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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 앞의 계절 Jan 20. 2021

고구마

                                        



고구마는 간식이다. 고구마가 주식 인적 있었다. 간식으로 먹는 맛과 주식으로 먹는 맛은 다르다.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있었다.

겨울이 되면 점심을 고구마로 먹었다. 쌀로 세끼를 해결하지 못했다. 고구마나 국수로 한 끼를 대신했다. 부잣집이 아니면 대부분 비슷했다. 감자와 고구마는 구황작물이다. 구황작물은 가뭄이나 장마에 잘 견딘다. 우린 감자는 조금 심고 고구마를 많이 심었다. 하얀 감자꽃은 많이 봤다. 감자를 캐러 간 적 있다. 고구마 꽃을 본적은 별로 없다. 고구마를 캘 때나 가기 때문이다.

고구마를 캘 땐 온 가족이 밭으로 몰려간다. 반강제다. 감자를 캐는 일보단 재미있다. 감자는 캐면서 먹을 수 없지만 고구마는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음을 위로하며 호미를 든다. 고구마밭은 산비탈이다. 산 중턱에 있다. 한골에 한 명씩 자리를 는다.

호미질을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다. 고구마 줄기를 옆으로 걷어 치운다. 고구마가 딸려 나온다. 그 고구마를 시작으로 땅을 판다. 고구마가 서너 개씩 들어 있다. 어느 건 호미에 잘린다. 어쩔 수 없다.

고구마 캐는 선수가 아니다. 그냥 막 캔다. 두 동강 나는 고구마도 많다. 거기까진 그래도 괜찮다. 어느 정도 하다 보면 허리가 아프다. 고개를 들어 하늘 한번 쳐다본다. 가을이라 하늘은 파랗다. 말간 하늘이다. 멍 때린다. 한참을 그러다 엄마한테 구박을 듣는다.

빨리 캐! 그러다 언제 캐니? 말과 동시에 허리를 굽힌다. 같은 작업이 반복된다. 그래도 호미질을 할 때마다 하나씩 둘씩 들려 나오는 고구마를 보면 신난다. 큰 놈을 만나면 더욱더 신이 난다. 그렇게 신나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땅 속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뱀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때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호미를 팽개치고 도망친다. 아버지가 뱀을 집어 산으로 휙 던진다. 그래도 난 그 고랑에 가지 못한다.

자꾸만 그 뱀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다. 결국 엄마하고 밭고랑을 바꾼다. 겨우 안정된 마음으로 다시 고구마를 캐곤 했다. 산 중턱이라 벌레도 많다. 게네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이 쪼그라든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럴 즈음이 되면 점심시간이다. 밭고랑 한쪽으로 온 식구가 둘러앉는다. 별다른 반찬도 없다. 찬밥에 장아찌, 김치, 장떡이다. 빨간 장떡은 별미다. 고추장만 넣은 건데도 정말 맛있다.

밥한 그릇이 뚝딱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다시 또 고구마를 캔다. 길고 긴 밭고랑에 주저앉는다. 고구마를 다 캐야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걸 모두들 안다. 힘내서 열심히 캔다. 밭둑에 쌓이는 고구마가 산더미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이 돼야 일이 끝난다. 다 캔 고구마는 윗방에 고이 모셔 놓는다.

대나무로 만든 통가리에 고구마가 수북하다.  

쌀을 가득 쌓아 놓은 것도 아닌데 고구마 통가리를 보면 배가 불렀다.

삶아 먹고 구워 먹고 튀겨 먹고 날것으로 그냥 깎아먹기도 한다. 난 구운 고구마를 제일 좋아한다.

예전엔 아궁이 밥을 해 먹었다. 가을걷이가 끝난 콩깍지로 불을 땐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다. 불을 지피면 타닥타닥 소리가 너무 좋다. 지금으로 말하면 불멍을 즐겼다. 바짝 마른 콩 대공들이  타들어갈 때마다 그 앞에서 눈물을 훔치곤 했다. 연기가 매워서다. 좋기도 하고 힘들고 짜증 나기도 했다. 가마솥도 눈물을 흘리면 밥이 다 됐다는 신호다. 불이 꺼지기 전에 아궁이 속에다 고구마를 서너 개 던져 놓는다. 밥을 다 먹고 출출할 즈음 아궁이 속에서 꺼내 먹으면 맛이 기똥차다. 거기에 살얼음 동동 동치미 국물과 먹으면 끝난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고구마를 들고 호호 불며 돌려가며 먹는다. 입이 새까매지는 줄 모른다.

화롯불에 구워 먹는 재미도 있다. 아 난 정말 옛날 사람인가 보다. 화롯불 하니까 정말  옛날 사람 같다.

그 정도 옛날 사람은 아닌데.

한때 고구미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아, 발음이 되지 않는 병사가 있었다. 작전 암호는 고구마였다. 적군을 발견한 병사는 기지로 달려와 고구미,라고 말했다. 다시 암호를 대라고 말해도 병사는 여전히 고구미라고 외쳤다. 그래서 총을 맞고 죽었다.

그 시절엔 별 이상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시골에 살 땐 변비가 없었다. 아무래도 고구마를 많이 먹어서 그런가 보다. 성인이 되고 고향을 떠나 살면서 변비가 심해졌다. 도시에 살면서 먹는 것들이 달라졌다. 특히 어릴 때 많이 먹었던 것들을 피해서 먹게 된다. 그때 너무 많이 먹어서 질린 탓이다. 그래서 고구마도 잘 먹지 않았다. 그런데 변비가 더 심해졌다. 고구마가 변비에 좋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사서 먹는다. 변비를 핑계로 산다.

에어프라이를 샀다. 설명서에 고구마 굽는 밥법이 적혀있다. 덕분에 자주 사 먹는다. 호박고구마도 있고 밤 고구마도 있다. 특히 난 밤 고구마를 좋아한다. 폭신폭신한 그 맛이 좋다. 그래서 항상 밤 고구마만 산다. 누군 목이 메어 싫다고 한다. 그러나 난 그런 점이 좋아서 산다. 요즘은 손가락만 까딱하면 집까지 배달된다. 시대가 좋아졌다. 고구마도 시대가 달라졌다. 예전처럼 윗방에 가지 않아도 된다. 닦아서 기계에 넣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구운 고구마가 된다.

예전엔 주식으로 먹었지만 지금은 간식으로 즐긴다.

반찬도 가능하다. 예전엔 반찬으로 해 먹진 않은 것 같다. 방금 에어프라이어에 고구마를 구웠다. 200도에

25분이면 구운 고구마가 된다. 고구마 냄새가 진동한다. 겨울에 먹는 고구마가

가장 달다. 뜨거울 때 호호 불며 먹어 제 맛이다. 껍데기가 술술 잘 까진다. 역시 고구마는 구운 고구마가 최고다. 얼음 동동 동치미는 없지만 한잔의 커피와 마시는 고구마도 나름 앳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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