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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 Apr 07. 2023

내 이야기가 될 수도


 갱년기. 얼굴에 열이 오르고, 밤에 자다가도 이불을 마구 걷어차는 증상. 나는 아직 멀었겠지 싶었는데, 내게도 그것이 왔다. 암 선고 역시 드라마 속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남편에게 찾아올 줄이랴. 큰 아이가 아홉 살, 작은 아이가 여섯 살 때 일이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치매 역시 흔히 들었지만 내 부모에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어느 날 아버지가 치매 진단을 받았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갔고, 결국엔 아버지를 많이 닮은 셋째 딸인 내 얼굴도, 이름도 알아보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셨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사춘기 병도 그렇다. 초등학교 때 딸아이는 내가 퇴근하고 와서 피곤해하면 3분만 눈을 꼭 감고 있으라고 했다. 3분 후 눈을 뜨면 이에 김을 묻히고,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나를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엄마, 사랑해요. 힘내세요.”라는 메모를 써서 내가 쓰는 수첩이나 안방에 붙여 놓던 그런 딸아이가 사춘기 열병을 지독하게 앓을 줄 누가 알았을까? 고등학교 때는 자퇴를 하니 마니, 내 속을 어지간히 끓였던 그 아이도 이웃집 아이가 아닌 온전히 내 삶 속 일부였다.     


 덕질도 빼놓을 수가 없다. 예전에 배용준이 나온 ‘겨울 연가’가 일본 내 한류 열풍을 일으켰다. 당시 배용준은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렸다. 일본에서 ‘욘사마’라 불리며 아줌마 팬들이 배용준을 보려고 일본에서까지 몰려왔다. “ 저 아줌마들은 참 할 일도 없구나.” 그때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그에 못지않게 열렬히 한 가수를 덕질하고 있다. 내가 쉽게 말하며 툭툭 던졌던 그 순간들이 고스란히 내 모습이 된 것이다.      


 가난했던 집안의 2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한 아이는 커서 힘겹게 대학을 졸업했다. 직장 운이 없었는지, 이 직장, 저 직장 변변찮은 회사를 다니다가 지쳤다는 생각에 덜컥 결혼을 했다. 그저 그런 월급쟁이 남편을 만나서 지지고 볶으며 살다가 어린이집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도 했다. 1년도 못 채웠을 때 남편이 위암 진단을 받았다. 병간호를 위해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남편 챙기기에 주력했다. 그 와중에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따고, 그 후 지역아동센터 독서지도교사로 7년간 일했다. 7년간 조리사 자격증 3개, 역사논술지도사, nie지도사, 독서심리상담사, 사회복지사, 방과후아동지도사, 다문화가정상담사, 인성지도사, 미술심리상담사, 자기주도학습지도사, 창의수학 지도사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아동문학회에서 1년간 무료로 진행하는 동시 수업을 받고, 동시로 등단을 하게 된다. 


 그 후 센터를 그만두고 독서논술 선생님이 되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 1급으로 합격도 하고, 책 읽기와 글쓰기를 가르치며 작년에는 동시집을 출간하는 새 역사를 썼다. 그리고 내친김에 ‘브런치 작가’로도 입성했다.    

 

또 어린 시절부터 책으로 꽉 찬 나만의 방을 갖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는데, 드디어 작년에 이뤘다. 안방 말고 내 방이 따로 있는 44평 집으로 이사한 것이다. 30년이 넘은 오래된 아파트지만 집에서 2분 거리에 날마다 만보 걷기를 하고 있는 강변 산책로와 지하철역이 있어서 만족한다. 17년을 살았던 바로 옆 아파트에서 이사 와서 올 리모델링을 했다.  

    

 문득 방 안을 둘러보며 곰곰 생각해 보니, 이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들이 어느 순간은 내 이야기가 될 수 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마냥 부러워했던 타인의 삶 어느 한 부분이 내 삶 속으로 조금 걸어 들어오기도 하고,  무관심했던 타인의 삶이 내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현재 내가 열망하고 있는 그런 삶의 모습도 하나하나 내가 준비해 나가다 보면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그에 가깝게 아니면 그 언저리쯤에는 갈 수 도 있겠다 싶어 희망을 품어본다. 그러니 이건 니 이야기, 내 이야기 단정 짓지 말자.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이야기는 특정한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지 않고, 누구든지 주연으로 앉힐 수 있으니 말이다.      


삶의 의미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생텍쥐페리     


인생에는 해결책이 없다. 나아가는 데 힘이 있다.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해결책은 따라오게 된다.      

-생텍쥐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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