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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Mar 31. 2021

작은 집으로의 초대

 


 9월에 이사를 가야 한다. 고민이 많다. 이사 갈 집은 지금 사는 집보다 평수가 작다. 8평 정도 작다. 지금 사는 집 화장실은 하나다. 이사 가도 화장실은 하나다. 다음에 이사 갈 때는 화장실 2개 있는 집으로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안됐다. 하긴 생각처럼 다 되면 사는 재미가 없지.  이사를 몇 번 다녔지만 작은 집으로 가는 건 처음이다. 솔직히 상상이 안 간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현재는 그냥 간단하게 생각하고 있다. 되도록이면 짐을 줄여보자. 이것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다. 조금씩 집을 넓혀 갈 때마다 짐이 늘었다. 집이 넓어진 만큼 짐이 늘다 보니 집은 커진 것 같지 않다. 지금 사는 집은 거실도 적고 평수도 넓지 않다. 그렇다고 살림이 많은 것도 아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올 때 이삿짐센터 견적을 내러 온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 '직장 다니시나 봐요?' '네' '어떻게 아셨어요?' '짐 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이삿짐 쌀 때마다 그런 말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은 늘어난다.


  세월이 흐를 때마다 조금씩 집을 넓혔다. 전세에서 자가로 바뀌었다. 공간은 채우라는 있는 걸일까? 비움의 미학이란 없는 걸까? 아님 내가 문제일까? 공간이 비어 있는 것을 그냥 두지 못한다. 평소에 물건을 이것저것 사들이는 사람도 아닌데 빈 공간이 거의 없다. 내 생각엔 꼭 필요한 것들만 산 것 같다. 그럼에도 필요치 않은 것들이 많다. 그때는 필요했고 지금은 필요 없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주부 몇십 년 차지만 살림은 여전히 어렵다. 물건이나 가구들은 한번 사면 잘 바꾸지 못한다. 고장 나지 않는 한 버리지 못하고 쓴다. 예를 들면 결혼 전 자취할 때 쓰던 토스터기를 지금도 쓰고 있다. 금성, 토스터기다. 고장 한번 나지 않고 여전히 잘 쓰고 있다. 골동품인 셈이다. 아마 지금은 그런 걸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오래된 제품이다. 그런 성격이다 보니 살림살이가 남들처럼 많진 않다. 그릇도 결혼 때 장만했던 것들을 거의 그대로 쓰고 있다. 중간에 몇 개 정도 더 산 것 같다. 가볍고 쓰기 편한 물건으로 샀다. 많이 쓰는 프라이팬, 냄비, 간단한 그릇 몇 개 교체 한 정도다. 다른 집에 비하면 살림도 적다. 그런데도 베란다 앞 뒤 창고에 물건이 쌓여 있다. 거기다가 따님 방에는 피아노도 있다. 팔던가 정리를 하라고 했더니 가끔 쳐야 한다며 가지고 갈 심산이다.


  남들은 재테크로 부동산을 사기도 한다. 난 부동산에 별 관심이 없다. 그런 나에게 아파트 청약을 해 볼 기회가 찾아왔다. 아주 오래전 일이다. 결혼 전 직장생활 중에 있었던 일이다. 그때 당시 난 직장동료 집에 방 한 칸 전세로 얹혀살고 있었다. 부천 중동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당시 그곳은 논밭이었다. 그 기사를 본 다음 날이 아파트 청약을 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다음 날 오후에 반차를 내고 서류를 준비해서 분양 사무실로 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분양한다고 하길래 무작정 가 본 것이다. 돈이 없으니 큰 평수는 엄두도 못 내고 그중에 가장 작은 평수에 응모했다. 13평이었나? 원룸형으로 된 아파트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분양가가 천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천만 원은 큰돈이었다. 나에게만 큰돈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내 이름으로 된 첫 집을 갔게 되었다. 입주할 때는 남동생이 그곳에서 살았다. 그 사이 나는 결혼해서 다른 집에 살았다. 13평 보다는 살짝 큰 전셋집에 살았다. 방 두 칸에 화장실 하나. 전셋집은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가야 했다. 최근엔 법이 바뀌어 전세입자가 원하면 4년까지 연장해서 살 수 있다고 한다. 예전엔 대부분 2년이었다. 해마다 전세금은 올라가는 걸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3년 전에 청약의 기회가 또 찾아왔다. 몇 군데 넓은 평수를 넣었는데 계속 떨어졌다. 청약 점수가 낮아서 가능성이 희박했다. 그래서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좁은 평수를 선택했다. 이번엔 예비에 당첨됐다. 예비번호를 받고 가능성이 거의 없을 줄 알았는데 중간에 연락이 왔다. 천만 원 계약금을 준비해놓고 분양 사무실로 갔다. 그 당시 예비 8번인가 그랬던 것 같다. 예비 1번부터 줄을 세웠다. 내 앞으로 서너 명이 있었다. 그나마 몇 명이 오지 않아서 그 정도였다. 아마 내 앞으로 다 왔으면 난 가능성이 없었을 것이다. 빠진 사람 덕에 내 순번까지 가능했다. 바로 내 뒤에 있는 사람까지 추가 당첨자로 선정됐다. 선정된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가서 아파트 호수를 뽑았다. 아파트 동은 이미 정해졌고 층수만 추첨하면 되는 상태였다, 저층부터 고층까지 골고루 있었다. 내 앞에 있던 사람들이 저층에 당첨되고 다행히 난 중간층을 뽑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바로 앞사람은 3층을 뽑았다. 건설사 직원이 '그냥 계약하실래요 아니면?" 묻는다. 잠시 고민하더니 그냥 받겠다고 결정했다. 층수를 잘 뽑는 것도 행운이다. 고층을 뽑은 사람도 있다. 원래 그 집은 아들이나 딸 결혼하면 줄까 하고 분양을 받아 놓은 집이다. 그런데 아들이 직장이 너무 멀어서 싫다고 한다. 거기다 평수도 너무 적어서 불편해서 싫단다. 결국 우리가 들어가서 살기로 결정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30년이 넘은 아파트다. 주변은 재건축이 확정됐는데 우리는 재건축 이야기가 없다. 아파트가 너무 튼튼해서 언제 될지 모른다고들 말한다. 동수가 몇 동 되지 않아 건축업자들이 달려들지 않아 더 어렵다고 중개사들은 입 모아 말한다. 재건축을 기다리기도 애매하고 팔기도 애매하다. 아직도 고민 중이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빨리 결정을 해야 한다. 팔아야 하는 건지 전세를 주고 가야 하는 건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주변 사람들 의견은 반반이다. 그게 더 고민이다. 이곳은 서울처럼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 주변 아파트에 비해 시세도 별로다. 막상 이사를 가려고 하니 걸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귀차니즘에 빠진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일에 젬병이다. 세금을 생각하면 팔아야 할 것 같고 재건축을 바라보면 전세를 줘야 할 것 같고 정말 모르겠다. 분양받을 당시만 해도 부천은 투기지역에서 제외였다. 부동산법도 바뀌고 부천도 투기지역으로 들어가면서 복잡해졌다. 세금에 관해선 잘 모르지만 많아졌다고 한다.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만 간다. 하늘 높은 줄은 알았지만 집 값이 이렇게 많이 오를 줄 누가 알았을까? 부천은 그래도 서울에 비하면 덜한 편이다. 서울 집값은 기가 막힐 정도다. 감히 입으로 되뇔 수도 없는 숫자다.


  나도 모르게 엄마를 닮아 가나? 그러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시골집에 갈 때마다 난 엄마에게 말했었다. 안 쓰는 것들은 제발 버리라고 잔소리처럼 말하곤 했다. 시골집에 가보면 안다. 살림살이가 얼마나 많은지. 엄마도 살림살이를 한번 사면 버리지 못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엄마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러고 있는 내가 보인다. 엄마는 지금 연세가 많아서 살림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부지런한 올케들이 엄마 살림살이를 거의 다 정리했다. 꼭 필요한 것들만 남기고 싹 정리했다. 나도 싹 다 정리할까? 하다가도 미련이 남는다. 버리고 나면 그 뒤에 이상하게 또 쓸 일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또 사게 된다. 버리고 사고 버리고 사는 일들이 반복되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사서 처박아 두곤 못 찾아서 또 사는 경우도 있다.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 일이다.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정리의 달인은 아니더라도 웬만큼 하면 좋을 텐데 그쪽으론 관심이 잘 안 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창고에는 물건들이 많이 쌓여 있다. 우리 집은 베란다가 양쪽에 있다. 한쪽은 신랑 물건이고 한쪽은 내 물건이다. 저번 주 일요일은 한쪽 창고를 정리했다. 신랑 물건들이다. 버릴 것은 버리고 아까운 물건들은 조카네 갔다 주기로 결정했다. 조카가 쓸 수 있는 것들은 골라서 쓰겠다고 한다. 그나마 다행이다. 필요악이다. 한번 쓰고 나면 필요치 않을 때도 있다. 그런 것들이 주로 창고로 직행한다. 생각보다 그런 것들이 훨씬 많다. 그렇다고 빌려 쓸 수도 없고 참 난감하다. 내 물건들은 대부분 직장 다니면서 취미 활동하면서 만든 작품들이다. 지금은 대부분 먼지와 친구하고 있다. 종이 감기를 배울 때 만들었던 액자들이 가장 많다. 집 안 곳곳에 걸려 있는 것도 많지만 걸리지 못한 것들도 많다. 캘리그래피 배울 때 했던 작품들, 수채화 배우면서 그렸던 그림들. 정말 많은 작품들이 있다. 버리기는 아까운 물건들이다. 어찌 보면 청춘의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이다. 나의 손때가 묻은 것들이라 함부로 버리지도 못하고 껴안고 있다. 이번 이사 때에는 애장품들도 많이 버려야 할 것 같다. 얼마 전에 정리한 책들처럼 이제 내 손을 떠나보내야 물건들이 오손도손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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