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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Nov 22. 2022

헤메코가 딱 이쁘더라

      

보라색 사파리와 검은색 뿔테 안경, 숱 많은 긴 머리에 통통하던 얼굴. 스무 살 때 옥이의 첫인상은 이랬다. 대학 첫 개강 날, 학교 앞에서 자취를 하고 있던 나는 학교가 바로 코앞이라고 느긋하게 준비하다가 그만 지각을 했다. 내가 꼴찌인 줄 알았더니 나보다 더 늦게 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바로 옥이였다. 그날부터 우리는 같이 붙어 다니면서 친해졌다.


같은 동아리에 들었고, 간간히 주말 아르바이트를 같이 하기도 했다. 옥이네 집에 종종 놀러 가기도 했는데, 부모님이 나를 참 좋게 봐주셨다. 오죽했으면 옥이는 나를 팔아서 1박 2일 다른 친구들과 바닷가로 놀러 가기도 했다. 나는 가정형편이 힘들었기 때문에 대학 내내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고 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 몇 시간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은 몰라도 다른 지역으로 친구들과 놀러 가기는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나 자기가 놀러 간 사이 집으로 전화를 할까 봐 놀러 가기 전에 나를 팔아서 놀러 가니까 절대 집에 전화를 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옥이 부모님은 내가 같이 간다면 흔쾌히 승낙을 하셨던 것이다.


그녀는 파릇하던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며 늘 호탕하게 웃는다. 대학 때 모 선배가 편지에 나더러 ‘분홍빛 코스모스’라고 불렀는데, 장난 삼아 옥이에게 ”내가 코스모 스니까 그럼 넌 해바라기를 해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명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스무 살 내가 종종 해바라기라고 부른 기억이 있다. 그 해바라기는 지금까지도 항상 밝은 얼굴로 나를 바라봐 준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나는 일찌감치 일하는 엄마로 바삐 살았고, 친구는 전업주부로 살다가 가끔 파트타임 일을 하곤 했다. 바빠서 서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통화만 해도, 카톡만 주저리주저리 주고받아도 힐링이 되는 친구다. 요즘은 내가 해피바이러스라고 부를 정도다. 유머 코드가 남다르신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것인지  친구가 툭툭 던지는 말에 내가 박장대소할 때가 많다.   

  

이런 옥이를 얼마 전에 잠깐 만났다. 둘 다 오후부터 일을 시작해야 해서 오전 몇 시간의 만남이었지만 기분전환이 제대로 되었다. 내가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리액션도 풍부한 친구라 이야기하는 게 신이 났다. 물론 나도 이 친구가 하는 말은 재미나기 때문에 웃을 준비를 하고 듣는 경우가 많다. 밥을 먹고, 빵조각을 뜯으며 아아를 마시는 동안도 우리는 유쾌했다.     


아아와 같이 먹자고 백화점 커피코너 옆 빵집에서 내가 빵을 몇 개 사 왔다. 친구는 ”빵을 골라와도 꼭 너 같은 걸 골라온다. “ 며 웃었다. 뉘앙스에 따라 기분이 좀 상할 수도 있는 멘트인데, 이 친구의 말투는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우리는 내가 덕질하는 가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맛있게 빵을 뜯어먹었다. 만남의 시간이 짧아 아쉬웠지만 옥이 덕에 의기소침했던 기분이 싹 사라져 버렸다.  잘 모르겠다. 친구는 사람을 유쾌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내가 좋게만 봐서 이 친구가 하는 말과 행동에 점수를 후하게 주는 것인지.


둘 중 무엇이 더 크게 좌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 타고난 천성이 내성적이고 개그 코드가 1도 없는지라 옥이처럼은 안 되겠지만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따스한 마음 하나는 품고 돌아서면 좋겠다. 빠른 시일 내에 또 만나고 싶은 사람으로 느껴지길 바란다.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옥이에게 ” 진심으로 니 헤메코가 딱 이쁘더라." 며 카톡을 보냈다. 그랬더니 ”기분 좋쿠로. 이쁘단 소리 친구한테 듣는구나. 오백 년 만에." 이렇게 답장이 왔다. 옥아, 앞으로 내가 자주 해 줄게. 이쁘단 말이 친구 사이에 뭐 그리 어려운 말이라고.          


#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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