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에 갔다. 취임 이후 3번째라나. 일어난 일에서 나는 약 130년 전에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도망간 아관파천(俄館播遷)이 생각났고, 루소포비아(Russophobia)을 떠올렸다.
번번이 미관파천(美館播遷)을 하는 모양이다.
그는 왜 그럴까? 북한과 군사동맹을 맺은 러시아가 무서워 그랬나? 참 루소포비아부터 이야기하자. Russophobia는 간단히 말해서 ‘러시아를 혐오하는 증상’이다.
128년 전에는 고종이 러시아를 친구라며 그 공관에 숨어들었지만, 요즘은 러시아는 팽개치고 미국(아니 일본도)만 짝사랑하는 중이다.
이나 저나 1990년대 노태우 정부가 힘써 이룩한 북방정책을 완전히 허물어버렸는데, 나중 역사가 괜찮다고 써줄까 모르겠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펀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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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관파천(俄館播遷)
(요약)
아관파천(俄館播遷)은 1896년 2월 11일,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 공사가 동의하여 고종과 왕세자가 비밀리에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이다. 을미사변 이후 신변의 위협을 느끼던 고종과 측근 인사들의 요청에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동의하여 비밀리에 고종과 왕세자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다. 아관파천으로 인해 친일 내각이 무너졌고, 고종은 경운궁 환궁 전 1년 동안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렀다.
(주요 경과, 일부)
을미사변 이래 신변 위협을 느꼈던 고종은 1896년 1월 9일 이범진을 통해 러시아의 지원을 비밀리에 요청하였다. 러시아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으니 저버리지 말라고 하여 러시아의 개입을 요청하였다. 아관파천과 관련하여 러시아 측 핵심 인물은 스페이예르(Alexeide Speyer)였다.
1895년 9월 주한러시아공사로 임명된 스페이예르는 부임 전 조선 문제에 대한 직접적 관여를 금지한다는 정부의 훈령을 받았다. 하지만 1896년 1월 28일 스페이예르는 러시아 외무부에 러시아가 조선을 지원할 수 있는 전체 계획을 세울 것을 주장하였다.
2월 2일 스페이예르는 외무대신에 고종의 러시아공사관 피신 의사를 전하고 신속한 답변을 요청하였다. 고종 피신에 대한 러시아의 확답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스페이예르는 고종의 거처를 자국 공사관으로 옮기는 중대 사안을 자체 판단으로 결정하였다.
스페이예르는 1896년 2월 10일 공사관 보호를 명목으로 러시아 해병 135명을 입경(入京)시켰다. 실상은 신변 보호를 확실히 하기 위해 공사관 경비 병력을 늘려 달라는 고종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다음날 2월 11일 새벽 고종과 왕세자는 비밀리에 궁녀의 가마를 타고 위장하여 경복궁 영추문(迎秋門)을 빠져나와 러시아공사관으로 갔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관파천[俄館播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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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포비아(Russophobia)
루소포비아는 간단히 말하면 러시아혐오증이다. 여기에 대해 써 놓은 책이 있다. 스위스의 기 메탕(Guy Mettan)의 『루소포비아』에는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 기 메탕 지음, 김창진·강성희 옮김, 가을의아침, 2022
원제는 2015년에 『Russie-Occident, une guerre de mille ans』 즉 ‘러시아와 서방, 천년의 전쟁’이다.
먼저 책의 소개글이다. (교보문고)
서구 언론과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위기가 애초 우크라이나 동남부에서 러시아어의 공식 사용을 금지한 키예프 임시정부의 명령 탓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감추려고 한다. 하지만 크림과 돈바스가 결국 이 명령 때문에 돌아선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상황이 러시아 혐오주의자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사실에 기반해서 설명하려면 결국 크림주민들과 돈바스 주민들의 자치 결정과 그에 따른 지역 분리가 합법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서구인들이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론이 카드로 만든 집처럼 무너질 것이다.
이런 방법을 쓰지 않는다면 위기가 러시아 팽창주의와 소비에트 제국의 국경을 복원하려는 푸틴의 야망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 서방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정책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선전을 어떻게 대중의 생각에 각인시킬 수 있겠는가?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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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소포비아(Russophobia)란 ‘러시아 혐오증 또는 공포증’으로서, 러시아라는 국가와 러시아인 일반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가리킨다. 이는 러시아라는 국가 체제와 대외정책의 어떤 특성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그것들이 러시아인들의 열등한 민족성으로부터 연원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는, 또 다른 버전의 ‘오리엔탈리즘’이다.
(옮긴이 서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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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3장 ‘2014년 우크라이나의 진실에 눈을 감은 서방 언론’에서 많은 것을 알았다. 원래 이 책이 2015년에 발간되었으니, 그때에 가장 참신한 책 아니었을까. 몇 문장을 인용한다.
러시아와 푸틴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왜 서방 언론은 객관성을 거부하는가? 대체 어디에서 이런 조건반사가 생겨났는가 아주 먼 옛날부터 서방 기자들은 사실을 찾아내고, 이해하고, 진실에 도달하고, 견해들을 비교하려 노력하는 것을 자랑스러운 원칙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왜 공감에 대한 준비, 타인에 대한 존중과 같은 윤리적 원칙이 순간에 잊혀버리는가? (99쪽)
합리적이고 진지하며 경험이 풍부한 언론인들이 러시아와 관련되기만 하면 갑자기 판단의 독립성을 내려놓고 반러시아적 비난의 합창 동호회에 가담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왜 중국보다 훨씬 민주적인 나라의 수장인 푸틴 대통령에게 그렇게 편파적으로 대하는가? (104쪽)
이제 2014년 3월 16일에 러시아에 의해 실시된 크림의 주민투표로 넘어가자. “고상한 언론은 크림의 자치에 대한 주민투표는 우크라이나 헌법과 국제법에 위배되고”, 따라서 불법이라고 선언한 백악관의 견해에 기꺼이
동의했다. 크림 주민 95%가 러시아 연방의 일원이 되는 것을 찬성했다는 사실에는 서구의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110쪽)
미국의 역사학자 마틴 말리아는 『Russia Under Western Eyes (서양의 눈에 비친 러시아)』라는 책에서---“다양한 역사 시기에서 러시아는 비난받기도 하고 칭송받기도 했는데, 이는 러시아가 유럽에게 어떤 역할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유럽 내부의 문제들, 공포,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기모순과 위기의 결과로 나타나 러시아를 향한 이와 같은 이중적 입장의 가장 좋은 예가 20세기 동방에서 떠오른 붉은 유령 앞에서 보여준 찬사 반, 혐오 반의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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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와 원교근공
글쎄 손자병법의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가 생각났다. 이는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모든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이고, 원교근공(遠交近攻)은 먼 나라와는 친교를,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와 북한은 수천년(아니 1만년) 같은 역사를 가진 동족이다. 우리가 북한을 공격할 필요가 있나? 북한이 우릴 공격할 수 있고(1950년처럼), 핵무기도 가졌으니 미국과 힘을 합쳐 대항해야 한다고?
북한은 우리보다 현격히 낮은 국력을 가졌다. 예전에 5~6%라고 했는데 요즘은 2~3%라고 하는 모양이다. GFP(Global Fire Power)는 올해 우리가 전 세계 5위, 북한은 36위라고 발표하였다(일본은 7위다). 전쟁에서 남을 공격하려면 힘이 최소한 3배, 똔 5배는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북한의 핵무기만 고려하면 된다. ‘핵에는 핵’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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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과 핵무장
북한에 대해 우리가 우크라이나, 베트남, 가나(Ghana)를 돕듯이 같은 민족으로서 잘 돕겠다고 이야기하자.
우선 핵무기를 버리라고 설득하자. 만일 여기에 응하지 않으면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다고 통보하자.
그리고 급한 일들 몇 개
1. 미군의 전시작전권을 환수한다.
2. 육군 기준 18개월인 복무기간을 병역법에 정해진 24개월로 늘린다.
3. 여성도 국방의무를 지게 한다 (병역법 개정). 다만 임산부인 경우에는 현역 복무를 면제한다(이스라엘의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