이 없고, 필요시 법률안 거부권(Veto)으로 재의를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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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부     


우리나라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입법, 행정, 사법 중 행정 분야를 관장하지만, 미국과 달리 정부(헌법을 보면 대통령이 아니라 정부라고 되어 있다)도 법률안 제출권을 가진다.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다.    


* 헌법의 입법 관련 조항     


제52조 국회의원과 정부는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제53조

①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

②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의 폐회 중에도 이와 같다.

③ 대통령은 법률안의 일부에 대하여 또는 법률을 수정하여 재의를 요구할 수 없다.

④ 재의의 요구가 있을 에는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

⑤~⑦ 생략     


헌법 제52조와 제53조를 합리적으로 해석해 보자.     


대통령은 국회가 의결한 법률안에 대하여 재의를 요구할 수 있지만, 일부 또는 수정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정부는 스스로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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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법률안 재의요구권이란?     


요즘 언론이 이야기하는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veto)에는 헌법적 또는 내재적 한계가 있는 게 분명하다. 적어도 자신에 관련된 법률에 대해서는 거부할 수 없다. 자기를 처벌하라는 법률을 정부가 제출할 리가 없으니, 자기에 대한 법률을 거부할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나.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거부)는 원래 국회의 권한인 법률에 이의가 있으니 다시 심의해 달라며 재심사를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껏 여러 정부에서 대통령 가족에 관한 특별법이 있었는데, 여기에 대해 대통령이 재의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대통령은 헌법상 형사특권이 있다. 그는 내란 또는 외환죄를 제외하고는 형사소추를 받지 않게 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떤 문제가 있다면 탄핵하거나 특별법 제정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지 않나.        


헌법 제84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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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번 건은 특별한가? 2건의 특검법 중 하나는 대통령 자신이 관련되어 있고, 다른 한 건은 그의 배우자에 관한 법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걸 거부한다고?      


물론 지금이 4월 10일 총선을 앞둔 시기로서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그런데 작년 내내 이 문제가 거론되면서 그 시기를 거론하였다면 이게 본질은 아니지 않나?     


‘누구나 스스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언이 있다. 사실 이것은 법 이전의 상식 아닐까. 이 분야 책에 있는 사진과 글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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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회랑 애쓰모글루 / 로빈슨, 시공사, 2020     


국가의 힘이 너무 강하면 국민은 독재로 고통받고, 반대로 사회가 너무 강하면 무질서로 고통스러워진다. 시민이 자유를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국가가 번영하기 위해선 국가와 사회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좁은 회랑’에 들어가야 한다.   


- 사진은 이 책 654쪽, 702쪽과 내표지 표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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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법세기’는 ‘어느 법학사의 세상 읽기’를 줄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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