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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를 위한 나라는 없다.

그럼에도 도대체 왜?

by 김윤섭

코로나로 인해 모두의 일상이 바뀌어 버린지 벌써 3년째. 전쟁이라도 난 듯 다들 편의점, 약국 할 것 없이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구하지 못하면 역병에라도 걸릴 것만 같은 불안에 떨던 날들도 이제는 없다. 마스크를 쓰는 것이 익숙했던 나였지만 평소의 수술용 마스크가 아닌 KF94 마스크를 껴야 했던, 비닐 가운과 장갑을 필수로 착용해야만 했던 그 불편하고 덥던 날들도 이제는 없다. 아니, 사실은 있지만 그 마저도 익숙해져가고 있는 나날의 연속이다.

응급실에서 첫 확진자가 나왔을 당시를 잊을 수 없다. 담당하던 간호사의 낯빛은 사색으로 변하였고 모두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누구 하나 자신 있게 나설 수 없었다.

그런 날들이 하루하루 지나고 이제는 하루에 수 명이 나온다 한들 누구 하나 놀라지 않는다. 그저 그 환자를 비롯한 다른 환자, 보호자의 동선을 파악 한 뒤 보고에 보고를 끝없이 할 뿐. 보고가 끝난 뒤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 각자의 환자를 체크한다. 간호사란 그런 직업이니까.

코로나로 전국적으로 간호사의 수요가 높아져만 갔고 꽤나 높은 일당을 제시해 많은 장롱면허 간호사들이 다시 현장으로 복귀하는 일이 생겼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끝날 것만 같았던 날들이 지속되자 다시금 수요와 공급에 불균형이 생기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지금까지 만연해 있었던 간호사라는 직업의 이직률과 퇴사율에 관해 어떻게든 타개하고자 하는 국가적 차원의 노력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꾸역꾸역 간호사들은 자리를 지켜왔고 빈자리를 메꿔왔다. 그 방법이 무엇이 되었든 어떻게든 환자 곁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다. 우리가 왜 그만두려는지, 무엇이 힘든지에 대해서 아무리 알려도 노력하지 않던 그들에 비해 끝끝내 지키려고 해왔던 건 오히려 우리 쪽이었다. 간호사란 그런 직업이니까.


무엇이 우리의 직업을 그토록 희생적이게 만들었을까. 자본주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존재해야만 하는 워라벨(워크 엔 라이프 벨런스)을 그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맞춰왔던 걸까. 이 분야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왔던 우리의 노력이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우리를 '어떻게든 자생하는 존재'로 여기게 끔 한 것은 아닐까.


내 주변에만 해도 습관적으로 '적당히 경력 쌓고서 해외로 가야지.'라고 말하는 동료들이 굉장히 많다. 나부터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심지어 얼마전까지만 해도 진지하게 고민했었지만, 아직은 이르다고 생각한다. 난 아직 이 생태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부족한 이해도로는 해외에 간다고 한들 나의 이 직업에 대한 '관'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간호사를 위한 나라는 없다. 적어도 아직은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도, 모레도 출근을 한다. 간호사를 위한 나라는 없지만, 환자를 위한 간호사는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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