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섭 Oct 07. 2021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는 것

신규 간호사는 막 태어난 아기와 같다

 군대에 있을 때 자체적으로 직접 시행했던 작은 나만의 프로젝트가 있었다. 후임으로 들어오는 모든 친구들을 시간이 나면 매점으로 데리고 가 상담을 해주는 것이었는데, 상담의 내용은 '잘해야 한다.'라기 보단 '잘못해도 된다.'가 주였다. 이런 프로젝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나 스스로가 군부대에 적응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을 내 후임들은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어떠한 큰 부조리가 있어 상담을 빌미로 한 작당모의를 통해 그 부조리를 바꾸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새로운 환경에 들어선다는 것이,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계급이 존재하는 집단에서 적응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하고 그로 인해 일어나는 바보 같은 실수들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전역을 할 때 즈음엔 그 담화가 생각보다 인상 깊었는지 고맙다고 해주는 후임들이 더러 있었다. 


 20대 성인이 되어서도 군대라는 곳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전에 여느 집단에서도 잘 적응해 리더 역할을 하거나, 혹은 소위 말하는 상위권 대학의 출신이었다고 하더라도 모두 리셋이 되어버린다. 사회생활 능력이라든지, 새로운 작업 환경에 뛰어들어 그 작업을 수행하는 능력치들이 왜인지 모르게 훨씬 줄어든다. 나 스스로도 그런 것을 느꼈고 그 부분에서 오는 자괴감은 생각보다 너무나도 타격이 컸다. 분명 '너는 군 생활 잘할 거다. 하던 대로만 해. 오히려 너무 열심히 해봐야 너만 손해야.'라는 이야기를 수 없이 듣고서 들어왔던 나였기에 더더욱 나에 대한 스스로의 실망감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내가 왜 그랬을 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봤을 땐 생각보다 간단한 답에 이르렀다. 하루 만에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공간에 들어가 어느 곳에서도 본 적 없었던 사람들과 나란히 누워서 갑작스럽게 군사 훈련을 받고서는 그나마 친해졌던 친구들과도 각기 다른 부대로 배치되어 헤어지게 된다. 그러고는 다시 하루 만에 새로운 공간에 들어가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다들 자신의 먹잇감인 마냥 쳐다보는 눈빛들로 둘러싸여 공포에 질리게 된다. 어찌 보면 그 상황 속에서 바보가 되지 않는 쪽이 훨씬 더 소수일 것이다. 


 물론 이런 경험이 있다한들 직장이라는 곳에 들어가면 다시 처음으로 리셋된다. 특히나 간호사의 경우에는  학생 시절 1000시간의 실습시간을 필수로 이수해야지만 국가고시 시험에 응시할 수 있고 면허증을 취득해 간호사로서 일하게 되는데, 저 1000시간이라는 실습 때문에 처음에 부서에 갔을 때에 나의 본분을 실감하는 데에 더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내가 간호사인지 실습생인지 분간이 갈 때 즈음엔 이미 적응을 한지 한참 뒤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처음 부서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실수들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되고 아무래도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보니 내가 잘못한 실수의 결과에 비해서 꾸짖음의 정도가 더 큰 경우가 다반사이다. 물론 최대한 집중하여 최소한의 실수도 아닌 '0'에 수렴할 정도의 사고가 있어야 하는 곳이 의료현장이기에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1000시간의 실습동안 내가 배운 것은 실무 현장에서의 스킬보다는 지식적인 측면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저 이곳에 새로 태어난 아기와도 같은 수준의 능력치를 가지게 된다. 

 

 새로운 곳에 들어간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와도 같다.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내 마음가짐을 다잡아야겠다는 의미에서가 아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나라는 사람 자체가 새롭다는 의미이다. 그러니 그 새로운 나라는 사람에게 다시금 시간을 주어야 한다. 스스로 스스로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 주변의 많은 이들은 나에게 관대하지 못하겠지만 나만큼은 절대적으로 나에게 관대해지고 너그러워져야 한다.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어떻게든 나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야만 한다. 적어도 그 정도의 노력을 해야지만 부모님 없이 새로운 환경에 내던져진 나라는 새로운 사람은 양분 없이도 쑥쑥 커져가리라. 


 내가 군대에서 새로 배치받아 온 후임들에게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우리가 하는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그걸 하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가려고 하면 돼. 그렇게만 한다면, 네가 하는 모든 실수들은 절대로 네가 지식적으로, 인간적으로 멍청해서 바보여서가 아니라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나온 너의 영광스러운 업적이 될 거야.' 


 현시점의 모든 신규 간호사 선생님들 그리고 앞으로 될 모든 신규 간호사 선생님들을 위해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다. 어디선가 마음의 위로를 받고자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이 글을 발견하게 된다면 마지막 문장만큼은 봐주길 바란다. 

 

 '절대 선생님의 탓이 아닙니다. 안간힘을 쓸 필요도, 발버둥 칠 필요까지도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세요.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을.'  

작가의 이전글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