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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간호사로 일한 다는 건-2

수많은 사연 속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by 김윤섭

내가 해결할 수 없고, 알 수 없는 것만으로 가득 찬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불쾌한 일인지는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희망 부서로 응급실을 말한다면, 그리고 응급실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지에 대하여 묻는다면 나는 가감 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단연코 그 어떤 부서보다도 신규 간호사로서의 진입장벽은 최고로 높을 것이다. 오고 싶다면 오라. 하지만 정말 큰 마음을 먹고 와야 할 것이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렇게 말하는 나이지만 수 차례의 퇴사 면담 속에서도 끝끝내 2년 8개월 동안 올 수 있었던 건 나의 행위가 실제로는 수많은 사연들 속에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입사 초반에는 응급실은 그저 이기심의 끝판의 끝판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 말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앞에서 심정지 환자의 심폐소생술 처치가 행해지고 있었고 기관 삽관 및 정맥 술기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응급실에서의 모든 상황들 중 가장 촌각을 다투는 일이었다. 그런 도중 한 보호자가 나를 붙잡았다. '약이 다 들어갔으니 좀 떼어줘.' 믿기 힘들었다. 앞에서 사람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데 항생제가 다 들어간 약이 잠깐 달려있는 게 그렇게 붙잡아가며 해야 할 말인가 싶었다. 당연히 난 퉁명스럽게 '괜찮아요, 공기 안 들어가니까 조금 이따가 빼드리겠습니다.'라고 이어갔지만, '아 화장실 가야 하니까 빨리 빼 달라고!'라는 말이 되돌아왔고 난 일을 크게 벌이기 싫어 하릴없이 그 환자에게 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이 있는가 하면 '그럼 나도 저 지경이 되어야 봐줄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의학적으로 '지금 당신은 절대로 저렇게 될 확률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고 한들 그런 논리가 통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참 난감한 일이었다. 그런 사람들을 통해 난 그 사람들이 '아프기 때문에' 온 환자라는 점을 점점 잊어가고 있었고 그 '아픔'속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응급실에서 가장 중증 구역은 다름 아닌 '소생실'이다. 소생실이라 하면 대게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환자 혹은 곧바로 기관삽입이 필요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응급처치, 시술 및 수술이 필요한 환자들이 입실하는 공간이다.

119를 통해 오거나 129(민간구급차) 통해 환자는 빠르게 입실하지만 보호자 입장에서는 절대로 익숙할 수 없는 상황이다. 촌각을 다투는 상황 속에서 환자는 간호사들과 의사들로 순식간에 둘러싸여지고 보호자는 본인에게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갑작스럽게 질문이 들어온다. '지금 당장 기관삽관을 하지 않으면 돌아가실 수도 있습니다. 얼른 선택하셔야 해요.' 보호자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고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당장 해당 처치를 했을 때 사후 비용부터 입원 치료를 하고 나서의 예후 및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지에 대한 가능성에 대해 궁금하게 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그 무엇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라는 정말 도움이 되지 않는 답변뿐.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 하면 모든 환자, 보호자들이 저 같은 상황 속에서 응급실을 방문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런 상황에 다다르고 싶지 않은 걱정 속에서 방문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백신을 맞고 열이 떨어지지 않는 나의 어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항암을 하면 열이 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혹시나 다른 것에 문제는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차례를 지내느라고 요리를 하면서 계속 간을 보다가 탈이난 나의 아내에 대한 염려로 응급실에 오는 사람들이, 중증도를 기준으로 일하는 우리에게는 당장 위급해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 속에서 응급실을 방문한다. 그리고 우린 그 사연 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어루만진다.


응급실 간호사로 일한 다는 건. 사연들의 어루만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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