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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섭 Oct 08. 2021

자기 계발서

  온라인, SNS, 유튜브 매체가 유행해 감에 따라 서점을 가는 일이 줄었고 책을 사야 하는 일이 있어도 온라인으로 조금 더 싼 가격에 구매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서점과 거리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 책의 세세한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책을 열어봐야만 했으며 유튜브 콘텐츠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정보가 너무 방대하다 보면 믿을만한 전문 서적을 하나 더 보는 것이 훨씬 더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얼마 전 오랜만에 서점을 들렀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역시나 입구에는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책들이 한편에 장르별로 구분이 되어 있었다. 볼 때마다 '저 책은 좀 봐야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게끔 전시를 참 잘해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서점을 가면 항상 버릇처럼 일부러, 의식적으로 피해 가는 카테고리가 있었는데 '자기 계발서' 항목이었다. 예전에 처음 자기 계발서라는 항목이 생겼을 때에는 정말 말 그대로 자기 계발을 위한 좀 더 디테일한 멘토링의 내용으로 이루어진 책들이 많았다. 자수성가를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이랄지 혹은 위인들의 업적을 자기 계발에 빗대어 설명한 책이라든지.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제목만으로 굉장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역설법을 사용한 제목의 책들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의 자기 계발서 매대에는 거의 대부분이 위와 같은 제목의 형식을 가지고 있는 책들로 가득 차 있다. 제목의 느낌이나 내용은 대부분 크케 '위로', '상처', '괜찮다.'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있었고 어찌 되었든 나도 그 제목에 끌려 책을 열어 읽어 봤을 때에는 모두 비슷한 사람들이 쓴 것만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내용이 유사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실수 투성이 일 수밖에 없고 그 실수는 당연한 것이며 당신의 탓이 아니니 용기를 가지고 당신에게 상처를 주는 모든 사람들을 무시하십시오.'라는 한 문장으로 거기 있는 모든 책들을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 당시의 나는 그랬다.


 내 지론으로는 그런 방식의 위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였는지 정확히 모르는 어떤 부분에서 그런 책들에 굉장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건 위로라기 보단, 무책임한 그저 적절한 미사여구를 덕지덕지 바른 달달한 문장일 뿐 실제로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속으로는 '지금 시대에는 멘토를 위한 멘토가 필요하다.'라는 마음가짐으로 그 부류의 책을 일부러 피하며 '조던 피터슨'과 같은 현실적인 조언을 하는 사람들의 영상, 서적을 보면서 나 스스로의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지금 그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편협한 생각이었는지를 실감하는 찰나이다. 


 사람은 원래부터가 연약한 존재이다. 신체적으로도 말할 것도 없고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일종의 매너와, 눈치로 되어있는 분위기가 만연한 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난 그런 부분이 심지어 우리나라가 무채색 옷을 좋아하는 것과도 연관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굉장히 큰 압박을 가지고 있다. 아마 위와 같은 책들이 많이 나오게 된 이유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수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내가 가졌던 생각은 그런 수요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무시한 격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지금 나에게 그런 책이 필요한 시점이니까. 


 염좌(삠)가 생기면 완치되는 데까지 장장 6개월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6개월이 처음부터 끝까지가 전부 다 재활 운동치료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20% 정도는 재활 운동치료를 받아들일 수 있는 기초 공사가 필요하다. 관절의 어느 정도 범위까지 움직임이 가능한지, 어느 정도의 통증이 있는지 어디까지 깊숙이 상처가 있는지 등등에 대해서 천천히 부드럽게 내 몸을 알아가야 한다. 


 모든 상처가 그렇다. 당연히 마음의 상처는 더더욱 그렇다. 상처를 입고 나서 그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구체적인 방안을 바로 받아들이기 전에, 그 상처에 합당한 감정적 위로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구체적인 방안의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고, 자발적인 회복 탄력성을 갖추게 된다. 


 자기 계발서를 응원한다. 오늘 '간호사 스트레스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키워드로 나의 글을 읽게 된 그대에게 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문장이 그대의 상처를 회복하는 데에 조금 이나마의 감정적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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