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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Jan 06. 2021

남산

명동

  

남산, 가본 지 오래다. 남의 산이다. 내가 사는 곳은 부천이다. 남산은 서울에 있다. 최근엔 가 본 적 없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세월을 역행해야 한다. 언제였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생각해보니 대학 때인 것 같다. 다행히도 학교가 남산 근처다. 그 덕에 남산을 갔다. 일부러 남산을 찾아간 것이 아니다. 남들은 연애할 때 자주 간다던데 난 그때 무얼 했나 싶다. 생각해보니 연애도 별로 못해봤다. 아, 스무 살, 청춘을 허비했다. 낭비했다. 무심했다. 칼날 같은 시절이다. 난 한심하게 보냈다. 그 시절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었을 텐데 말이다. 아깝다. 누군가를 생각하며 걸을 수 있는 낭만의 거리를 추억을 함께 소유할 친구가 없다니 슬프다. 

남산 하면 열쇠 광장, 은행잎, 연인들이 떠오른다. 그중에서 난 단연코 은행잎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팔각정을 향해 산을 오른다. 자동차들이 줄지어 올라간다. 가로수가 은행나무다. 가을이면 열매를 매단다. 그리곤 잎을 떨군다.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이제 나도 손을 내려놓는다는 듯. 모두 내려놓는다. 한 숨 돌리듯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은행잎들은 수북하다. 걸을 때마다 이불 위를 걷는 듯하다. 사뿐사뿐 걷는다. 노랑노랑 잎들은 병아리 같다. 삐약거리는 아기들 같다. 이제 막 입학하는 아이들처럼 바닥에서 수근 거린다. 짹짹거린다. 삐약거린다.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치근덕 거린다. 밉지 않다. 귀엽다. 누군가는 골치 덩어리겠지만 난 그 길이 좋았다. 가장 많이 갔던 계절이다. 가을이 남산 구경엔 제격이다. 내 맘에 쏙 든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을에 남산을 제일 많이 간 것 같다. 그래서 더 좋았나 보다. 남산을 올라가다가 딱 한번, 댓시를 받은 적 있다. 전화번호를 물어보던 사람이 있었다. ㅋ ㅋ 이런 일도 있었다. 겨우 한 번이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연락이 왔으나 내가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걸로 끝이었다. 앤드. 

  내가 다니던 대학은 남산 밑에 있다. 대학생활을 제대로 누리진 못했다. 야간 대학생이었다. 대학의 낭만과는 거리가 먼 생활이었다. 낭만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찾아볼 수 없던 시절이다. 나만 낭만과 담을 쌓고 살았다. 다른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다. 나의 경우만 예외다 대학은 낭만과 연결된 단어다. 캠퍼스 담벼락에 붙어 남자 친구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걸로 낭만을 대신했다. 그 이윤 간단하다. 난 이미 그때 결혼한 상태였다. 다른 친구들은 스무 살 꽃띠였다. 이성에 관심 많은 나이다. 최대의 관심사였다. 카운슬러 역할을 해줬다. 물론 연애를 많이 경험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 부분도 선배다. 선배 입장에서 조언을 해주곤 했다. 물론 난 그때 바빴다. 직장생활에 야간대학에 아이들 케어에 정말 정신없었다. 어떻게 그 시절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눈코 뜰 새 없다는 말이 실감 났다. 바쁘게 살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래도 그때가 낭만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땐  그런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항상 느낀다. 그 시절이 지나 고나야 그때가 멋있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리고 그 시절을 회상한다. 시간은 이미 지났다. 필름을 되돌릴 순 없다. 하지만 그 시절은 고스란히 추억 속의 앨범에 사진으로 남아있다. 생각날 때마다 한 장씩 꺼내어 본다. 그 시절 속으로 들어가 보곤 한다.  

  학교를 가려면 명동역에서 내린다. 명동역, 서울의 중심지다. 멋쟁이들의 거리다. 그야말로 쭉쭉빵빵한 아가씨들의 공연장이다. 사람들의 광장이다. 만남의 장소다. 그땐 명동 근처에서 약속들을 많이 잡았다. 사보이 호텔 근처 미용실에 다녔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그곳으로 머리를 하러 가곤 했다. 평소에도 사람들이 많지만 연말엔 엄청나다. 어디서 저렇게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나 할 만큼 거리엔 사람들로 넘친다. 우리나라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다.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들도 숫자를 보탠다. 거리엔 중국말, 일본말들이 넘쳐난다. 그런 곳을 매일 들어갔다 나오는 일은 힘든 일이다. 발에 치이는 것이 발이다. 

명동 콜링, 카더가든의 노래가 생각난다. 

명동 하면 그 노래가 떠오른다. '크리스마스 저녁 명동거리 수많은 연이들 누굴 약 올리나 갑자기 추억들이 춤을 추네 보고 싶다 예쁜 그대 돌아오라 나의 궁전으로' 랄랄라, 돌아올 그대는 없다. 유행가 가사 속에만 존재한다. 그래도 명동은 낭만이다. 그대가 있든 없든 낭만적이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대라는 말 때문이다. 명동역에 학교가 있어서 좋았다. 물론 사람 구경하는 것도 좋다. 간판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그것도 볼거리다. 간혹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 가다가 멈추는 일이 있긴 해도 그 정돈 참을만하다.  

  명동역에서 내린다. 편의점을 지난다. 호프집을 지난다. 퍼시틱 호텔을 지나면 좁은 골목이다. 거기부턴 잡다한 상점들이 많다. 숨차다. 언덕이 가파르다. 언덕 위에 하얀 집은 없다. 유행가에서나 볼 수 있다. 대체로 빨간 집들이다. 벽돌집이다. 우리 학교 건물도 빨간 벽돌이다. 수업은 깜깜한 밤에 끝난다. 그러니 남산을 올라가 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유명하다는 돈가스 집은 자주 갔다. 평일엔 가지 못하고 시험기간에 주로 가볼 수 있었다. 시험 기간에는 직장도 휴가를 냈다. 그러는 날에만 특별히 돈가스를 먹을 수 있었다.  

  교수님들 덕에 남산을 가기도 했다. 교실 안에서만 하는 게 수업은 아니다. 안보다 밖이 실제론 수업장소다. 그런 이론을 펼칠 때 우린 남산으로 향한다. 그

땐 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다. 시간을 낭비한다는 모자란 생각을 했다. 후에 생각해보니 그것도 공부라는 걸 알았다. 공부의 다른 한 편이었다. 땡땡이치는 기분이었다. 신나고 좋았다. 그리고 교수님들이 수업시간에 그런 말을 했다. 남산에는 신들이 많단다. 그래서 남산을 올라가다 보면 작은 틈바구니 사이에 촛불을 발견할 수 있다. 아마 신당이나 불공드리는 그런 장소인 것 같다. 실제로 나도 많이 봤다. 

  지금은 서울예전이 안산으로 이사를 갔다. 그전엔 이곳 남산에 있었다. 우리 학교 근처에 있었다. 시쳇말로 그땐 이런 말들이 유행했다. 남산에 신성한 기운이 많다. 그래서 서울예전에서 연예인들이 많이 나왔다. 시인도 대거 출현했다. 그 말이 맞는 듯하다. 실제로 서울예전이 남산에 있을 때 유명한 시인들이 많이 배출됐다. 우리 학교는 유명하진 않다. 지금도 그다지 유명하진 않다. 하지만 나에겐 배움의 산 증인이 되어준 학교다. 시인이 되게 해준 밑거름이다. 서울예전의 경우 안산으로 학교를 옮기고 나서부터는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시인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그 영향인지 알 순 없지만 여하튼 결과가 그렇다.

  그렇다면 남산의 신기를 나도 받았나?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실제로 문창과를 다니면서 교수님들은 그런 말을 자주 했다. 미쳐야 글을 잘 쓴다는 말을 수시로 했다. 그것이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미친의 뜻은 아니다. 도가 약간 넘을 정도의 그런 상태를 말한다. 열정이 지나치다는 뜻이다. 그걸 보고 남들은 미쳤다고 본다. 그 정도로 나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졸업한 후에, 글 소재를 찾기 위해 남산을 다시 올라간 적 있다. 그때도 촛불 밝혀둔 곳을 여러 군데에서 발견했다. 남산 하면 남들은 모두 열쇠 광장을 떠올린다. 나에게 열쇠 광장은 사치 같은 곳이다. 남들은 낭만이 서린 곳이겠지만 나에게 남산은 다른 개념이다. 시의 소재로 좋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각각 계절의 맛이 느껴진다. 가을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다. 주변의 경치도 좋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서울 시내가 다 보인다. 빌딩 숲이다. 숲 사이로 자동차가 지난다. 교회 첨탑이 뾰족하다. 십자가가 빨갛다. 길들이 곡선이다. 가로수가 죽 늘어서 있다. 사람들이 자그마하다. 조그만 사람들이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밥을 벌러 간다. 시간이 지나면 밥을 먹으러 나온다. 커피잔을 손에 들려 있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남산 하면 열쇠 광장을 빼놓을 순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 뿐만 아니라 외국 여행객들도 그곳을 찾는다. 주변에 열쇠와 자물쇠 파는 곳도 많다. 그것 때문에 남산을 찾는 사람이 더 많다. 연인들의 성소 같다. 서로의 언약을 보증해주는 장소다. 이 곳이 없었다면 아마 다른 곳이 생겼을 것이다. 신부님께 고해하듯 서로를 고백한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말을 건넨다. 건너간 말들은 열쇠 속에 잠긴다. 철컥, 잠긴 말들은 난간에 기대어 서있다. 바람이 불면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들은 약속이다. 네가 나에게 한 약속, 내가 너에게 한 약속이다. 종이들이 흩어진다. 부스럭거리며 바람에 날린다. 언제 우리가 그런 약속을 했었나 되묻기도 한다. 많은 약속들이 철렁거린다. 수많은 언약들이 쏟아진다.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약속들이 빛난다. 밤이면 밤마다 별빛들이 약속을 비춘다. 반짝반짝 빛난다. 난간에 기댄 열쇠들, 자물쇠들은 말이 없다. 꿀 먹은 벙어리다. 모든 약속들을 집어삼킨다. 맹세는 쥐 죽은 듯 매달려 있다. 매달리는 것들은 안타깝다. 서로가 서로에게 매달려 안간힘을 쓴다. 서로들 잊지 말자며 걸어 잠근다. 철컥 철컥, 약속들이 걸려 있다. 손가락 걸듯 엉켜있다. 엉키고 설키고 옹크려 있다.  

그걸 보면 나도 첫사랑이 생각나곤 한다. 구석진 방이 생각난다. 웅크려 편지 쓰던 날들이 있었다. 멋진 날이었다. 추억으로 가는 기차는 좋다. 낭만으로 가는 기차다. 과거로 간다. 시간여행자다. 잠깐이나마 행복하다. 그야말로 스치고 지나가는 유행가 같은 곳이다. 남들이 낭만을 느낄 무렵 난 그곳의 신기를 받아 시를 공부하고 배웠다. 남산은 나에게 하나의 신과 같은 존재다. 

  마음을 열쇠처럼 열고 닫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수많은 자물통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그 높은 곳까지 올라와 난간에 기대고 있는 약속들, 그 약속들은 과연 잘 지켜지고 있을까, 오늘 같이 바람이 쌩쌩 부는 날이면 그 바람에 휙 날아가 버리는 건 아닐까? 아직도 그 약속은 유효한가? 묻고 싶다. 누구한테? 쓸데없는 일이다. 그 시절은 시절대로 그곳에 살아있다. 그 모습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면 족하다. 흩날리는 것은 약속뿐만이 아니다. 머리카락도 흩날리고 옷자락도 흩날린다. 머릿속에 담고 있던 생각들도 하나둘씩 바람에 날린다. 흩어진다. 언젠가 다시 그곳을 간다면 흔들리는 생각들을 붙들어 매달 곳을 찾아야 한다. 이젠 그런 곳이 나도 필요하다. 열쇠가 아니어도 좋다. 자물통이 아니어도 좋다. 남산이 꼭 아니어도 좋다.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난 마음속에 자물통 하나 만들어야겠다. 생각날 때마다 열쇠로 열 수 있는 그런 자물통. 자유롭게 열고 닫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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