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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Jan 12. 2021

안경

시력

                                                          

 내 눈은 네 개다. 두개론 모자란다. 아니 안된다. 많이 부족하다.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각이 변한다. 사물을 변형시키거나 굴절시킨다. 빛도 휘어진다. 특별한 건 아니다. 굴절된 시각이다. 눈이 나빠 할 수 없이 안경을 썼다. 안경을 씀으로 많은 것이 달라진다. 사람 인상이 달라진다. 선명해진다. 뚜렷해진다. 안경에 관한 신문기사를 본 적 있다. 안경을 써야 하는 이유가 웃기다. 트럭운전사인 사람이 안경을 쓰면 대학교수가 된다. 쉬운 여자가 안경을 쓰면 어려운 여자가 된다. 범죄자도 안경을 쓰면 패션디자이너 또는 예술가로 보인다는 것이다. 안경 하나면 다른 사람으로 변신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예로 유재석과 성시경이 증명을 했다는 것이다.

안경을 동경한다. 동경했다. 안경 쓴 친구들을 보면 멋있어 보였다. 공부를 못해도 공부를 잘하는 친구처럼 보였다. 안경이 만든 마력이다. 아니 안경이 부린 마술이다. 다른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요치 않다. 난 안경 쓴 친구들을 보면 공부 잘하는 친구로 보였다. 난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친구를 좋아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좋아했다. 대놓고 말하는 성격도 아니다. 성적과 안경을 동급 취급했다. 웃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부터 안경 쓴 친구들을 보면 불쌍했다.

눈이 저렇게 나빠서 어쩌냐 싶었다. 불편해 보였다. 안경테가 늘 콧잔등에 걸려있어 안쓰러웠다. 안경 쓴 것이 멋스러워 보이는 건 중학생 이상이다. 그때부턴 안경 쓴 것이 특별나게 이상해 보이진 않는다. 나만의 생각이다. 나도 중학교 때부터 안경을 썼다. 그래서 그런 편견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칠판의 글씨가 흐리게 보였다. 처음엔 나한테만 흐리게 보이는 줄 몰랐다. 그러다가 눈이 나쁘다는 걸 깨닫게 됐다. 안경을 맞추러 갔다. 시력을 재고 안경을 껴본다. 안경을 끼고 실내에서 한동안 왔다 갔다 걸어 다닌다.

안경 쓰고 걸을 만 한지를 판단한다. 안경 도수가 자기에게 맞는지 보는 거다. 처음엔 안경 쓴 자체가 이상했다. 거울 속의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안경을 쓰기 전엔 그렇게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 내 모습은 이상하다. 생각처럼 멋있어 보이진 않았다. 남들은 다 멋져 보였는데 난 안 그랬다. 얼굴 탓도 있나? 하하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안경 쓴 모습이 멋있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막상 내가 안경을 써보니 알겠다. 거기다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귀가 아프다. 코도 아프다. 머리도 아프다. 멋과는 상관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멋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멋으로 쓰든 눈이 나빠 쓰든 자기 맘이다. 왈가왈부할 것은 못된다.

그렇게 안경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한번 나빠진 시력은 좋아지지 않는다.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시력은 점점 더 나빠진다. 천만다행인 것은 아직 마이너스 단계까진 아니다. 안경을 맞추러 갈 때마다 시력은 달라진다. 갈 때마다 나빠진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시력은 사물을 인식하는 눈의 능력이다. 사물을 보고 형태를 파악한다. 시력이 달라진 눈으로 보는 세상도 달라진다. 어제 보았던 풍경은 오늘과 다르다. 오늘 보았던 풍경은 내일과 다르다. 같은 풍경을 보는데도 시력을 그때마다 달라지는 것이다.

안경은 눈에 끼는 안경만 있을까? 내 생각은 다르다. 눈이 나빠서 안경을 끼지만 우린 눈에 보이지 않는 안경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마음의 안경이다. 우린 사람을 볼 때나 사물을 볼 때 자기만의 특별한 안경을 낀 채 바라본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나만 알고 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만 알 수 있다. 그것이 편견이든 아니든 말이다. 다른 사람 마음속을 들여다볼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 나에게도 없다. 그런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안경을 끼면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그런 안경, 누가 발견한다면 아주 불티나게 잘 팔릴 것이다.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결코 있어서도 안될 일인 것 같다. 내 마음을 누군가에게 들킨다는 건 기분 나쁘다. 나는 나만의 생각을 할 권리가 있다. 나 만의 안경을 가질 권리도 있다. 물론 그것이 편견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가끔 더러워진 안경을 닦는다. 그럴 대마다 느낀다. 안경만 깨끗하게 닦을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안경도 깨끗하게 닦아야겠다. 전제조건이다. 그렇지 않으면 바라보는 것들이 순수하지 못하다. 얼룩진 마음으로 보게 된다.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수시로 닦아 내야 한다. 나도 마음의 안경을 수시로 닦아야 한다. 속세에 물들지 않도록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안경하면 떠오르는 책이 있다.

프랑수아 를로르가 지은 "꾸뻬 씨의 핑크색안경 '이다. "안경을 바꾸는 일은 언어를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로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일매일 꾸준히 몸에 익혀야 하니까""스무 번째 교훈, 행복이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아, 다행이로군요 그런데 말은 그럴듯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해야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수가 있죠?" "자기 한데 맞는 핑크색안경을 만들어야죠."꾸뻬 씨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려면 자기 한데 맞는 안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핑크색이면 어떻고 까만색이면 어떨까 싶다. 색은 상관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이면 충분하다.

다만 어떤 색을 결정하든 그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시력 좋은 사람이 부럽다.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안경을 쓰든 안경을 쓰지 않든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어떤 것을 바라볼 때 편견을 갖지 말라는 말이다. 마음의 안경을 쓰지 말라는 말이다. 나부터 실천해야 할 일이다. 안경만 닦지 말고 마음의 안경을 닦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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