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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Jan 01. 2021

시, 시시한

시낭송

                                          


시는 나다. 나의 삶이다. 노력 끝에 얻었다. 그냥 얻어지는 건 없다.

시인이 내 꿈이었다. 스무 살 시절부터였다. 끄적이는 걸 좋아했다. 꼭 시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노력했다. 꿈은 꾸는 대로 이루어진다. 이 말을 믿었다. 늦은 나이에 시인이 됐다. 꿈이 현실이 됐다. 시는 꿈이 아니다. 시인도 현실에 산다. 꿈만 먹곤 못 산다. 그런 시인이 되고 싶었다. 내가 배운 것이 남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싶었다. 위로가 되고 싶었다. 배워서 남 주고 싶었다.

시 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다. 이전에 본 영화라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얼마 전에 티브이에서 다시 방영했다. 이번엔 처음부터 자리 잡고 앉아서 시청했다. 키팅 선생님 강의는 정말 명강의다. 생각했다. 왜 나에겐 그런 명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었을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명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면 시인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탄생했을 것이다. 책상에 올라가서 다른 시각으로 보라는 말 동감한다. 이 세상에 새로운 것은 없다. 다만 새롭게 보는 시각만 있을 뿐이다. 뒷받침해주는 말이 있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걸음을 걸어라. 나는 독특하다는 것을 믿어라. 누구나 몰려가는 줄에 설 필요는 없다. 자신만의 걸음으로 자기 길을 가거라. 바보 같은 사람들이 무어라 비웃든 간에" 키팅 선생님의 말이다. 정말 그렇다. "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키팅 선생의 말처럼 나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 시가 되었다. 시인이 된 것이다.    

시 낭송, 멋진 일이다. 환상이다. 늘 내가 상상했던 일이다. 시를 낭송할 일이 생긴다. 각종 행사가 있다. 시 낭송을 잘하진 못한다. 기회가 생기면 열심히 한다. 주어질 땐 최선을 다한다. 작가들의 행사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더 낭만적이 일을 찾았다. 훨씬 더 보람찬 시낭송이다. 시라는 것은 어찌 보면 낭만에 불과하다. 먹고살기 바쁜데 무슨 시냐고 말한다. 거의 다 그런 말을 한다. 그런데 그 시가 나에겐 낭만적 현실이 된다. 하찮은 시 나부랭이가 아니다. 그것이 나에겐 보람이다. 하찮은 일이 아니라 멋진 일이 된 것이다. 그거라도 배워서 쓸 곳이 생긴 것이다. 할 수 있는 게 시낭송 밖에 없다. 그것밖에 할 게 없어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그래서 시라도 들려주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런 모습으로 누군가의 앞에 선다. 시를 읽는다. 시를 낭송한다. 추우면 추운 곳에서 더우면 더운 곳에서 한다. 많은 곳을 다닌다. 대개 길거리에 있는 텐트다. 천막이다. 철탑에서도 계단에서도 한다. 그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나도 노동자다. 노동자로 30년을 넘게 살아왔다. 그래서 그들의 고통을 안다. 나도 겪어 온 일이고 나도 당해봤던 일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눈빛을 읽어낼 수 있다.

  물론 다 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다 알진 못하지만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그들과 뜻을 같이 한다. 월급을 받아 본 사람들은 안다. 사업주들이 얼마나 비열한가를 또한 얼마나 강압적 인지도 안다. 갑과 을은 잘 바뀌지 않는다. 갑은 갑대로 을은 을대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살아간다기보다 살아 낸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을이 을로 사는 것은 을의 사고방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랜 세월을 을로 살아온 나도 을의 생활방식에 익숙해 있다. 그런 을에게 갑은 많은 것을 요구한다. 요구는 요구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을은 대개의 경우 한 가지를 요구한다. 사람으로 하나의 인격체로 보아 달라고 말한다.

  갑은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공장에서 돌아가는 기계 정도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런 시각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그것 때문에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감히 단언하지만 난 죽을 때까지 사장은 못할 것이다. 그럴만한 돈도 사업수단도 없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겐 행복한 일이다. 돈을 조금 벌어도 좋다. 그저 한 달 근무하고 한 달 월급을 받으면 그뿐 이라고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살면 그뿐 이라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왔다. 이런 생각 대문에 사장이 못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장이 아닌 내가 나는 좋다. 갑이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가뭄에 콩 나듯 한 두 사람 정도다. 뉴스 한편, 해외토픽란처럼 어쩌다 눈에 띄는 정도가 현실이다.   

  파업현장에 시 낭송을 간 곳은 인천에 있는 동광기연이라는 회사였다. 물론 그 전에도 몇 군데 시낭송을 간 적이 있긴 하다. 광화문에서 세월호 사건 때 등등 여러 건이 있긴 했다. 그래도 개인 사업체로 간 것은 동광기연이 시작이었다. 그곳은 내가 사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다. 직장에서 퇴근을 하고 문화제 시간에 맞춰 가기엔 빠듯한 거리였다. 그렇게 한 두 군데 사업장을 찾아다니며 시 나부랭이를 읊어대곤 했다. 물론 시만 가지고 가진 않았다. 노동자로 살아온 내가 파업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돈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작은 돈이지만 조그만 성의의 봉투를 함께 내밀곤 했다. 물론 큰 힘이 되진 못하지만 내 나름대로의 위안이 필요했다. 그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만의 위로 같은 것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라서 그렇게 매번 했다.

  그곳을 시작으로 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다녔던 것 같다. 물론 두세 번 간 적도 있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번갈아 가며 여러 사업장에 시 낭송을 다녔다. 내가 시를 배우길 정말 잘했구나 싶었다. 이럴 때 시라도 배워서 그들에게 마음적 치유라도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치유가 됐을지 확인된 바는 없으나 그럴 거라고 믿고 있다. 동광기연, 하이디스, 테라타워 청소 노동자들, 건설노동자들 고공농성장, 세종호텔 농성장, 한국지엠 부평공장 문화제, 동국대 청소노동자 문화제, 이마트 노조 촛불문화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문화제, 쌍용자동차 문화제, 고강 노동자 문화제, 금천수 병원 문화제, 스타플렉스 투쟁문화제, 김용균 추모문화제, 콜텍 문화제, 삼성 철탑 고공 문화제, 경기 중서부 건설 문화제, 전교조 해고자 규탄 문화제, 등을 다녔다.

  그들의 시계는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 우리네 시계처럼 참 더디게 흘러갔다. 더울 때나 추울 때나 여전히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시 낭송을 하면서 운 적도 많다. 이깟 시 한 편이 그들에게 무슨 보탬이 될까 생각했다가도 그나마 그들에게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공장으로 광화문으로 철탑으로 여의도로 대학교로 빌딩 앞으로 종로 대로변으로 회사 앞 계단으로 정말 열심히 누비고 다녔다.

  누가 손을 잡아 끈 것도 아니고 누가 등을 떠민 것도 아니다. 내가 스스로 좋아해서 선택한 길이다. 그나마 내가 그들에게 시라도 들려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시 나부랭이와 흰 봉투, 봉투가 준비가 안 될 때에는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해 간다. 작은 것이지만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그것이 작을 경우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러다 보면 여러 번 간 사업장들은 한편 나를 기다리기도 한다. 오늘은 어떤 것을 가져왔을까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커다란 선물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들도 알고 나도 안다. 서로 부담이 될만한 것을 선물하진 않는다. 그만한 돈도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내가 간다는 것 그것 하나 만으로도 그들에겐 조그만 위안거리를 가져간다는 사실 만으로도 나를 환하게 웃으며 맞아준다. 그리고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웃게 만들어 준다. 그들 또한 나로 인해 웃을 수 있다며 좋아라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고 감사하다. 그렇게 나는 그들에게 그들은 나에게 즐거운 시간이 되곤 한다. 그것으로 나는 만족하다. 내가 읽어주는 시 한 편이 보잘것없는 시 나부랭이가 그들에게 위안이 되었을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난 내가 배운 것을 유용하게 잘 써먹는다. 써먹는다는 표현이 맞는 표현인지는 모른다. 캘리그래피 자격증을 땄다. 물론 나중에 퇴직해서 할 게 없을 때 하면 좋겠다 싶어서 시작한 일이긴 하다. 그렇게 시작했는데 그걸 배우다 보니 여러 가지 작품들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 가지 두 가지씩 만든 작품들이 장식장에 쌓여 갔다. 그걸 누구에게 선물할까 생각하다가 시 낭송 다닐 때, 빈 손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생길 때, 그때 그 작품들을 가지고 갔다. 족자에서부터 머그컵, 나무로 만든 시계, 부채, 촛불, 도마, 액자 등 작품이 많다. 내가 직접 쓰고 내가 직접 만든 작품들이라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그러나 다 잘 만들어진 엄청난 작품은 아니다. 그저 나의 정성이 깃든 소중한 작품이다. 비싼 고가의 작품은 아니나 손수 제작한 수공예품이라는 점에서 평가를 한다면 아주 귀중한 작품임엔 틀림없다. 더군다나 이 세상에 하나뿐인 독특한 작품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 선물을 할 때 나의 기쁨은 두배가 된다. 나눔이란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내가 많은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성을 나눈다는 마음으로 그저 조그만 거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족한 일이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해결되지 않던 사업장들이 하나둘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해결이 된다는 것은 그들을 더 이상 거리에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사업장으로 돌아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봄은 그나마 그들에게 좋은 계절이고 겨울은 그들에게 견디기 힘든 계절이다. 추운 길바닥에 앉아 난로 옆에서 컵라면을 먹던 그 사람들의 눈동자를 잊지 못한다. 그런 세월을 보냈던 그들이기에 힘든 싸움을 끝낸 그들이기에 축복받는 일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해결된 곳도 있다. 만족할 만한 상황 없이 해결된 곳도 있으나 대체적으로 잘 해결이 되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길거리에서 몇 년을 보낸 노동자들에게 추위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관심이다. 그들에겐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의 눈길이 그들에겐 필요했던 것이다. 몇 년을 그렇게 찾아다녔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도 생겼다. 와 달라는 데도 있었다. 어디든 다른 일 마다하고 갔다. 내가 하는 일은 작다. 그들이 하는 일에 비하면 눈곱만 하다. 소문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선한 일은 더 많은 선한 일을 만든다. 그런 마음이다. 그들은 생사가 걸려 있는 일이다. 많은 시간과 죽을 것 같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해가 가고 달이 찼다. 몇 년이 지났다. 그들이 흘린 피눈물은 헛되지 않았다. 피나는 노력 끝에 많은 사업장들이 현장으로 돌아갔다. 거리 텐트를 접고 한뎃잠을 자던 그들이 직장으로 갔다. 다시 노동자로 돌아갔다.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다, 정말 내 일처럼 기쁘다. 내가 특별하게 한 일은 없다. 그들과 함께 한 것밖에 없다. 그것도 가끔. 그 길거리에서,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앉아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좋다. 종이컵에 담긴 따스한 커피가 그들의 온기다. 나에게 전해지던 그 온기를 잊지 못한다. 애처로운 눈길을 잊지 못한다. 그들과 함께 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 시를 배워서 어디에 써먹을 거냐며 나를 힐끗거리던 사람들, 시 나부랭이가 뭐라고 그 늦은 나이에 돈을 써가며 배우냐는 둥 이런 말을 했던 사람들에게 한 마디 날린다. 이럴 때 써먹으려고 난 시를 배우고 시를 쓰고 시를 낭송했다고 외친다. 시 나부랭이가 누군가의 가슴 한편에 잔잔한 소망 한 가닥 피워 올릴 수 있는 심지가 되었기를 바란다.

 너도, 라는 말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한 위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너도 는 남이 붙여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붙여주는 위안 너도밤나무 나도 밤나무 꽃도 열매도 잎사귀도 다르지만 밤나무 하나로 흔들린다. -중략-누가 나를 위로할 때 나도 너도 나무가 되거나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것이다. 졸 시 '너도밤나무'에서 인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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