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 앞의 계절 Dec 28. 2020

겨울

신춘문예

                                           


  난 겨울이 무섭다. 두렵다. 아니 설렌다. 겨울이 오면 난 끙끙 앓는다. 봄을 타네, 가을을 타네 사람들은 말한다. 난 겨울을 탄다. 스키 타듯 썰매를 타듯. 겨울을 타다가 미끄러진다. 자주 넘어진다. 여기저기 상처가 생긴다. 외상은 아니다. 내면의 상처다. 사람들 눈엔 보이지 않는다. 내 눈에만 보인다. 일회성이 아니다. 대일밴드론 되지 않는다. 해마다 걸리는 병이다. 겨울마다 생기는 병이다. 계절병이다. 그 병을 이기는 방법은 봄뿐이다.

봄을 기다린다. 그러나 봄은 아직 멀다.

  겨울은 신춘문예의 계절이다. 작가 예비생들의 계절이다. 도전이 시작된다. 그들과 함께 겨울은 익어간다. 눈이 온다. 눈이 녹는다. 처마 밑에 고드름이 매달린다. 매달리는 것들은 애처롭다. 대롱대롱 점점 커진다. 바람이 분다. 날씨가 춥다. 고드름이 꽁꽁 언다. 손이 시리다. 마음이 차다. 고드름이 뾰족해진다.

  인터넷을 검색한다. 온갖 정보를 수집한다. 원고를 정리한다. 마음을 다잡는다. 심호흡을 한다. 이름을 고민한다. 본명으로 할까 필명으로 할까. 내 이름은 구식이다. 이름을 보면 시대가 나온다. 이런 이름 싫다. 물론 부모님을 탓하진 않는다. 그 시대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필명으로 정한다. 필명은 돈 주고 지었다. 십만 원짜리다. 적은 돈은 아니다. 인터넷을 뒤졌다. 작가에게 걸맞은 작명가를 찾았다. 이름으로 모든 게 되진 않는다.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나 이름 때문에 떨어지긴 싫다.

  그다음은 주민등록번호가 문제다. 나이가 이미 찼다. 이십 대가 아니다. 삼십 대도 아니다. 왜 주민등록번호를 써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이로 글을 쓰는 것도 아닌데. 나이가 적든 많든 무슨 상관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요했다. 난 절대 쓰지 않는다. 쓸 수가 없다. 자신만만하게 쓸만한 번호가 아니다. 그래도 강요하는 곳이 있다.

꼭 나이가 그 작품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몸과 마음은 다르다. 몸은 40대라도 마음은 청춘일 수 있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많다. 또한 정신연령이 낮은 사람도 있다. 생각이 모두 같진 않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유행가 가사에도 나온다. 나이는 숫자! 다시 한번 되뇐다.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원고를 마무리한다. 우체국을 간다. 신문사마다 원고를 넣는다. 신문사 주소를 적느라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걸 보는 시선이 애처롭다. 간당간당하다. 제발 이번엔 꼭 뽑혀라.

이런 마음으로 기다린다. 기다린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비록 연락이 오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겨울을 여러 해 보냈다. 해마다 겨울이 오면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원고를 정리하고 이름을 정하고 신문사에 보내고 이러기를 도대체 얼마나 한 걸까?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세월은 흘렀다.

무심하게 세월은 간다. 겨울은 간다. 아무런 연락도 없는 겨울은 도돌이표였다. 다시 또 겨울.  

  그러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다. 혹시 내가 보낸 원고가 중간에 실종된 건 아닐까? 누락된 건 아닐까? 우편사고가 발생한 건지도 몰라. 심사위원들 손에 없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뽑히지 않은 거야. 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작품성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내 작품을 못 알아준 것뿐이라고 자만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그것도 내가 가장 절실하게 고대하던 신문사였다. ㄷ신문사다. 전화가 왔다는 것은 그 당시엔 당선이나 다름없었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가슴이 떨렸다. 신문사를 두 번이나 확인했다. 맞다고 했다. 전화를 건 기자는 대뜸 나의  개인정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질문했다. 대학교는 어디 나왔냐, 시는 누구한테 배웠냐, 나이는 몇 살이냐,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은 어디냐, 정말 어이가 없었다. 그런 개인정보가 시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정말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땐 따지질 못했다. 전화가 왔다는 사실에 너무 놀란 나머지 다른 것들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때 내가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그런 게 무슨 상관이냐고 따졌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게 후회된다. 난 사실대로 다 말헸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렇게 난 그 신문사 신춘에 떨어졌다. 그때 나를 떨구고 당선된 시인은 젊은 친구였다. 무엇 때문에 내가 떨어졌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나이가 많아서, 대학이 시원찮아서, 직장이 별로라서. 개인정보에 관해 사실대로 대답한 내가 잘못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차라리 당신 작품이 뽑힐만한 작품이 아니라고 했으면 단번에 수긍했을 일이다.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만일 작품이 시원찮았으면 전화조차 걸지 않는다. 문화부 기자들이 그렇게 한가하진 않다. 신춘의 계절엔 문화부 기자들이 제일 바쁠 때이기 때문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전화를 해놓고 이것저것 개인사를 따져보고 결국은 탈락시켰다.  

  난 정말 운도 없다. 신춘을 할 거면 중앙지로 등단하고 싶었다. 그렇게 떨어지고 난 다음에도 계속 도전했다. 겨울은 여전히 나에게 도착되었으므로 도전은 계속되었다. 그다음 해엔 ㅅ신문사 최종심에서 떨어졌다. 마지막 3명이 최종심에서 다툰다. 심사평에만 거론되고 당선은 되지 않았다. 정말 운이 없어도 더럽게 운이 없다.

어떻게 중앙지마다 거론만 되고 당선은 되지 않는지 참 기가 막히다.

  결국은 ㄴ신문사로, 그다음 해는 ㄱ신문사에 당선됐다. 내가 그렇게도 원하던 중앙지는 아니었다. 나에게 그만한 영광은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두 손 들었다. 중앙지로 등단하고 싶다고 또 도전할 순 없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건 다른 사람의 기회를 빼앗는 거라며 다들 말렸다. 운명이려니 받아들였다. 아픈 계절은 끝인 줄 알았다. 신춘 때문에 생긴 병이니 신춘에 당선되면 없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도 아프다. 겨울이 오면 다시 또.

끙끙 앓는다. 겨울은 오늘도 내 옆에 있다.

  신춘이 시작되기 전에 한 곳에 원고를 넣었다. 좀 창피한 성적으로 겨우 붙었다. 가작인가 입선 인가로. 그렇게 되고 싶진 않다. 결국 그곳에 전화를 걸었다. 당선을 취소하고 싶다고. 내 작품을 내려달라고 전화 걸었다. 왜 그러냐고 했지만 여하튼 내려 달라고 했다. 속으론 이렇게 말했다. 내 작품이 그걸로 당선될 작품은 아니다. 쓸데없는 자만심이었다. 그러나 정말 그런 걸로 내 이름이 걸리는 걸 참을 수 없다. 나 자신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올 겨울은 또 다른 도전의 해다. 다른 분야의 신춘에 도전했다. 또다시 발을 들여놓았다. 한 가지가 끝났으니 다른 한 가지를 시작했다. 겨울이 와서 또 아프다. 아프다기보다 설렌다. 설레는 아픔이 겨울이라는 병이다. 해마다 겨울은 온다. 그런데 아직까지 연락이 없다는 것은 탈락이란 말과 같다. 그 전과 같이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내년에도 겨울은 또 올 것이다. 꽁꽁 얼어붙은 마음에도 봄은 올 것이다. 봄이 오면 겨울도 있는 법.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여전히 설렌다. 설렌다는 말은 나에게 도전과 동격이다. 비록 그것이 나에게 탈락이라는 말과 함께 오더라도 난 좋다. 또다시 어딘가로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모르는 곳으로의 초대다. 초대된 곳은 반드시 간다. 내가 만든 초대장을 가지고 간다.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한 발자국 내딛는다. 그곳을 향해......


작가의 이전글 구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