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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Dec 27. 2020

구두

                                            


  메리제인 슈즈, 맞아 그거였구나. 그런 이름이었어. 돌고 돌아 이제야 찾았다. 몇십 년 만에 삐죽 고개를 내민 단어다. 최근 인터넷에서 찾았다. 한이 맺힌 구두다. 그렇게나 신고 싶었던 구두다. 그 전 까지만 해도 그런 이름이란 걸 몰랐다. 아니 찾지 않았다. 나에겐 어려운 단어다. 섣불리 다가설 수 없는 구두였다.

  초등학교 때로 가본다. 꼬질꼬질한 시대다. 옷소매는 콧물로 찌들어 반질반질했다. 헐렁한 옷에 나를 끼워 넣고 학교를 간다. 신발은 언니 걸 물려받아 항공모함이었다. 헐렁헐렁 학교에 간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친구들 대부분이 나랑 비슷하다. 우리 집은 학교 담장에 붙어 있다. 가끔 담벼락을 넘는다. 그래도 정문으로 간 적이 더 많다.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엔 이승복 어린이가 오른쪽엔 여학생이 책을 읽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쁜 친구가 전학을 왔다. 생김새가 말끔했다. 아니 예뻤다. 우리처럼 구질구질 하진 않았다. 옷소매도 반질거리지 않았고 신발도 헐렁하지 않았다. 원피스를 입었다. 그때 우린 원피스를 처음 보았다. 그야말로 샤방샤방했다. 우린 그 친구 곁에 다가갈 수 없었다. 찌든 때가 그 친구에게 묻을까 봐. 그렇게 그 친군 우리 곁에 나타났다. 슈퍼맨이 나타난 것처럼 슝! 날아와 꽂혔다. 우리들 가슴속에......

  반칙이었다 그 친군. 예쁜데 공부도 잘했다. 맨날 공주님처럼 옷을 입고 다녔다. 선망의 대상이었다. 내 기억으론 그 친구 인기가 높았다. 모두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난 공부 잘하는 친구들을 좋아했다. 뭐니 뭐니 해도 공부가 제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기에. 속내를 들키고 싶진 않았다. 대놓고 널 좋아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친구 하고 싶다고 손을 내밀지도 못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 친구가 신고 온 까만 구두를 쳐다보는 일 밖엔 없었다. 얼룩달룩한 운동화들 한편에 반짝반짝 빛나던 구두, 바로 그 구두가 그 친구 꺼였다. 다른 친구들은 원피스를 탐했다. 그런데 나는 왜 구두를 탐했는지 잘 모르겠다. 유난히 반질거리던 그 구두가 내 뇌리에 와서 박혔다. 저렇게 예쁜 구두는 처음 봤어. 거기다가 나비도 한 마리 그려져 있고 끈도 달려 있었다. 톡 하고 치면 나비가 날아갈 듯했다. 저렇게 멋진 구두라니!

   이젠 그 친구보다 구두를 더 동경하게 되었다. 항상 학교에 도착하면 그 구두가 잘 있는지 살펴보곤 했다. 그 친구의 안부보다 구두의 안부가 중요했다. 정말 웃긴 일이다. 사람보다 구두가 더 중요하게 된 것이다. 그 친군 성격도 좋았다. 그래서 반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았다. 유독 나는 그 친구와 서먹서먹했다. 내가 쉽사리 다가서진 못했기 때문이다. 좋아했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그런 이유를 따지자면 한 가지가 더 있다.

  자격지심이었다. 우리 집은 평범하다. 고만고만했다. 겨우 먹고살만한 정도였다. 어른들 표현을 빌자면 입에 풀칠할 정도였다. 거기에 비해 그 친구 아버지는 선생님이셨다. 우리가 그렇게 우러러보는 선생님이셨다. 지금이야 교권이 땅에 떨어졌네 어쩌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선생님은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볼 수도 없는 그런 위치에 서 있었다. 감히 우리 입에 올릴 신분이 아니었다.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에선 더더욱 그랬다.

  다른 친구들 가정도 나와 비슷하다. 논농사, 밭농사를 지었다. 평범한 우리들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그 당시 난 신데렐라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학교 뒤편에 동화책이 있었나? 기억이 없다. 그때는 동화책을 펼쳐볼 만한 시대가 아니었다고 변명을 해본다. 실제로 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설상 읽었다면 기억이 나야 하는데 전혀 기억이 없다. 유추해 보건대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아님 내가 그쪽으로 관심이 없었던지 둘 중 하나다. 전과만 기억난다. 공부만 생각했던 초등시절이라 다른 기억이 별로 없다. 어쩌면 그때 나는 동화책을 본다는 것이 나하고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걸 볼만큼 삶이 여유롭지 않았다. 내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핑계일 수도 있다. 학교 가면 공부하고 시험 때 되면 전과를 보는 것이 전부인 시절을 살았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친구와 친해지진 못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그 시절의 그 까만 구두가 잊히지 않았다. 가슴 한편에 계속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이 자기 자리인 듯 언제나 떠나지 않고 있었다. 구두가 생각날 때마다 다짐했다. 그 구두보다 더 예쁜 구두를 언젠간 꼭 사 신어야지.

  그렇게 갈망하던 구두를 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구했다. 첫 월급을 탔다. 큰돈은 아니었다. 첫 월급으론 해야 할 게 많다. 부모님 내의부터 사드렸다. 첫 월급의 통과의례였다. 그렇게 하는 거라고들 했다. 나도 그렇게 했다. 그런 다음 한 일이 그 구두를 사는 일이었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나갔다. 구두방을 몇 군데 다녔다. 초등학교 때 그 친구가 신던 구두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몇 번 더 구두를 찾아 헤맸다. 그렇게 찾아다닌 끝에 그와 비슷한 모양의 구두를 샀다. 결국 그 구두를 산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산 구두는 한동안 박스 안에 갇혀 있었다. 샀으나 금방 신지 못했다. 너무나 아까워서 좀 더 박스 안에서만 보고 싶었다. 아무리 소중해도 구두였다. 구두란 신지 않으면 구두로서의 소명을 다하지 못한다. 구두란 누군가에게 신겨졌을 때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구경만 하던 구두를 드디어 멋지게 꺼냈다. 나비 문양과 끈이 달린 까만 구두, 신기 전에 한번 더 닦았다. 깨끗한 구두였는데도 닦고 또 닦았다. 반질반질 윤기가 난다. 반짝반짝 유리구두로 보일만큼 열심히 닦았다.

  그 친군 아빠가 사준 구두를 신었겠지만 난 다르다. 내가 번 돈으로 산 구두였다. 기쁨이 두배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내 돈 내산이었다. 그것이 나만의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자존심을 거기에 갖다 붙이는 것이 맞는진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과 약속했다. 내가 돈 벌어서 그 돈으로 구두를 사겠노라고. 그렇게 한이 맺힌 구두를 신고 출근하던 날, 동료들 한데 하루 종일 자랑하고 다녔다. 그 사람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구두일 뿐이었으나 나에겐 의미 있는 구두였다. 그동안 그 구두를 살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부모님께 사 달라고 떼를 써도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진 않았다. 그럴 만큼 철닦서니 없는 아이는 아니었다. 그렇게 그 구두를 신고 다닐 때마다 난 주변 사람들한테 그 구두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곤 했다. 한동안은 그 구두만 신고 다녔다. 굽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구두 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건 윤흥길의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다. 거기에서 권 씨는 자기가 신고 다니는 구두를 매일 닦아 신고 다닌다. 그 시절에 대학을 나온 권 씨는 아마도 어린 시절의 나보다는 부잣집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우리 집만 해도 대학을 보낼 엄두조차 내지 못할 형편이었으니 말이다. 권 씨는 현실에서 계속 좌절하는 삶을 살아간다. 소설 속의 권 씨 보다 더 가난한 시절을 살았던 나로서는 권 씨마저 행복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계집애가 대학은 무슨 대학이냐며 부모님들은 평소와 다르게 서로 뜻을 모았던 때였다. 다른 것들은 서로 생각이 달라 매일 다투면서도 그런 것에는 이상하리만큼 생각이 같았다. 대학 안 보내는 것 말고는 뜻이 맞는 것이 없을 정도였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건이 일어나곤 했다.    

  지금도 그 신발은 신발장에 턱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면 한 번씩 신고 거리를 쏘다니곤 한다.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순 없지만 그래도 나는 그 구두만 신으면 초등학생이 된다. 꼬질꼬질한 옷소매 시절로 돌아간다. 모든 것이 헐렁하던 시절로 말이다. 추억의 구두, 또각또각 소리도 나지 않는. 다만 그 소리는 내 마음속에서만 울린다. 그 초등학생의 구두, 지금은 엄마의 구두다. 코 질질 흘리던 시절의 구두다. 아직도 마음속 한편에 턱 자리 잡고 있는. 나만의 구두다. 절대 잊히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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