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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Jan 16. 2021

그림

미술관

내가 직접 그린 그림


나는 그림에 대해  울렁증이 있다.

난 그림을 못 그린다. 그림 좀 그리는 친구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낸다. 그런 친구들은 교실 뒤에 자기 그림이 붙어 있었다. 내 그림은 한 번도 걸린 적이 없다. 그 정도다. 중학교 고등학교도 마찬가지였다. 그림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지금은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미술학원을 보내곤 한다. 그 시대엔 미술학원도 없었다. 난 시골에 살았다. 그런 혜택과는 먼 환경이었다.

계기가 생겼다. 시 공부 때문이다. 시를 쓰려면 시집만 읽지 말고 다방면의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교수님들이 늘 강조했다. 한때 최영미 시인이 유명했다. 그의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좋아했다. 베스트셀러였다. 뜨거운 이슈였다. 문단의 화제였다. 관심이 가던 시인인지라 이것저것 찾던 중 최 시인의

 "화가의 우연한 시선"이란 책을 샀다.

그림을 모르는 나에겐 아주 좋은 책이다. 시인이 바라보는 서양화에 대한 감상평이 들어 있다. 가장 눈길이 많이 가던 그림이 있다. 호퍼의 '햇빛 속의 여인'이다. 나체의 여인이 오른손에 담배를 들고 서 있는 그림이다. 그 책 속에는 최 시인의 '햇빛 속의 여인'이란 시도 실려 있다. 강렬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한동안 그 책에 파묻혀 살았다. 그 덕에 명화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보는 것에 만족했다. 직접 내가 그려봐야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시도도 하지 않았다.

2019년 4월 말에서 5월 중순까지 유럽 여행을 갔었다. 여행 중에 미술관 갈 기회가 많았다. 솔직히 책에서만 대충 봤기에 그림 볼 줄 모른다. 로마 파티 칸 미술관에서의 일이다. 가이드가 말했다. 미켈란젤로 작품 "천지창조"를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관광객이 있었단다. 한국 관광객이었는데 미술 선생님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그림을 본다. 고개가 아프다. 솔직히 그림을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더군다나 단체 관광이었다. 그림을 본다기보다 그냥 훑고 지나간다는 말이 맞을 정도로 순식간에 지나다녔다. 관광객들이 정말 너무 많았다.

사람에 치일 정도다.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오는 곳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긴 하다. 그 점을 감안하더라도 기가 막힐 정도로 많았다. 고귀한 그림을 이렇게 무성의하게 볼 수밖에 없다는 게 그림에게 미안할 정도다. 어쩔 수 없이 스쳐가며 슬쩍슬쩍 그림을 봤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도 잊지 못한다. 거긴 다들 '모나리자'를 보러 간다고 말할 정도다.

유럽 박물관들은 정말 사람이 너무 많다. 그림을 구경할 여유가 없다. 그냥 사람에 밀리고 밀려 떠다닌다.

다른 그림에도 사람이 많지만 가장 핫한 곳은 역시 모나리자 앞이다. 실제로 그 앞에 사람이 제일 많다.

그러나 그림을 보면 다들 실망한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볼품없어 보인다. 조그만 액자다. 우리가 늘 사진으로만 보던 그 그림이다. 그래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뚫어져라 쳐다본다. 거길 지나면 다른

그림을 감상할 여유가 없다. 여러 나라 가이드들이 떠들어 댄다.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정말 혼란스러운 광경이다.

 가이드는 대충 설명하고 훅 지나간다.

우리 역시 빨리 가이드를 따라가야 하니

대충대충 훑으며 지나간다.

그림을 보는 건지 뭘 하는 건지 모를 정도다.

한가하게 그림을 느낄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언제 와도 늘 그렇다고 가이드가 말한다.

어느 나라 대통령이 와도 우리처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행 중에 박물관 미술관을 여러 군데 다녔다.

그림을 봤다기보다는

내가 그림을 스치고 지나간 것 같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정년도 얼마 남지 않던 어느 날, 갑자기 그 이후엔 뭐 하고 살지?라는 의문이 생겼다. 할 게 없다는 건 죽은 거나 다름없다. 무언가 할 게 필요하다. 그런데 뭘 할까? 생각 중에 그림이 떠올랐다. 그래! 못 그리지만 이제라도 배워보자. 솔직히 그보다 더 큰 그림은 따로 있다. 노후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통창을 바라보며 거실에 앉아 있다. 이젤을 앞에 두고 고뇌에 쌓여 있다.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린다. 스케치북 속으로 노을이 들어온다. 꽃과 나무가 그려진다. 옆에는 따스한 차 향기가 스민다. 이런 모습을 상상한다. 상상만 해도 너무 멋지다. 이런 걸 생각했다.  

용기를 냈다. 문화센터에 등록했다.

첫 수업 날을 잊지 못한다. 스케치북과 연필이 준비물이었다. 소개가 끝나고 그림 그릴 준비를 했다. 나도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냈다. 내 연필을 보던 선생님이 한마디 했다. 혹시 그림 처음 이세요?  어떻게 아셨어요? 하하하 연필을 연필깎이로 깎아 오셨네요. 이렇게 깎는 거 아닌가요? 그럼 어떻게 깎아요? 연필은 칼로 깎아 오셔야 해요. 아 그래요? 전 몰랐어요.

그러더니 칼을 달라고 하시더니 선생님이 직접 연필을 깎아 주셨다. 아주 길게. 난 그때서야 알았다. 데생 연필은 칼로 깎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른 회원들은 다 칼로 연필을 깎아 왔다. 그 날, 나만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아왔다. 나만 왕초보였다. 창피했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랬던 내가 이제 4년 차다. 물론 여전히 그림은 잘 그리지 못한다. 그러나 수업은 열심히 참석한다. 한 순간에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러면 예술이 아니다. 나도 안다.

연필 데생부터 배우기로 했다. 선 연습을 한다. 직육면체를 그린다. 원기둥과 구를 그린다. 그런 시간을 지난 다음 사람을 그린다. 눈 코 입 귀 각각 나누어 그린다. 그러다가 얼굴을 그린다. 한 2년 하고 나니 그것도 싫증이 난다. 사람은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연필만 가지고 노니까 심심하다. 다른 회원들은 색을 가지고 논다.

 그게 부럽다.

나도 색을 넣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실력은 되지 않지만 해보고 싶다. 선생님은 본인이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씩 색을 넣기로 했다 처음부터 수채화는 무리다. 좀 더 쉬운 어반 스케치를 하기로 했다. 어반도 1년 정도 하니까 흥미가 떨어진다. 내가 싫증을 빨리 내는 스타일인가? 잠시 그런 생각도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채화를 하기로 했다. 다른 회원들은 이미 수채화도 수준급이다.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다. 그들은 십 년이 넘게 그림을 그려온 사람들이다. 감히 어딜 넘보는 거지 내가? 뭐 이런 생각을 수시로 한다. 그래도 열심히 배운다. 그렇게 열심히 하던 차에 코로나 때문에 수업이 자주 중단된다.

지금도 중단된 상태다. 나이가 어려도 나이가 먹어도 학생은 있다. 난 아직 학생이다. 수업이 없고 숙제가 없으면 공부하기 싫다. 나도 그렇다. 수업이 없으니 그림에 손이 안 간다. 그래도 선생님은 동영상을 올린다. 동영상만 구경한다. 그림은 눈으로 되지 않는다. 손으로 그려야 한다. 그런데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냥 현실에 안주해 산다. 화판은 펼쳐져 있다. 쳐다만 보고 있다.

언제 날 색칠해 줄 거야? 하얀 얼굴로 쳐다본다. 사각사각 숨 쉰다.

해제령이 내려야 널 그릴 텐데. 시간이 많아도 붓 잡기가 어렵다.

게으르다.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오늘도 난 여백을 즐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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