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을 다룬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보고 느낀 점은 무엇보다 처음과 끝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저 작별하지 못할 것을 마음 속에 두고 작별하려 애 쓰는 모습이 그랬다.
올 여름 열대야를 못 견뎌하며 나는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한 번 읽었다. 도대체 무엇과 ‘작별하지 못할까’를 생각하며---
경하는 고통, 유서를 완성하겠다는 모순된 의지로 몇 달을 버텨왔다는 것, 자신의 삶이라는 지옥에서 잠시 빠져나와 친구를 병문안하고 있었다. (45쪽)
사 년 동안 홀로 어머니를 간병하고 임종을 지킨 인선 (50쪽) 을 바라보며,
1부 새, 2부 밤, 3부 불꽃으로 나눈 제1부에서 아마와 아미라는 앵무새의 죽음이 있었고, 다음에는 제2부 그들의 부활이 있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점점 제주 4.3사건을 보았고---
지난 4월1일 제주도에 있었다. 제주 4.3사건의 현장인 성산 일출봉을 바라다보며, 그때 무엇을 위해 그들이 희생되었는가 생각하였다. 삶과 죽음의 현장에서---
이 숲을 지나면 건천이야, 달래듯 인선이 말했다.
그럴 리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것과 방향이 달랐다. 하지만 내가 방향감각을 잃은 건지도 몰랐다. 건천이 둥글게 숲을 감싸 흐르는 지형인지도 모른다.
돌아가자, 나는 말했다.
다음에 오자, 눈 그치고 다시.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으며 인선이 말했다.
------다음이 없을 수도 있잖아. (306~307쪽)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었을까. 이 섬에서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나.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고 언론이 통제되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의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추려낸 이십만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317쪽)
누구도 모르는 진실이 있다. 제주 4.3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이 소설의 흔적처럼.
‘잊혀지지 않는다’로 ‘작별하지 않는다’를 그려놓았다.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325쪽)
(2024년 4월 1일 고성리 해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