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by 꽃 앞의 계절


첫사랑,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사랑을 말하기 전, 첫 이란 말만 발음해도 마음이 두근 거린다. 첫, 이란 말에서 느껴지는 그 아릿한 맛 때문일까. 하얀 눈 위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찍는 신기한 맛이다. 봄날 처음 피어나는 개나리 같다. 병아리처럼 샛노란 맛이다. 입을 벌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설렌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닫는 발걸음이다. 땡감처럼 떫은맛이다. 쑥스러운 맛이다. 그런 느낌이 좋다. 어쩌면 그 말은 지금도 내 가슴속에서 조그만 싹을 틔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봄날의 아지랑이다. 먼 곳에 있다. 희미하다.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아련하다. 사탕 같다. 달달하다. 향긋하다. 고소하다. 과자 봉지 같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난다. 먼 지평선이다. 이제 막 올라오는 새벽의 태양이다. 깜깜한 새벽이다. 올려다보는 하늘이다. 반짝이는 단 하나의 별이다.

뒤란 감나무 꼭대기에 남은 단 하나의 감이다.

이제부터 첫사랑의 기차를 타러 간다.

우린 삼등삼등 기차를 타고 갔다. 목포로 갔다. 내륙에서 살던 친구들이

생애 처음으로 섬으로 여행을 떠났다. 미지의 세계로 떠난 것이다.

목포에 내리자 비린내가 풍겼다. 그렇게 냄새나는 거리를 걸어본 기억이 없다.

다들 코를 막고 다녔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 냄새에 익숙해졌다.

목포에서 배를 타기로 했다.

배를 탔다. 비린내 나는 부둣가에서.

나로도, 섬이다. 처음으로 가 본 섬이다. 난 내륙에 산다. 섬과는 거리가 멀다. 생선과도 거리가 멀다. 지금까지도 난 회를 즐겨 먹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접하지 않아서이다. 지금은 나로도에 우주센터가 생기면서 그때보다는 더 유명해졌다. 우주센터가 생기기 전 나에겐 더 유명한 장소다.

내가 첫사랑을 만난 장소이기 때문이다. 잊을 수 없는 장소다. 첫사랑을 만난 장소를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고3, 마지막을 보내기가 아쉬웠던 우리들은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것도 배로 떠나는 여행이다. 원래 가기로 했던 곳이 나로도는 아니었다. 목적지로는 배가 안 간다고 하여 할 수 없이 정한 곳이 나로도라는 섬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충청도 내륙에서만 살던 친구들이었다. 섬에 대한 낭만 같은 것이 있었다. 육지에서만 살다 보니 땅보다는 바다나 섬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도사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섬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소풍 가기 전날 잠 못 자는 초등학생 같다. 마음 설레는 게 고등학생이라고 초등학생과 다르진 않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지금이라면 이런 멋들어진 시를 생각했겠지만 그때는 그런 멋진 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던 시절이었다. 실은 배도 처음 타봤다. 배를 타자마자 멀미가 시작됐다. 경치에 취하기도 전에 멀미에 취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물전에서 풀 죽은 생선처럼 누워 있었다. 퀭한 눈으로 축 늘어져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배에 탄 손님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배에서 내렸다. 물에서 뭍으로 바다에서 육지로 나오니 살 것 같았다. 그야말로 물 만난 고기처럼, 육지를 만난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땅을 밟았다. 생전 처음 땅을 밟는 사람들처럼 일부러 쿵쾅쿵쾅 거리며 걷는다. 더군다나 우리는 놀러 온 사람들이 아닌가. 여행객이 아닌가. 그것도 뜨거운 한 여름의 바닷가로.

여행을 간다고는 했지만 특별히 많은 것을 준비하고 간 여행은 아니었다. 남들처럼 해변가에 칠 텐트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기타를 메고 온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여름의 해변가는 많은 것들로 넘쳐났다. 비릿한 바다 냄새가 바탕색으로 깔렸다. 형형색색의 텐트가 쳐 있었다. 기타를 치는 대학생 오빠들의 멋진 연주가 곁들여져 있었다. 모래바닥은 멋진 레스토랑이었다. 조개껍질과 발자국

갈매기들이 들락 거렸다. 잘 차려진 식탁이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차려진 것 없어도 먹을 것이 많은, 그런 곳이었다.

우리는 그저 맨발로 모래사장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냥 바라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 밀려왔다 밀려 나가는 파도, 먼발치로 보이는 수평선, 주변을 걸어 다니는 사람들, 어느 것 하나 멋들어지지 않은 게 없었다. 여행의 묘미란 그런 것이 아닐까. 주변의 모든 것들이 다 멋져 보인다는 착각 같은 것, 못생긴 대학생 오빠도 너무 멋져 보인다는 것, 기타 코드가 맞지 않아도 모른다는 것, 음치가 노래를 불러도 음치인 줄 모른다는 것, 그렇게 하세월을 보내고 있던 우리에게 옆 쪽 텐트에서 기타를 치고 있던 대학생 오빠들이 손짓을 했다. 속으론 쾌재를 부르며 다가갔다. 같이 놀자는 유혹의 손, 뿌리치지 않았다. 이런 걸 왜? 우린 그렇게 만났다. 통성명을 하기도 전에 기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노래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밤이 새도록 기타는 울었다. 모래알이 반짝이는 태양을 받기 시작할 때까지 끊기지 않았다. 그 오빠들과 이야기하며 떠들고 노래 부르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정말 깜깜했다. 누가 누군지 몰랐다. 어떻게 생겼는지 중요하진 않았다. 그저 놀러 왔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땐 통기타 가수가 유명했었다. 70,80 세대가 판 치던 시절이었다. 샌드 패블즈, 열기들, 우순실, 해바라기, 산울림, 그들의 세상이었다. 노래가 끊기지 않았다. 우린 그 감성에 기댄 채 꼴딱 밤을 새웠다.

그 오빠들의 신상은 아는 게 별로 없다. 한 친구가 그 오빠들 중 한 명의 연락처를 서로 주고받았다. 그렇게 그 친구의 교제가 시작됐다. 그 친구 소개로 난 다른 오빠 한 명을 소개받았다. 그 친구도 나도 펜팔을 시작했다.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우리는 충청도 그 오빠들은 전라도, 그렇게 장거리 펜팔이 시작되었다. 나의 첫사랑도 시작되었다.

그땐 정말 열정적이었다. 우리의 복장이 그걸 말해준다.

우리 옷은 간단했다. 빨간색 티셔츠에 청바지다. 통일했다. 누가 정했었나? 그랬었던 것 같다. 그때 사진을 최근에 핸드폰으로 받았다. 줄줄이 서서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는 고등학생들 사진이다. 빨간 스무 살 청춘이 사진 속에 박혀있다. 그 시절이 다시 떠올랐다 내려앉는다. 사진을 보니 그 시절이 다시 그리워진다. 나이가 들어가는 중이다.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세대가 되어가는 중이다.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다. 그 시절만 느낄 수 있는 맛이 있다. 농익지 않고 설익은 그런 맛이다. 떫어서 먹어도 맛이 느껴지지 않는 맛이다. 덜 익은 감정으로 우리는 스무 살을 보내고 있었다. 나와 친구 한 명은 직장 때문에 서울로 상경했다. 일부는 고향에 직장을 잡았다. 한 친구는 미용실을 차렸다. 나름대로 바쁘게 세월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펜팔 하던 친구들이 군대를 간다고 했다 군대를 가기 전에 친구들이 있는 충청도로 놀러 온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만남이었다.

두 번째 보는 것이라고는 했지만 첫 번째나 다름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밤이라 얼굴을 못 봤다. 그다음 날 그들은 모두 해변가에서 없어진 후였다. 일행 중 한 명이 식중독에 걸려 날이 밝자마자 병원에 갔다고 한다. 그러니 서로 얼굴을 모른다. 두 번째 만남에서 겨우 얼굴을 봤다. 그것도 우리 고향에서.

그때 유행하던 노래가 노고지리의 찻잔이란 노래다.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은 노래들이 흘렀다.

그때만 해도 커피집에는 디제이가 있었다. 종이에다 듣고 싶은 노래를 적어 내면 그걸 틀어주곤 했다.

멋진 디제이 오빠가 있는 커피집은 항상 만석이었다.

그때 본 첫사랑은 기대 이상이었다.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키가 컸다. 난 키 큰 사람을 좋아했다. 내 키는 보통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다. 그런 로망이 있었다. 친구들이 키만 크다고 멀대라고 놀렸다.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선 멀대로 불렸다. 아마 본인을 모를 것이다. 우린 그렇게 만났다. 그땐 통금이 있던 시절이었다. 그땐 버스가 일찍 끊겼다. 버스를 타려면 일찍 서둘러야 했다. 그때 우린 겁 많은 촌년들이었다. 통금이 되기 전까지 우린 우르르 몰려다녔다.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오빠들 중 한 명은 군대를 갔다.

세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번엔 우리가 전라도로 여행을 갔다. 삼등삼등 기차를 탔다. 바닥에 주저 않아도 좋았다. 좌석이 없어도 좋았다. 여기저기서 기타 소리가 들려왔다. 수다는 끝이 없다. 풍경은 여전히 신났다. 광주에 도착했다. 처음 가보는 도시였다. 보는 것마다 생경하다. 처음엔 조선대를 구경시켜줬다. 그리고 광주 시네를 돌아다녔다. 카페 이름은 지금도 기억난다. 그랑나랑이란 커피집이었다. 차 한 잔 시켜놓고 음악 실컷 듣고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 지치면 거리로 나와 밥을 먹었다. 소화도 시킬 겸 탁구장도 갔다. 난 초등학교 때 탁구를 배웠다. 기본기가 있다. 웬만한 사람들과 죽이 맞는다. 남들이 보면 잘 친다고 할 정도의 실력이다. 땀 흘릴 정도로 탁구를 쳤다.

우리 친구들과 그 오빠들은 정말 신나게 먹고 돌아다녔다.

그렇게 전라도 여행은 끝이 났다.

그 후로 또 몇 명은 군대로 갔다

우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러는 사이 그 유명한 광주 사태가 벌어졌다. 뉴스에 눈을 뜨고 서둘러 뉴스를 끄곤 했다.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가 갔던 그 거리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한동안 뉴스를 보지 않았다. 먹고 사느라 바빴다.

나중에 들었다. 광주 사태 때 그 오빠들이 그곳에 있었고 직접 보았다고 한다. 그때는 대학생들이 억지로 군대에 보내지기도 했다. 농담인지는 모르겠으나 실제 총탄이 스친 적도 있노라고 무용담처럼 이야기했다. 믿거나 말거나 한 말이었다.

그러는 사이 대부분의 오빠들은 군대로 팔려갔다.

우리도 각자 바쁘게 살았다. 펜팔은 계속 이어졌다. 군대라는 장벽은 거대하다. 그 벽을 뚫기가 어렵다. 곰신이라는 말이 있다. 그때 없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신발을 거꾸로 신게 된 것이다.

이유는 많다. 철벽이 많았다. 그 장벽을 뚫지 못했다.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편지도 하루에 한 통씩 쓰던 것이 일주일에 한 번으로 바뀌더니 한 달에 한 번으로 일 년에 한 번으로 바뀌어 갔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 동감한다. 멀어서 만나기 힘들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다. 연락이 쉽지 않았다. 만약 그때 핸드폰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각자 사는 게 바빠서 장거리 연애는

대충 마무리가 되었다.

그러는 사이 친구들은 결혼을 했고 나도 결혼했다. 물론 그 친구들과 엮어진 친구는 한 명도 없다. 그 친구들도 우리처럼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을 거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순 없지만 첫사랑이란 단어로 그 친구들을 다시 소환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첫사랑이란 말을 썼지만 솔직히 사랑이었는진 모르겠다. 지금도 난 사랑을 잘 모른다. 절실하게 죽을 만큼 좋아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죽을 만큼 좋아야 사랑일까? 그런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사랑에 정답은 없다.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던 애틋함이다. 절절하게 보냈던 한 페이지다.

지금은 다 사라진 지 오래다. 다시금 그 시절로 되돌아 간다고 하면 그 시절의 그 느낌이 되살아 날까?

잘 모르겠다.

사람들이 말한다. 첫사랑은 그저 첫사랑으로 끝나야 한다고. 첫사랑을 나중에 보면 서로들 후회한다고 말한다. 그 후에 본 적 없다. 그저 첫사랑은 책 속에 고이 간직해 놓은 책갈피다.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는, 나만의 눈에만 보이는 책갈피다.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펼쳐 볼 수 있는 책이다.

덕분에 챌린지라는 말이 있다. 첫사랑 덕분에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한다.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 시절이 그리워지면 꺼내 볼 수 있는 솔깃한 페이지다.

아련하고 가물거리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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