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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Jan 02. 2021

아버지

                               

                     할아버지 연필 데생(내가 그린 작품 , 아버지는 아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몇 년 지났다. 아버지 사진이 사각에 들어 있다. 아버진 움직이지 않는다. 액자가 다. 벽에 걸렸다. 생전에 아빠라고 불러본 적 없다. 그땐 다들 아버지라고 불렀다. 나만 그랬나? 그건 확실친 않다. 여하튼 우리 집에선 그렇게 불렀다. 아버지.

  마른 체격이다. 아주 깡마른 건 아니다. 키도 보통이다. 남들만 했다. 그 시대의 아버지들 키만 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았다. 우리 집은 평범했다. 부잣집은 아니다. 그렇다고 똥구멍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았다. 그땐 참 이상한 말도 많았다. 가난과 똥구멍이 왜 한패였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 말이다. 우리 동네서 부잣집은 정미소다. 그 집엔 내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 얘길 할 때면 아버진 이렇게 말했다. 정미소 부잣집 딸 말이니? 이렇게 되묻곤 했다. 쌀이 많아서 부자였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그땐 쌀밥만 먹어도 부자였다. 우리도 쌀밥만 먹진 못했다. 보리쌀을 섞어 먹었다. 점심은 국수를 삶아 먹거나 고구마를 쪄 먹었다. 그러니 쌀밥만 먹었던 정미소는 부자일 수밖에 없다. 돈도 잘 벌고 쌀도 많았으니 말이다.   

아버진 연상의 여인과 살았다. 엄마가 한 살 더 많다. 그 당시엔 얼굴도 안 보고 결혼했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끼리 말을 맞추면 성사되었다. 우리 집 아들이 있는데 너네 집 딸과 결혼시키자. 그렇게 부부가 됐단다. 첫 살림은 강원도, 추위만큼 힘든 삶이었다고 한다. 난 그때 태어나지 않았다. 오빠만 있는 상태였다. 옆집에서 양복점을 하던 아버지 친구가 있었는데 딱히 일이 없던 아버지는 그 친구 덕에 바느질을 배웠다. 그러다 충청도로 이사했다. 바느질 덕에 세탁소를 차렸다. 그럭저럭 먹고는 살았다. 성격이 꼼꼼하다. 의리도 있다. 동네 일이라면 먼저 나서서 하는 성격이다. 성격이 급하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꿈이 크다.  

동네 이장을 오랫동안 보셨다. 동네에 할 일이 많았다. 일이 생길 때마다 동네방네 방송을 했다. 아버진 목소리도 멋있다. 마이크를 들고 방송을 할 때 보면 딸인 내가 봐도 멋지다. 집안 일보다 동네일이 우선이었다. 집에서 일을 하다가도 동네에 일이 생기면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오죽하면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동네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만큼 남의 일에 열성이셨다.

  아버진 살결이 희다. 나도 살결이 희다는 소릴 많이 듣는다. 아버질 닮았다. 나에겐 그걸 물려주셨다. 시골서 살았지만 도시 사람 같다. 거기다가 옷을 잘 입고 다녔다. 세탁소를 해서 그런 걸까. 멋지게 차려입는다. 대충 옷을 걸쳐도 옷 테가 난다. 그걸 난 물려받지 못한 것 같다.

아버지 친구 분들이 늘 그런 말을 했다. 잰 뭘 입어도 옷 테가 나네. 아버진 뱃살도 없다. 다른 분들은 살이 찌고 배도 불룩 나왔다. 그런 거에 비하면 아버진 멋쟁이셨다. 샌님이었다. 잘 차려입은 공무원 같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들 했다. 집이 넉넉하진 않다. 세탁소를 해서 간신히 우리들 학교를 보낼 정도다. 돈 욕심이 별로 없다. 그 시절 중학교는 교복을 입었다. 그 교복을 아버지가 만들었다. 세탁소에서 직접 만들었다. 아이들은 우리 집에 와서 교복을 맞췄다. 남학생 교복만 했다. 그렇게 돈을 벌었다. 먹고 살 정도였다. 저금을 할 만큼은 아니었다. 행여라도 저금할 만한 돈이 생기면 아버진 다른 곳에 돈을 썼다. 그 당시엔 교복도 못해줄 정도로 가난한 집이 많았다. 우리 집만 해도 도시였다. 조그만 걸어가면 학교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십리, 이십 리 밖에 살았다. 깡촌에 살았다. 학교를 오려면 새벽밥을 먹어야 하는 친구도 있었다. 산골에 사는 친구가 많았다. 교복 살 돈이 없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들을 위해 아버진 공짜로 교복을 만들어 주었다. 교복을 만드는 내내 아버진 공짜 교복까지 덤으로 만들었다. 내 자식 일처럼 안타까워하셨다. 최소한 우리 집은 교복을 사줄 정도의 돈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아버진 40대에 폐결핵을 앓았다. 아팠다는 사실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난 철딱서니 없는 딸이었나 보다. 한번 그렇게 앓고 난 아버지는 잔병치레가 많았다. 겉으로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건강하지도 않았다.

시골집은 도로변에 있다. 시골이라곤 하지만 시골스럽지 않다. 시골이라 하면 뒤란에 감나무도 있고 앞마당도 있어야 한다. 앞마당에 채송화도 백일홍도 피어야 한다. 우리 집은 그렇지 않다. 감나무도 없고 앞마당도 없다. 그래서 난 시골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감나무도 없고 앞마당도 없다. 시골집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나도 그렇다. 가족을 만난다는 기쁨도 물론 있다. 앞마당과 뒤란에 대한 로망 말이다. 지금까지도 그 로망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그 로망이 실현된 적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시골집은 아직도 도로변에 있다. 그 옛날 집은 아니다. 그 땅에 집도 다시 지었다. 그래도 감나무 심을 터는 없고 채송화도 백일홍도 피지 않는 집이다. 왜 꼭 있어야 하는진 모른다. 그냥 막연하게 그런 집을 바란다. 터가 넓은 집 말이다. 과실수가 있고 꽃이 피는 그런 집이면 좋겠다. 물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도 그렇진 않다. 아파트에 산다. 마당은 여전히 없다. 로망은 로망으로 끝난다. 결혼했다. 시댁도 시골이다. 시댁에 가는 건 싫지만 그곳은 나의 로망이 실현된다. 그런 면에선 좋다. 뒤란에 감나무가 세 그루 있다. 앞마당엔 대추나무도 있고 채송화도 핀다. 백일흥은 없지만 샐비어도 있다. 옆에 작은 텃밭도 있다. 배추도 열무도 고추도 심는다. 그냥 정말 시골이다. 로망이 시댁에서 이루어졌다. 지금은 시부모님이 다 돌아가셨다. 자주 가진 못한다. 시골집에 대한 로망을 그나마 시댁에서 해소했다.

아버질 원망하진 않는다. 아버진 아버지대로 열심히 사셨다. 아버지 조건에서 최대한 노력하셨다. 시골집에 대한 환상은 그야말로 속으로 하던 나만의 생각이다. 가족 누구 한데도 말해본 적은 없다. 나에겐 시골이란 말속에 그런 것들이 포함된 듯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각인됐다.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만약 그랬다면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또 다른 감성으로 자랐을까? 환경이 다르면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았을 테니까 말이다. 자기가 살던 환경을 별로라고 생각한다. 다른 환경을 원한다. 아마 다른 것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닭띠다. 띠에 관한 말들은 많다. 맞는 말도 있고 틀리는 말도 있다. 그런데 아버지에겐 맞는 말인 것 같다. 재주가 많다. 열정적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아버진 세탁소를 언니에게 물려줬다. 아버진 어느 순간 힘에 부치다고 했다. 건강이 악화되었다. 그래서 언니가 물려받았다. 세탁소를 그만두신 아버지는 그 후 여러 가지를 시작했다. 슈퍼도 해보고 조그만 가게들을 몇 번 했으나 오래 가진 않았다. 그나마 가장 오래 한 것이 세탁소였다. 그러는 사이 아버지 나이는 환갑이 넘었다. 이젠 아무것도 못할 나이가 된 것이다. 동네 마실이나 다닐 나이였다. 그 당시 아버지 친구분들 중에는 벌서 돌아가신 분도 계셨다. 이젠 아버지도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 허리를 다쳐 수술을 몇 번하고 핀을 박았다. 몇 번의 수술이 몸을 허약하게 만들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누워 계시다 결국은 세상을 떠났다. 이젠 마음속으로만 부를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할 이름이 되었다. 이젠 기억 속에서만 살아 계신다. 추억 속에선 언제나 살아 계신 아버지, 우리 아버지. 어젯밤엔 꿈을 꿨다. 돌아가신 아버지 꿈이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보러 왔단다. 살아 계실 때 인자한 모습 그대로였다. 그 모습 그대로 꿈에 등장했다. 돌아가신 지 오래됐다. 그동안 아버지 꿈은 오늘이 처음이다. 남들은 돌아가신 아버지 꿈들을 자주 꾼다고 하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오랜만에 살아계신 아버지 모습을 보니 정말 좋았다. 새해부터 아버지 꿈을 꾸다니 올해는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 아버지 덕에 원하는 소망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아버지도 하늘나라에서 행복하시면 좋겠다. 꿈을 깨니 아침이다. 아버진 사라지고 난 살아진다. 또다시 시작이다. 하루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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