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 앞의 계절 Jan 13. 2021

꽃 앞의 계절

블로그

                                                           


 나만의 공간이다. 노트다. 필사 노트다. 연필이 필요 없다. 특별하다. 창고다. 달콤 창고다. 연애편지다. 우표 없는 편지다. 수취인이 많다. 사람보다 바람이 먼저 읽을 수도 있다. 비밀이 있다. 정원이 있다. 산책이 가능하다. 길은 여러 갈래다. 미로다. 퍼질러 앉아 놀기에 좋다. 나가는 길은 많다. 꼬불꼬불하다. 저장이 가능하다. 무궁무진하다. 일상이다. 생각이다. 소소하다. 일기장이다. 관심사다. 자유롭다. 취향저격이다. 놀이터다. 숨바꼭질 장소다. 시간이 숨어있다. 역사가 담겨있다.  숨기 좋은 장소다. 시간 보내기에 효과적이다. 기억이다. 자의적이다. 물처럼 흐른다. 유유자적이다. 

책이 있다. 시가 있고 소설이 있다. 사람이 있다. 시인도 있다. 소설가도 있다. 살아가는 이야기다. 살아가는 냄새다. 너에게로 흐르는 선물이다. 쉬지 않고 흐르는 시냇물이다. 손을 담가도 된다. 발을 담가도 된다. 그냥 쳐다만 봐도 된다. 물풀이 보인다. 송사리도 있다. 피라미도 있다.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포장하지 않는다. 언박싱은 필요 없다. 언어가 있다. 그림이 있다. 당신의 눈이 필요하다. 두 개든 네 개든 그거면 족하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14년 됐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는지 최근에 알았다. 그걸 알게 된 경위는 간단하다. 최근에 2020 마이 블로그 리포트라는 걸 초록창에서 했다. 그걸 클릭했더니 그렇게 많은 세월이 그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 오랜 세월이 그곳에 담겨 있구나 생각하니 새삼스러웠다. 내가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는 간단하다. 

시를 위한 시만을 위한 시를 향한 나의 사랑을 고백한 장소가 바로 그곳이다. 시 공부를 시작하면서 필사가 필요했다. 예전에 신경숙 소설가는 소설 공부를 하면서 많은 작품들을 노트에 필사했다고 한다. 물론 그 작가를 따라 한 것은 아니다. 교수님들도 한결같이 필사를 권했다. 작품을 쓰기 전에 좋은 작품을 읽어보고 필사를 하는 것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고 늘 이야기해왔다. 

  처음엔 나도 남아돌던 용지, 뒷면이 살아있는 용지들을 모아서 거기에 필사를 하곤 했다. 연필이 짧아지면 칼로 깎아서 썼다. 몽당연필이 될 때까지 무수한 시들을 필사하곤 했다. 누구 말처럼 무식하게 필사만 하던 시절이었다. 필사를 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남의 시를 베낀다고 내가 그 시인처럼 되는 것도 아닌데 이건 쓸데없는 짓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필사를 멈추진 않았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해야 마음에 안정이 되곤 했다. 나름대로 자기만족이었다. 그냥 멍 때리며 읽는 시는 금방 잊힌다. 내가 머리가 좋은 사람도 아니고 한 귀로 들어왔다 바로 다른 귀로 빠져나간다. 

   연필은 연필만이 주는 낭만이 있다. 시커멓고 약간 떨떠름한 맛, 가끔씩 혀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까만 맛이 있다. 어렸을 땐 참 연필 맛을 왜 그렇게 보려 했는지 모르겠다. 맛있는 것도 아닌데 혀로 맛을 보곤 했다. 연필에 침을 발라 쓰면 아주 진하게 써져서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입에 댔던 적 많다. 그럴 때면 혓바닥도 시커메지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시로 침을 발라 썼으니 얼마나 많은 양의 흑연을 먹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버릇은 성인이 되고 난 이후도 마찬가지다. 물론 횟수가 줄어들긴 했다. 예전에 서너 번 했다면 지금은 한두 번으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연필을 쓴다. 예전보다 쓰는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난 연필이 좋다. 

  그렇게 오랫동안 노트에 필사를 하다가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그 후부터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으로 필사를 했다. 물론 연필로 노트에 필사를 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연필은 연필대로 자판은 자판대로 자기만의 낭만이 있다. 자판은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타자를 쳤던 손이라 익숙하다. 물론 한글 자판에 한해서다. 그때도 영타는 잘 못 쳤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시집을 펼쳐놓고 한편씩 한 편씩 자판으로 옮길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런 블로그는 아니다. 이웃이 생기건 말건, 이웃이 읽거나 말거나, 그저 나만의 만족을 위한 블로그다. 그렇게 세월이 지금 까지 흘렀다. 언제 이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는지 모른다. 그러는 동안에 이웃수가 조금씩 늘었다. 물론 지금도 많지는 않다. 나만의 블로그라 이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남들은 몇 천명씩 이웃을 늘려갈 때 난 겨우 한 두 명씩 이웃이 늘곤 했으니 말이다. 뭐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진 않는다,

    블로그에 필사한 것들이 20만 건이 넘는다. 물론 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시도 있고 문학 관련 행사나 내 개인적인 것들도 포함해서다. 최근에 시간이 많다 보니 블로그 만지는 일이 더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블로그에 관한 기사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초록창에 인물검색도 의뢰했다. 작가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초록창에 내 이름을 치면 나오는 기능, 그 기능은 동시작가가 알려줘서 신청하게 됐다. 

연예인들만 그런 기능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작가들에게도 그런 것이 있는 줄 최근에 알았다. 등록을 신청하고 나서 승인이 났다는 메일을 받았다. 얼른 초록창에 대고 내 이름을 검색해본다. 이젠 내 이름만 쳐도 버젓하게 나온다. 신청을 하기 전에도 실은 내 이름을 검색해 본 적 많다. 기사가 많이 나오진 않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검색해 봤었다. 웃긴 일이지만 재미있다. 또한 블로그도 연동시킬 수 있어서 

블로그로의 연결도 가능하다. 

  블로그는 나만의 보물 창고다. 추억이 깃든 장소다. 15년 동안의 발자국이다.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시 한 편이 새겨지는 그런 발자국이다. 쿵쿵 커다란 소리는 나지 않는다. 살금살금 너에게로 다가가는 심장 소리다. 두근 반 세근 반 설레는 호흡이다. 살아 움직이는 날갯짓이다. 한쪽의 날개가 아니라 양 날개를 단 나비다.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잠자리다. 

몇 겹의 눈을 가진 곤충이다. 사계절을 다 볼 수 있는 안경이다. 폴 폴 날리는 먼지다.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눈 밟는 소리다. 나뭇가지에 소리 없이 앉았다 지나가는 바람소리다. 바람에 이는 가지에도 설레는 가슴이다. 살포시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다. 아침에 일어나 깎아먹는 과일이다. 길게 늘어지는 하품이다. 눈물이 동글동글 맺혔다 사라지는 눈망울이다. 누군가의 똘똘한 눈동자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회전문이다. 빌딩 사이에 드리워진 그림자다. 골목을 걸어가는 가로등이다. 환하게 비추는 태양이다. 조금씩 차오르는 초승달이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다. 반짝반짝.  

     

  

작가의 이전글 안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