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새롭게 편성되는 전선의 군대와도 같다.
간호사의 경우 입사를 하기 전부터 가고 싶은 부서를 지망하는 시기가 있는데 마치 대학입시와도 같다. 인기 있는 부서는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고 어떻게 하면 그 부서에 발령되는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며느리도 모를 정도다. 서류면접에서부터 그 부서에 대한 강한 원티드(희망한다는 것을 뜻함)를 표현하거나 아니면 인턴쉽 제도가 있는 경우에 해당 부서를 경험했다면 좀 더 가산점이 있다는 것 정도 밖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여하튼 난 학창 시절부터 항상 1 지망으로 응급실을 희망해왔었다. 당연히 실습도 하였고, 인턴쉽도 운 좋게도 응급실에 붙게 되어 이수하게 되었다. 물론 서류 면접 희망부서에서부터 언제나 항상 1 지망은 응급실로 어필했었다. 정말 어떻게든 가고 싶었던 것 같다.
이유가 특별히 있었는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크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반복되는 상황 속에 익숙해져 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는 것이었고 다양한 분야를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런 점에서만큼은 응급실이라는 부서가 가장 적합하기에 항상 1 지망으로 여겼던 게 아닐까 싶다. 실제로 자기소개서를 쓸 때에도 위와 같은 나의 솔직한 표현이 결국 응급실에서의 나의 간호사 생활을 시작하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신규 간호사로 응급실에 19년도 부로 발령받게 되었다. 앞으로 나에게 다가올 엄청난 시련과 고난은 정말 단 1%도 상상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인턴쉽을 하였을 때 응급실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분업화'였다. 그 당시에도 정말 바쁘게 돌아가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 속에서 냉철한 판단력으로 서로 말없이도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찾아가는 그 모습들이, 한 팀을 이루어 환자를 둘러싸는 모습이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나에게 지식적인 부분을 짚어주며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전문간호사 선생님들은 내가 생각했던 간호사 그 이상의 이미지를 구축해주었으며 나도 분명 이곳으로 오면 저렇게 될 수 있겠지라는 열정 가득한 포부를 가지게 해 주었던 듯하다. 하지만 실제로 부서에 신규 간호사로 입사했을 때에 내가 듣던 얘기의 분위기는 많이 달랐다. 마치 정말 멋진 연기를 보여준 배우들의 연극 뒤편의 모습을 보는 기분이었달까.
응급실 인턴쉽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에게 돌아오는 말은 '그런데도 응급실을 지원했어?'였다. 어떤 의도로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는 다분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말에 의아해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직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도 뭐 지금 선생님도 다니고 계시잖아요?'라는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부서에 발령된 지 3달이 채 되지 않아 난 첫 사직 면담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우스운 상황이었다. 누군가 간호사를 얼마큼 할 것이냐고 물어보면 당차게 '그래도 10년은 해야지요.'라고 말했던 나인데 반년은커녕 3개월 만에 녹다운된 것이다. 물론 어찌어찌 면담 후에 생각을 바꾸고, 실제로 나도 그렇게 허무하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기에 좀 더 힘을 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정말 너무나도 아수라장 같았다. 전쟁터 그 자체였다.
그 전쟁터를 묘사하자면, 지금 당장 급성 심근경색으로 관상동맥 조영술 및 중재술 시술을 보내야 하는 환자가 응급실에 도착한 상황에 응급실 당직 데스크에는 '심폐소생술'로 지금 당장 병원으로 오겠다는 '핫 라인' 전화벨이 울리고 있는 상황이고, 조금 전에 도착했던 토혈(입에서 피가 섞인 토를 하는 증상) 환자가 대량의 토혈을 하며 혈압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고 뛰어가는 찰나에 뒤에서 다른 환자의 보호자가 나를 끌어당기는 상황이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보호자는 나에게 말한다. '수액 다 들어갔어요.' 위의 한 문장으로 기술된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저 말의 의미를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참고로 그런 상황에서 내가 보고 있는 환자의 수는 10명이었다.
밑의 그림이 설정이 아니다. 출처:국민일보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1424202
물론 당시의 나는 신규 중의 신규였기 때문에 위 상황 속에서 크게 영웅적인 면모를 보일 수 있는 역량이 갖춰져 있지는 않았지만 응급실은 그 어떤 것이라도 분배에 분배를 통해 일을 나눠가며 해야 돌아가는 부서의 특성이 있기에 가만히 있을 수많은 없었다. 필자가 속한 응급실의 경우 한 듀티(데이, 이브닝, 나이트 -24시간을 아침, 오후, 밤 기준으로 나눈 근무조 중 하나)에 일하는 사람이 대략 20명 정도가 되는데 이는 마치 전선에 나가는 편성된 군부대와도 같다. 숙련된 전문하사부터 그 아래 이등병까지. 그리고 난 그 당시 그중에선 이등병이었기에 실제로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런 상황들이 주에 3-4번은 지속된다는 것이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떻게 존재해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아는 것은 뭐고 모르는 것은 뭔지 당최 하나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겐 정말 지옥과도 같았다.
그런 3개월은 나를 사직 면담에 이르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2년 8개월이 지나는 시점이다.
응급실 간호사로 일한 다는 건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