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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Jan 09. 2021

타바코

담배

                                            



기호식품이다. 맛과 향을 즐기기 위해서다. 독특하다. 습관적이다. 중독이다. 지독하다. 없이는 견디지 못한다. 맛은 모르겠고 향은 있다. 냄새는 있다. 신랑은 아직도 담배를 피운다. 말로는 군대 가서 배웠다고 한다. 스무 살에 시작한 것이다. 금연 시도를 한 적 있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실패를 몇 번 하더니 포기했다. 금연을 나도 권한 적 있다. 듣는 둥 마는 둥 해서 나도 포기했다. 처음엔 아파트 베란다에서 폈다. 창을 열어놓고 폈다. 무심한 날들이 여러 날 지났다. 어느 날 현관 벨이 울려 문을 여니 위층 새댁이었다. 손에는 비타민c 박스가 들려있었다. 집에 아기가 있는데 담배 연기가 위층으로 올라온다는 것이다. 박스를 내밀며 부탁을 하고 갔다. 비타민 박스를 돌려보낼 순 없었다. 그것도 아기가 있다는 말에 신랑은 고개를 숙였다. 새댁이 돌아갔다. 신랑은 고뇌에 빠졌다. 날씨는 날마다 온도를 갱신하고 있다. 이 추운데 밖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비타민, 시원하게 신랑이 마셨다. 그러고 나서 하는 말, 뇌물도 먹었으니 담배 피우러 밖으로 가야지. 하며 그때부터 밖으로 나간다. 아이라면 신랑은 깜빡 죽는다. 아기를 무척이나 예뻐한다. 좋아한다. 결혼 전에도 조카들을 귀여워했다고 한다. 아들 딸이 생긴 후에는 직접 애들을 목욕시키고 병원에 데려가고 했다. 그 손에서 애들이 컸다. 아들도 성인이 됐다. 성인이 되자마자 아들도 담배를 폈다. 아들은 아내가 임신하자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끊는 방법엔 아이가 직빵이다. 이젠 우리도 나이가 들어 손녀가 생겼다. 손녀를 만나러 갈 때 신랑은 치약과 칫솔을 차에 챙겨간다. 만나기 전에 밖에서 이빨을 닦고 입을 헹군 다음에 손녀딸을 보러 간다. 습관이 됐다. 그런데도 담배는 끊지 못한다. 쉽지 않아 보인다. 예전엔 차 안에서도 폈다. 물론 창문을 열고 피긴 했다. 그래도 차 안에 담배 냄새가 배기 마련이다. 찌들 정도까진 아니지만 차에 타면 냄새는 났다. 오래된 자동차를 작년에 새 차로 바꿨다. 하이브리드로 갈아탔다. 남자들은 차에 대한 로망이 있다. 신랑도 예외는 아니다. 이삼 년 전부터 새 차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모른 척했다. 그런데 도로 중간에서 차가 퍼지고 말았다. 안 살래야 안 살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서비스센터에서 하는 말이 고치는 값 생각하면 새 차로 사는 게 나을 거라 했다.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다. 차가 퍼지던 날은 아들 집에 손녀딸을 보러 갔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그나마 사고가 안 난 게 다행이었다. 그렇게 헌 차를 폐차했다. 하이브리드는 처음이다. 자동차가 오자마자 쓸고 닦고 난리다. 그렇게나 로망 하던 새 차였다. 새 차를 사면서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물론 내가 시킨 건 아니다. 본인 스스로가 결정한 것이다. 차 안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지금까지도 차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좋은 일이다. 손녀딸을 보러 갈 때도 여전히 근처에서 양치를 하고 들어간다. 귀찮을 법도 한데 그런 건 잘 지킨다. 그래도 담배를 끊지는 못한다. 지금도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 추운 날,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가곤 한다. 어느 날은 추워서 담배도 끊어야 하나 싶다고 말은 한다. 그러나 끊지 못한다. 어려운 일인가 보다. 지금까진 신랑 이야기였다. 이제부턴 담배에 관한 나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대부분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서 편견이란 작가들은 담배를 필 거라는 편견이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학 때 일이다. 문창과라서 담배 피우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 친구들은 쉬는 시간만 되면 밖에 나가 담배를 피워 댔다. 하긴 그때는 그것이 대학생 만의 특권인양 누리던 시절이었다. 담배 연기 사이를 헤집고 사느라 풀들은 파랗게 기가 죽어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 이야기다. 그 친구랑 나는 서울에서 직장 다닐 때 자취를 했다. 한동안 같이 살았다. 그 친구가 먼저 서울에 정착해서 직장 생활을 했고 거기에 난 꼽사리로 들어가 같이 살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살았다. 그 친구는 골초다. 왜 그렇게 담배를 많이 피우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모른다. 어느 날 그 친구랑 함께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자긴 중간에 내리겠다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내려서 담배 한 대 피고 가야겠다는 것이다. 도저히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네 맘대로 해. 내가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 친구는 내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카페에 가서 담배를 피웠단다. 그리곤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그 당시만 해도 여자들이 담배를 피우는 게 금기시되던 때였다. 

  지금처럼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담배를 피우려면 카페라도 들어가 화장실에서 피곤했다. 그때부터 그 친구는 그렇게 담배를 피웠다. 일 보러 가다가도 만사 다 팽개치고 담배 먼저 피곤했다. 지금은 그 친구랑 연락이 닿질 않는다. 그 친구랑 나랑은 많이 달랐다. 모든 면에서 다르다. 담배뿐만이 아니라 남자를 사귀는 모습도 정말 다르다. 난 담배도 연애도 관심이 없었다. 먹고사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 친구는 벌써 그런 것들에 눈을 뜨고 있었다. 그 친구는 유부남과 사귀고 있었다.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보여준, 아니 들킨, 그 친구는 결국 나와 헤어졌다. 많은 것이 다른 친구였다. 그 친구는 지금도 나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 다른 친구들과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다. 대부분의 친구들과도.

  광화문 촛불시위가 한창인 시절로 가 본다. 겨울이라 정말 추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동여매고 나가도 손과 발 모두 너무나 추웠다. 밖이라서 더욱더 그랬을 것이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깃발 아래로 모였다. 모여 촛불시위를 하고 행진을 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곤 했다. 춥다 보니 당연히 따스한 것을 찾게 마련, 우린 수시로 커피를 마시고 뜨거운 것들을 홀짝 거리곤 했다. 뜨거운 것에 담배가 포함되곤 했다. 그게 말처럼 뜨거운 것인지 난 모른다. 하지만 작가들은 열심히 담배를 피우러 동선 밖으로 이탈하곤 했다. 아마도 피우는 장소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거기엔 여자 남자가 따로 없다. 수시로 들락거리며 담배를 피워 댔다.

  이상할 건 없다. 나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안 이상한 것도 아니다. 작가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나에게도 가끔 담배를 권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런 일들이 있다. 작가라면 다들 담배를 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새다. 담배를 피우던 안 피던 자기의 생각대로 사람들은 산다. 나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내 생각대로 살고 있다. 그것을 강요하지도 강요당하지도 않는다. 스스로 선택을 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하는 행동일 것이다. 좋다 나쁘다로 딱 꼬집어 말한 순 없다. 그것도 하나의 기호식품이라고 누구는 말한다. 지금은 어디서나 담배 피우는 여성들을 많이 만난다. 예전에 비해 정말 많이 늘어난 것 같다. 예전엔 숨어서 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남자나 여자나 가릴 것 없이 아무데서나 피우곤 한다. 내가 그 사람들을 폄하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작가들은 술도 잘 먹고 담배도 잘 필 거라는 말에는 동감하지 않는다. 대개 다 그럴 거라는 편견 속에 갇히는 걸 싫어한다. 더군다나 그것이 편견일 경우에는 특히 더 그렇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정말 술을 잘 마시는 교수님이 있었는데 그 교수님이랑 출판사에 간 적 있다. 그런데 나에게 대뜸 한다는 말이 술을 잘 먹게 생겼다며 언제 술 한잔 하자는 말이 건너왔다. 술 잘 마시는 교수님과 같이 있다고 해서 술을 잘 마시게 생겼다는 말은 무슨 개 같은 말인가 생각 같아선 펀치 한대 날리고 싶었다. 그 교수님은 실제로 바람도 잘 피우던 교수님이었다. 그러면 나도 그렇고 그런 사람으로 볼 것이 아닌가? 물론 술을 잘 먹는다고 해서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평가하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겉만 보고 판단하길 좋아한다. 특히 생김새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기도 한다. 물론 생김새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겉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선 안된다. 어떤 사람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사람을 아는 척 판단하는 말을 쉽게 내뱉는 게 문제다. 그런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난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한 때는 담배 냄새를 좋아한 적 있다. 물론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다. 뇌쇄적이고 퇴폐적인 냄새에 홀린 적 있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 내가 왜 그 냄새에 취하게 됐는지 모른다. 아마 신랑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주변에 담배 피우는 사람이 많아서 그랬나 싶다. 담배 냄새가 좋다는 말은 가설이다. 가설을 따라가 보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전혀 다른 현상들이 존재한다. 어느 순간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헤맬 수도 있다.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그 골목 끝 구석에서 혼자 훌쩍거리는 아이가 있다. 혹시 나일까 아니면 너일까 알 수 없다. 무엇이든 강요론 되지 않는다. 성인인 만큼 본인이 알아서 할 일이다. 담배를 끊든 말든 말이다. 옆사람의 말은 효험이 없다. 약효가 없다. 약발이 듣지 않는다. 아마 다들 그렇다는 걸 알 것이다. 스스로 어른이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중독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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