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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Jan 08. 2021

고향

청주

  

고향, 말만 들어도 좋다. 아스라하다. 아지랭이 같다. 가슴이 설렌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 고향은 청주다. 교육의 도시다. 청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진입로다. 가로수 길이 랜드마크다. 여름이면 플라타너스가 하늘을 가린다. 나뭇잎 사이로~~ 란 노래가 절로 나온다. 유명한 '모래시계'와 '만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총길이는 6.3km이다. 1600여 그루의 플라타너스가 심어진 터널이다. 청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면 가로수 길이 이어진다. 죽 늘어선 나무들이 나를 반겨준다. 계절이 다르듯 반기는 방법도 다르다. 겨울은 헐벗은 모습으로 반긴다. 온몸을 다 내놓고 껴안아준다.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신을 내어 보인다. 고향은 그런 곳이다. 화려하지 않고 수수하다. 감출 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좋다. 꾸미지 않아서 좋다. 자연 그대로가 좋다. 거기에 엄마가 있어 좋고 가족들이 있어 좋다. 

  이번 여행은 장례식 참석 차 갔다. 집에서 버스를 타고 소풍 터미널로 간다. 터미널 이름이 소풍이다. 터미널에 딱 맞는 이름이다. 소풍을 갈 때마다 이름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소풍 하면 두 갈래 길이 떠오른다. 하나는 기쁨으로의 초대다. 학창 시절 김밥 싸들고 떠났던 소풍이다. 소풍 전날은 잠도 설친다. 들뜬 마음으로 새벽에 잠이 깬다. 평소 같으면 엄마가 깨워야 일어나지만 그날만큼은 깨우지 않아도 일어난다. 스스로 어린이가 된다. 이날은 발걸음도 가볍다. 배낭은 무겁지만 전혀 무겁지 않다.  

  소풍의 두 번째 길은 전혀 다른 소풍이다. 슬픔으로의 초대다.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누군가의 슬픔에 초대되어 가는 길이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다.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이럴 때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떠올린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여기서 시인은 삶을 소풍이라고 말한다. 소풍길은 아름답다. 계절을 만끽한다. 길을 걷는 동안 행복하다. 소풍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또한 그러하다. 소풍은 즐겁고 슬픈 두 갈래의 길을 선사한다. 산다는 것이 마냥 즐겁진 않다. 기쁜 일이 있으면 슬픈 일도 있다. 그래서 세상은 돌아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나도 그 속에서 산다. 기쁘고 슬픈 굴레 안에서 기뻐하며 슬퍼하며 산다. 

가장 추운 날씨라고 뉴스에서 떠드는 바람에 단단히 여미고 나왔다. 

소풍 터미널에 도착했다. 어제 미리 핸드폰으로 표를 예약했다. 7번 좌석, 창가 자리다. 요금도 많이 올랐다. 코로나 시대라 그런지 터미널엔 사람이 없다. 나처럼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드문드문 사람들이 앉아 있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버스를 탄다. 나포함 5명뿐이다. 기사님을 포함하면 6명이다. 기름값도 안 나올 것 같다. 우등버스라 다른 차보다 크다. 비싼 만큼 넓고 쾌적하다. 승객이 없으니 더 고즈넉하다. 창밖은 을씨년스럽다. 앙상한 가지마다 겨울을 달고 있다. 눈 덮인 산 등성이가 멋스럽다. 평소엔 두 시간 걸린다. 오늘은 고속도로에 차가 없다. 차가 쌩쌩 달린다. 뻥 뚫렸다. 가로수 길을 지난다. 플라타너스가 앙상하다. 빈약하다. 헐 거 벗은 가로수 길을 지나며 초록을 생각한다. 초록초록을 지나 겨울을 견디고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겨울은 겨울대로 낭만이 있다. 빈 들판을 지나는 기분도 나쁘진 않다. 비어야 채워질 것이므로.  한 시간 반 만에 청주에 도착했다. 청주 터미널에도 사람이 별로 없다. 이제 고향에 안겼다. 날씨는 춥지만 맘만은 따스하다. 그래서 고향은 좋다. 장례식장에 갔다. 목련 공원 장례식장이다. 공원이란 이름을 빌어서 쓴다. 대부분이 그렇다. 조문을 하고 엄마 곁으로 간다. 엄마는 주간보호센터에 갔다 와서 벌써 잠이 들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엄마가 깼다. 엄마를 꼭 안아준다. 습관처럼 엄마가 안긴다. 아기를 안듯 엄마를 품는다. 어릴 적 엄마가 나를 안아주듯 이젠 내가 엄마를 안아 준다. 물론 느낌은 다르지만 좋다. 포근하다.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혼자 사시는데 자주 오지 못한다. 이런저런 핑계가 많다. 오랜만에 집에 왔다. 수다 삼매경이다. 늘 혼자만 계시다 내가 오면 좋아한다.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는 게 엄마는 좋은 거다. 엄마는 한 얘기를 또 하고 또 한다. 과거 이야기다. 옛날이야기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산에 가서 나무를 해 오던 이야기가 시작이다. 시어머니가 시집살이시키던 이야기도 한다. 세 시간도 끄떡없다. 이야기보따리는 두둑하다. 과거의 보따리다. 나한테만 하는 이야긴 아니다. 어느 가족을 만나도 레퍼토리는 늘 같다. 같은 이야기인 줄 알면서도 늘 맞장구를 쳐준다. 신난 엄마는 더 열심이다. 당신이 지칠 만큼 해야 이야기는 끝난다. 졸려야 이야기가 끝난다. 그때쯤 되면 이야기를 접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야기가 피곤했는지 이내 잠에 든다. 그렇게 엄마랑 시간을 보낸다. 엄마가 주무시면 나는 티브이 앞에 더 있는다. 하품을 몇 번 하다가 나도 엄마 품으로 파고든다. 쭈글쭈글한 엄마 손을 한번 잡아본다. 자고 있는 엄마 얼굴은 편안하다. 더러 그릉그릉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다. 그 소리가 나에겐 자장가다. 그 소리가 안 들리면 오히려 불안하다. 다른 자장가는 필요치 않다. 엄마만 낼 수 있다. 엄마가 여기 있다는 표시다. 그 소리로 엄마가 있다는 걸 안다. 새벽 5시, 눈 떠보니 엄마가 없다. 그 시간에 일어나서 목욕을 마쳤다. 센터에 가기 위한 필수코스다. 센터 차는 8시 15분쯤에 엄마를 데리러 온다. 그런데 엄마는 5시에 벌써 일어나서 갈 채비를 마친 것이다. 덩달아 나도 잠이 깼다. 뭐 하러 일찍 일어나냐며 더 자라고 한다. 못 이기는 척 난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밖에서 그렁그렁 거리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으로 빠져든다. 살짝 잠이 들었나 했는데 눈뜨니 6시다. 한 시간을 더 잤다. 이젠 일어나야지 거실로 나온다. 엄마는 창문 커튼을 제친다. 창 밖 지붕에 흰 눈이 소복이 쌓였다. 밤새 눈이 내렸다. 지붕마다 하얗다. 날씨는 춥다. 아파트가 아니라 냉기가 많다. 주택은 확실히 춥다. 그런데도 엄마는 춥지도 않나 보다. 익숙한 모습이다. 아파트에 익숙한 난 춥다. 더군다나 새벽이다. 아침 메뉴는 요구르트 하나다. 부담되는지 아침은 잘 먹지 않는다. 오늘은 어제 사온 떡 하나를 요구르트와 드셨다. 센터 갈 준비는 완료되었다. 학교 갈 채비를 마친 학생처럼 옷을 차려입고 있다. 그러고 나선 시계만 쳐다보고 있다. 언제 8시가 되려나. 난 티브이를 켠다. 뉴스를 본다. 엄마는 다시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어제와 같은 이야기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등장 인물도 같다. 그래도 열심히 들어준다. 8시가 넘자마자 밖으로 나간다. 센터 차는 아직이다. 빗자루를 들고 대문 앞을 쓴다. 동네 사람들이 자기 집 대문 앞을 쓴다. 이 집 저 집 다 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다. 옛날에 자주 보던 경치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다. 집 앞에 쌓인 눈을 쓸어내는 모습도 정겹다. 장갑을 끼고 열심히들 쓸어낸다. 예전 같으면 눈사람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기엔 난 너무 커버렸다. 눈사람에 흥미가 사라졌다. 그러나 마음속으론 눈사람을 만들고 있었다. 쌓인 눈을 보면 눈싸움하던 시절이 생각난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온 날은 학교에서 방송을 했다. 눈 치우러 학교에 오라고. 방송을 들으면 우리는 하나같이 빗자루 하나씩 들고 학교에 모인다. 물론 학교 주변에 사는 친구들만 온다. 난 학교 담벼락에 살았다. 쌓인 눈을 치우고 또 치운다. 그렇게 다 치우고 나서 눈사람을 만들곤 했다. 물론 눈싸움도 했다. 눈싸움 반 눈 쓸기 반 그렇게 한 것 같다. 그 덕에 추운 줄 모르고 열심히 빗자루 질을 했다. 어릴 땐 눈으로 집도 만들었다. 굴처럼 만든 집이다. 한쪽에 대문을 만들어 놓고 그곳으로 드나들었다. 신나는 놀이였다. 지금은 할 수 없는 놀이다. 눈을 보니 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옆집이 슬레이트 지붕이다. 슬레이트 처마 밑으로 고드름이 달렸다. 예전엔 고드름을 따서 먹었다. 유리처럼 반질반질한 고드름을 과자처럼 아삭아삭 깨물어 먹곤 했다. 과자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따지고 보면 아이스크림의 원조다. 고드름에다 색깔만 첨부하면 아이스크림이다. 우리 시절엔 하드라고 불렀다.   

추운 날 먹던 고드름이나 추운 날 먹는 아이스크림이나 느낌은 같다. 달달한 맛이 조금 다를 뿐이다. 추억이 다를 뿐이다. 그 시절에만 먹을 수 있던 거다. 아마 지금은 고드름을 먹는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먹을 게 천지인데 누가 그깟 고드름을 먹겠는가. 우리 시절이나 가능한 이야기다. 그때 그 시절만 있었던 이야기다. 

엄마는 센터에 가셨다. 난 다시 청주 터미널로 간다. 표는 어제 미리 예약했다. 부천으로 올라가는 차도 사람은 별로 없다. 다시 고향을 떠난다. 가로수 길을 지난다. 오늘은 플라타너스도 춥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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