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龍 가라사대 6
어제 다큐 영화 〈건국전쟁〉을 보았다. 정치 색깔이 있다고 해서 주저하다가, 역사 지리 지정학 등 이 분야 글을 쓰는데 참고하려 하였고, 구체적으로는 단기(檀紀), 대마도와 독도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어서다. 독도는 영화 마지막에 ‘평화선’ 선포라고 있던데 단기와 대마도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지금껏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대개 독재자라고 비난만 해 왔는데, 이 다큐를 보면 그도 잘한 일이 많다고 한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1. 농지개혁과 소작농 일소
2. 교육 강화로 문맹 퇴치
3. 미국과 상호방위조약 체결
4. 여성 참정권 인정
5. 원자력 발전에 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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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검소하게 살았다
7. 하와이 망명 후 생전에는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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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하였다
〈건국전쟁〉으로 새로 알게 된 사실은 별로 없지만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필리핀과 북한보다 못살던 우리가 이만큼 발전한 것에 이승만 대통령의 역할이 있는 게 분명하다.
반면 1952년 7월 ‘발췌’ 개헌, 1954년 ‘사사오입’ 개헌과 정치파동, 반민특위 무력화와 독재 장기집권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공(功)과 과(過)를 균형있게 다루었으면 좋았을 텐데 과(過)는 흔적이 거의 없었다.
최근 거론되는 이승만 기념관 이야기도 이해된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으니 역사적 평가에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공과 과는 공평하게 다루길 바란다.
독도 이야기는 1952년 평화선 설치로 잠깐 다루었던데, 단기와 대마도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단기(단군기원)와 대마도 이야기는 정부수립과정에서 매우 중요하다. 단기는 우리 역사의 출발이고 대마도는 우리땅인데 왜 다루지 않았을까?
단기(檀紀)나 대마도에 대해 살펴보면, 단기는 이승만이 사라진 5·16군사쿠데타 이후 만든 헌법에서 슬그머니 사라진다. 단기(檀紀)부터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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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檀紀) 이야기
우리 제헌헌법은 단기 4281년(1948년)에 만들어졌다. 헌법에 보면 서력기원에다가 2333년을 더한 단군기원이 쓰여져 있다.
대한민국 제헌헌법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단기 4281년 7월 12일 이 헌법을 제정한다.
단기 4281년 7월 12일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 승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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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Dokdo) 이야기
유튜브에 KBS다큐 2005년 4월 8일 방송한 ‘독도의용수비대’ 이야기가 있다. 6·25 전쟁 중 민간인들이 독도를 지켰다는 이야기다. 이걸 보면 마음이 찌르르하다.
7년쯤 전이던가 울릉도 성인봉에 오르다가 산 중턱에서 독도를 보았다. 1900년에 대한제국은 관보에다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 영토로 게시했다.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지방 관보에 독도를 죽도(竹島), 다케시마라고 몰래 적었다.
독도는 전라도 말로 돌섬, 바위섬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를 음역 하여 석도(石島)라고도 불렀다던가. 독도에 관한 유행가의 영향인지 ‘홀로 독도(獨島)’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돌 석(石) 자라는 거다. 평생 독도에 3번 갔는데, 대나무가 한 그루도 살지 못하니까 일본이 주장하는 죽도(竹島) 다케시마는 아니다. 돌섬!
신라장군 이사부 이야기가 아니라 근세사만 보더라도 우리는 1900년에 대한제국 관보에 게재하였고, 울릉도에서 날이 맑으면 독도가 보이지만 일본의 오키섬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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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이야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3일째 되는 날 일본에 대마도를 돌려달라고 공식 요구한다. 1949년 1월 7일 첫 연두 기자회견에서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조공을 바친 우리 땅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그 땅을 무력 강점했지만 결사 항전한(대마도) 의병이 이를 격퇴했고, 의병 전적비(戰蹟碑)가 대마도 도처에 있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한 일본은 포츠담 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줘야 한다” (273쪽에서)
* 『대마도가 한국 땅인 증거 127』 정홍기 편저, 노드미디어, 단기 4352(2019)년
이 책 뒤표지의 글도 함께 소개한다.
“부모가 물려준 토지(土地)를 지키지 못하면
무능한 사람이고
조상이 물려준 영토를 보존하지 못하면
무능한 정부이다
조국을 통일하여 만주땅을 수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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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이 미 국무부에 송부한 영문 설명자료에 영토문제가 7건 실린다.
1. 쿠릴, 하보마이, 시코탄 1946.11.
2. 사할린 남부, 하보마이, 시코탄 1949.4.
3. 사할린 1949.1.
4. 류큐 및 난세이쇼토 1947.3.
5. 오가사와라, 이오지마 제도 1947.6.
6. 태평양 및 일본해 소 제도 1947.6.
7. 대마도 1949.6.
*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영토문제」 정병준,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넘어서』김영호 등, 메디치, 2022) 341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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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체제와 한반도 분단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1951년 9월 8일 대일강화조약을 일컫는다. 대한민국은 여기에 참가하지 못했다.
〈건국전쟁〉에서는 1945년 8월 소련이 북한 쪽으로 급속히 들어오는 바람에 이를 막고자 미국이 한반도 분단을 제기했다고 하던가? 미국은 우리 땅이 지킬 가치가 없어 보여 버리려 했는데 이승만 대통령의 활약으로 미국이 한국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1950년 1월 ‘애치슨 선언’으로 한반도와 대만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한 미국이 갑자기 유엔을 통한 다국적군으로 한국에 들어와 아직도 머물고 있다.
* 아래는 위 책 중 미국 코네티컷대 알렉시스 더든(Alexis Dudden)의 글이다. (206쪽에서)
「1945년 8월 10일 늦은 밤에 워싱턴에서 일하던 두 미국인 딘 러스크와 찰스 본스틸은 한국 지도를 쳐다보면서 북위 38도선을 따라 선을 그었다. 그것은 서울을 미국의 통제 아래에 두는 대신 그 선 북쪽에 있는 것은 모조리 소련에게 주겠다는 것이었다.(모스크바의 지도자들은 식민지 조선이 아닌 일본을 상대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이었으며, 전리품으로 일본의 북쪽 절반을 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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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관련 책
대마도 지도
(일본인이 그린 지도, 대마도를 조선국대주(朝鮮國對州)라고 불렀다)
(조선방역지도(朝鮮方域地圖): 영조 때 제용감(濟用監)에서 편찬한 지도, 만주와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