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밭농부 Jan 16. 2021

시골로 이사갈까? 말까? 갈까?...가자 !!

시골 전원주택을 찾아서



"얘들아~~ 저녁이잖아 이제 그만뛰어!! "


  저녁 6시가 되 나 목소리가 날카로워진다.  역시나 아이들읃 내 말이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대답뿐이다. 

이내 나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날카로운 훈계는 협박으로 변한다.

" 누가 밑에 집에 내려갈래 !? 대표로 가서 사과하고 와~!  누가갈꺼야?"

그때서야 아이들은 겨우 자리에 앉는다. 여전히 낄낄거리면서...

11살 8살 6살 아이들이 조금 뛰면서 노는게 무슨 큰죄란 말인가. 하지만 아파트에선 죄가 될 수 있다.  나는 밑에 집에 굽신거리며 사과를 해야 한다. 죽을 만큼 하기 싫다. 그러려면 어쩔 수 없다. 방법은 하나!  아이들을 잡는 수밖에~~


  언제까지 아파트에 갇혀 살아야 하지?

영국에서 코로나 변종이 나왔다는 뉴스가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백신을 맞은들 자유로울 수 있을까 ?

회의감이 들었다.  이런게 코로나 우울일까?


  나의 동선은  집, 마트,  집, 마트! 아이들의 동선은 집, 어린이집, 집 , 어린이집!!


  벗어나고 싶다는 강한 열망 !!  우리에겐 "시골" 이라는 좋은 카드가 있지 않은가?!  남들은 먹고살게 없어 못간다지만, 귀농이 예정된 우리야 이사만 결심하면 그만인것을~!


 나는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농장근처 초등학교에  이것저것 문의를 했다.  전화통화를 하고보니 더 가고싶다!!


 그곳으로 가면 더이상 갇혀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우리 농장근처로 이사갈까 ?  아이들도 시골 초등학교에 보내면 어때? "


  사실 당분간은 몇년이 되든, 그대로 아파트 생활을 하자고 제안한건 남편이었다.  농장땅은 대여한 것으로 , 확실하게 땅을 구입하기 전까진 함부로 근처에 집을 지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 애들을 언제까지 아파트에 가둬야 하지? 우리가 여기서 도시생활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없는 것 같아 "


" 시골 초등학교가 아이들에게는 더 좋지 . 농장관리도 편하고 "


" 마당딸린 집으로 가자, 마음껏 뛰어놀고, 진돗개도 키우자 ! "


 마음먹기 전까진 둘다 망설이던 일이었지만, 마음이 맞아 버리자, 늘 그렇듯 우린 빠르게 움직였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도 나서서 근처 집을 알아봐주셨다. 근처 마을 이장님들께 전화를 돌리셨다고 한다.

빈집있으면 소개시켜 달라고...

감사한일이다. 도시에선 보기힘든 정감있는 배려!!



  시골부동산에 전화문의를 했다. 역시나 집이 많지 않다.  아파트라면 한 동에서만도 몇집을 볼 수 있을텐데, 시골은 차를 15분씩을 달려야 겨우 한채씩 볼 수 있었다.  남편은 시골 출신이라 오래된 시골집들의 상를 잘 알고 있었다.


" 아마 살기 힘들거야, 다시 짓거나 고치지 않고서는 "


" 그래도 일단은 보자 ! 좋은집이 찾아질지도 모르잖아 "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의 소개로  겨우하나 나온 월세집을 보러갔다. 시골에 살만한 집이 있다면 월세든 매매든 전세든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래되어 수리를 할수 없는 상태였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고쳐야 한단 말인가. 이정도면 새로 짓는게 낫겠다 답 뿐이다.


" 이장님! 차라리 땅을 파세요. 저희가 다시 지을게요 "


" 아니~~ 안팔아~~"


이장님 께선 손서레를 치신다.


'왜 시골분들은 땅을 안판단 말인가. '


실망하며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 이건 아니야. 월세집을 몇천씩 들여서 수리할 순 없잖아 ! 이건 버려야 하는 카드야 ! 급할건 없으니 천천히 생각하자 "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네이버 부동산을 뒤졌다. 사실 뒤지고 말것도 없었다. 나온 매물 자체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으니까.

  평수를 확인하고 지도로 마을 위치를 살피고, 최초승인 연도를 보면 20년넘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시골집들에 실망한 남편은 다시 마음이 돌아서고 있었다. 


"보류 ~~괜히 가서 후회할 필요도 없고. 지금 살고있는 우리동네도 살기 좋은데 "


" 그렇긴 한데..."


 반면 나는 쉽게 마음이 돌아서지 않는다.  나중에 포기 하더라고 지금 나온 집들을 모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귀농결심전부터 가지고 있던 시골학교에 대한 로망이 다시끔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아파트에 갇혀 노트북만 쳐다보는 학교생활보다는 백배 낫지 않겠는가 .


" 오빠 ! 그림같은 집을 발견했어 가격은 좀 비싼데 가서 구경이라도 한번 해보자"


  마침 새해 연휴였던 터라 바로 다음날 차를 달려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네이버 지도에선  분명 농장에서 가까웠는데, 한참을 들어간다.  네이버에서 본건 직선 거리였던 것이다.  길은 아주 꼬불꼬불 산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큰 호수를 지나 들어가자 새로지은 세련된 전원주택들이 줄지어 있었다.


  실제로 마주한 그 집은 정말 예뻤다. 집안에만 있는다면 만족도가 클 것 같은 집이었다.  2층집에 방이 다섯개,   테라스가  세군데나 있고  잔디가 깔린 마당까지 !!


"이런곳에도  사람이 살아? 왜 여기까지 들어와 사는거지?심지어 전부 외제차야 !!"


" 너무.... 외지다 "


" 별장인가? "  


  나는... 세컨 하우스가 아니고서야 그렇게 외진 곳에선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허무하게 그림같은 전원주택을 뒤로하고 차를 돌렸다.  이제 볼 수 있는 집도 몇채 안남았다.



  이렇게 계속 마음에 드는 집이 구해지지 않는다면 , 우리는 시골로 이사를 갈 가 없다. 시골초등학교의 로망도 접어야 한다.  마음이 점점 초조해져 갔다.  그렇게 몇집을 더 돌고도 제자리였다.

  

  부동산 아저씨께 제일 처음 소개받았던 집이 한채 남아 있었다.  우리에겐 마지막 카드였던 것이다. 천안 시내에서 농장으로 들어오는 길가에 있어 매일 지나치는 집이었다. 왠일인지 그집은 아는 집이란 이유로 가장 늦게까지 보지 않고 있었다.

  낡거나 , 외진 시골집에 잔뜩 실망을 하고 이사를 보류하기로 마음 먹었던 어느날 , 차를 타고 그집 앞까지 들렀지만, 우린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


" 봐서 뭐해? 비슷하겠지 ..! 아무리 저 집이 좋은 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보다 좋겠어 ?보지 말자, 천천히 생각하자 "


" 그래~~ 일단보류"

그렇게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


하지만 내 마음속 시골 초등학교는 쉽게 떠나질 않았다.  이제 곧 둘째도 1학년에 입학하는데, 8살 남자아이를 노트북 앞에 앉혀놓아야 한단 말인가.


그날도 나는 여지 없이

" 뛰지마!! 이제 저녁이잖아!! 걸어다녀. 너무 큰소리로 웃지마! 조용히 하라고 "

도끼눈을 떴다. 에효 ~~저히 안되겠다.


" 마지막집 딱 한군데만 더 보자 !! 그집을 보고나야 포기가 될것 같아 "


  다음날 농장청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길. 친정부모님과 함께  마지막 집으로 갔다. 아무래도 이곳! 입지가 너무 좋다.  큰길가에서 한블럭( 한 밭) 들어간 마을초입에 위치해 있고, 136평에주차장이 넓었다. 근처에 집들이 많았지만 어느한군데 붙어있지않아 답답한곳이 없었다. 하루에 단 몇번만 들어오는 귀한 버스가 바로 집 뒤까지 들어왔다.

집앞엔 텃밭이 있었고, 그 앞은 더 넓은 평야였다. 옥상에 올라간 우리는  탁 트인 뷰에 반해 버리고 말았다.  그때 느낀것 같다.

이집이다!!



  조용하고 경치좋은 시골마을이었지만, 고속도로와 근처 산업단지가 멀지 않았다. 근처 시내(면내) 와는 차로 10분, 학교와 마트는 차로 3분 우리 농장과는 차로 5분,   그때부터 나의 머릿속은 그 집생각으로 꽉찼다. 하지만 쉽게 계약을 할 수가 없었다.  25년된 집 수리비는 만만치 않아보였다. 게다가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가 언제 팔릴지는 모를 일이었다.


   부동산 호가가 올라 가격은 좋아졌지만, 집팔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필 천안이 바로 며칠전 부동산 조정구역으로 묶여 대출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 사모님~~ 쉽지 않아졌어요. 요즘 손님이 뜸하네~~!!


긍정이 아닌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오다니...

천안은 몇년전부터 아파트 공급 과잉의 부작용을 겪고 있었다. 사람보다 집이 많은 도시!

몇년전에도 집을 팔려 내놨다가 결국 팔지못한 경험이 있어서 더욱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난 이미 그집 앓이를 하고 있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 진다고 했던가.


갑자기 우리집을 보겠다고 하루에 세팀의 손님이 왔다. 집을 내놓은지 삼일째되는 날이었다

그래 !!  결심 !!  


" 나 오늘 집 판다 "


남편에게 선언을 했다.

혼자 기도도 했다.


" 우리아이들이 그 집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세요."


 정성을  다해 집안을 깨끗히 청소했다.


나는 오늘 집을 팔거니까 .......


  세팀이 우리집을 보고 간날, 아직 계약을 못하고 있던 시골집의 부동산에 전화를 했다.

" 잔금을 3월14일날 줘도 될까요? 그렇게 해주신다면, 집을 살 수 있습니다. "


 무슨 확신으로 그런 말을 했던걸까.  그땐 우리집이 계약되기 전이었다.


 아파트와달리 보통 한달안에는 주택잔금을 줘야 한다는 부동산아저씨의 말과 , 아직 아파트 매매이야기가 오고가기 전의 상황이었지만, 나는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 집을 사고 싶다 !!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날 늦은 저녁!  세팀중, 3월 14일에 잔금을 준다고 말했던 그 손님에게 집이 팔것이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내가 말한대로 이루어졌어 ! "


"그래 우리 !!  가자 !!"




  폭풍같은 고민의 시간들이 있었지만  우린 그렇게 또 하나의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살면서 , 생각하고 말하는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파트 매매 계약금을 받은날 밤, 잠이 오질 않았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새집에 대한 기대감과 설레임 , 그리고 시골살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망설임.


  '나 잘 하고 있는 거지? '


  세상의 모든 변화는 나를 위한 것이라고 믿으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 !!  






작가의 이전글 농부의 디지털트렌스포메이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