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는 일상이었다. 온라인 수업을 봐주고 아이셋을 케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하루 하루 였다.
근처 대학교 평생 교육원에 온라인 마케팅 과정과 유튜브과정이 새로 생겼는데, 그 수업을 듣고 싶어 전단지를 보관하고 있었다. 올해 상반기 까지만 해도 코로나로 급변한 일상이 언젠가는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이 정상등교하는 날은 오지 않았고, 나는 강의를 들으러 나갈 수 없었다. 코로나로 아이들 가정보육에 바쁜 탓도 있었지만, 내가 공부를 시작 하지 못하는데는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작년, 귀농을 결심하면서 부터 마음속에 남아있던 바로 그것, 나의 꿈 ! 정체성에 대한 것이었다.
' 남편은 꿈을 찾아가는데,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
에 대한 바로 그 문제 !
남편은 주말마다 농장일에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귀농은 여전히 남편의 꿈이었고, 나는 그 꿈을 도와주고 지지해 주는 입장이었다. 나는 결정적으로 '농사' 에 가슴이 뛰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그저 한발 뒤에서 바라만 볼 뿐 이었다.남편은 그렇게 무심한듯 서있기만 하는 나의 마음을 눈치챘고, 나에게 미션을 주기 시작했다.
" 준비 잘 하고 있어 ?"
자꾸 묻는다.
계속 묻는다.
너도 이제 무언가를 시작 하라고...
한번 불이 붙으면 누구보다 열심히 빠져드는 나의 성격을 남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다. 온라인 마케팅은 실제로 사활을 걸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귀농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게 중간 도매상들이라네, 가격을 막 후려쳐서 싸게 가져가버리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중간상인들이 다 벌고 얼마나 힘들겠어 . "
" 나쁜놈들이구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사는 법일 테다.
그렇게 얼굴도 모르고, 본적도 없는 중간 상인들은 그날부터 우리부부에게 공공의 적이 되었다.
우린 우리 노동의 대가를 우리손으로 벌자 !
" 온라인 완판 어때? 할수 있겠어? "
" 그래 ! 해보자 ! "
목표를 세웠으니 이제 무언가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 더이상 코로나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내가 좋아하는 책! 책으로 독학하는 방법이다.
몇년째 육아일기를 써오던 블로그가 있었다. 스마트 스토어를 시작하기 전에 블로그부터 키워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3권주문했다. 그런데 책을 보며 혼자 하자니 영~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당연히 재미도 없었고 열정이 생길리 없다. 그때 우연찮게 블로그 이웃님의 글 하나가 첫페이지 상단에 딱! 떠있는걸 보게 되었다. 바로 온라인블로그 강의 수강생 모집공고 였다.
' 이건... 나를 위한 강의구나! '
살면서 누구나 몇번은 느껴본 적 있지 않은가 !? 나를 위해 준비된 문이 열리는 것 같은 순간을! 그때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온라인 수업이었기에 내가 원하는 시간에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집에 아이를 혼자 두고 몇시간씩 나갔다 올 필요도 없으니 더이상 코로나가 핑계일 수 없다.
" 수강료는 내가 줄게 열심히 해봐 ! "
남편이 응원해 주었다. 그동안 블로그를 해온게 몇년인데 이걸 이제와서 돈주고 따로 배운다고 생각하니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내가 그동안 블로그의 '블' 자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수업시간 내내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해온 블로그는 블로그도 아니었던 것이다. 전문적으로 블로그의 노하우를 배우자 놀랍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흥미로운 하루하루의 연속이었다.
블로그 수업은 따라가는게 결코 쉽지않았다. 블로그를 제대로 운영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실감하는 하루하루였다. 매일 이어지는 수업은 고작 30여분 뿐이었지만 이상하게 나의하루는 너무 짧았다. 강의를 듣고 글감을 찾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쓰고 편집을 하는데 몇시간씩 걸리는건 기본이었다. 그 이상의 공부와 노력도 따로 필요했다. 툴을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것이 무슨글을 올릴 것인가였다. 남들이 나에게 궁금할 일이 뭐가 있을까 ? 내가 줄 수 있는 정보성 글은 뭐가 있을까 ? 과연 나만이 쓸 수 있는 나의 코어 콘텐츠는 무엇이냔 말인가 ?!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고, 연구해야 했다. 사실 아직도 어렵다. 매일 잠이 부족했고, 아이들을 재우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도 해야 할 일들이 생각나 눈이 번쩍 떠졌다. 정말 영혼을 끌어다 쓰는 시간들이었다. 갑자기 하루 몇시간씩 키보드를 두드리자니 어깨가 결리고 팔이 빠질듯 아프기 시작했다. 수면부족과 끼니도 제대로 챙겨먹질 못해 눈밑이 떨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뾰루지가 났다.
한참 강의를 듣고 있다보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던 첫째가 나를 불렀다.
" 엄마 , 배고파 "
깜짝 놀라 시계를 보면 벌써 끼니때가 지나있었다.
" 어머 미안해, 밥을 안했네?? 어쩌지? 오늘 김밥 사먹을까 ?"
그렇게 빠듯했던 2주간의 수업이 끝났다. 몇달을 지내온 느낌이었다. 블로그수업을 마치자 마자 곧바로 다른 수업들을 연이어 들으며 공부를 이어갔다. 온라인 세상엔 내가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내가 육아에만 전념해온 사이 참 많이 변해 있었다.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고 함께 공부를 하며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귀농귀촌으로 시골에 대려간다 해도 세상에서 고립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때 한창 김미경의 리부트 붐이 일고 있었다. 참으로 시기 적절하다. 그래서 나도 결심했다.
인생을 리부트 하자 !
남편은 귀농을 시작으로 자신의 강점을 살려 스마트팜회사를 차리고 싶은 꿈이있다. 잘 어울리는 일이고,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그동안 '귀농'은 남편의 꿈이라고만 여기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내가 가진 강점과 재능을 여기에 녹여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그리고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책을 쌓아놓고 읽기 시작했다. 그동안 열심히 읽던 육아서는 잠시 내려놓았다. 세상의 트랜드를 알아야 했고, 마케팅과 브랜딩에 대해 공부했다.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 결코 쉽지가 않다는 걸 느낀다.
귀농을 하면서도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일을 찾고, 효과적으로 남편을 돕기위해 꾸준히 공부를 하고, 육아와 병행하면서도 할 수 있는 나의 영역을 발굴해 나가는 것 !.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때는 눈앞의 할 수 있는 일부터 차근 차근 해나가는 것도 방법일 테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인스타에 가족브랜딩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나의 일상을 새삼스레 돌아보고 사진을 찍으며 귀농을 준비해 나가는 일에, 갈수록 애정이 쌓이는 걸 느낀다. 지금은 농장 이름과 로고를 직접 만들고 있고, 노션으로 농장 홈페이지도 만들어 볼 계획이다.
올해가 가기전 꼭 하고싶은 또하나의 소망이 있었는데, 귀농을 결심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글로 기록해 놓고 싶었다. 부족한 글솜씨였지만 그렇게 브런치에도 도전을 했다. 소소한 행복이다.
얼마전에 슬로싱킹이라는 책을 읽는데 깊이 공감하는 글이있었다.
' 흥미 없던 연구 주제도 의식적으로 생각하면 재미가 느껴지기 시작한다. 생각이 관련 시냅스를 활성화 해서 그 일에 의미를 만들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원리로 해야 할 일을 좋아하는 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
매일 매일 온라인에서 공부를 하고, 하루 종일 브랜딩 생각만 하며 지내던 나는 이제 이 과정 모두를 좋아하게 되었고, 어느샌가 '귀농'을 나의 아이텐티티로 받아들이게 되었다.이제 더이상 남편 혼자만의 꿈이 아니다. 우리 가족 모두의 행복한 미래이고 희망이다.
새해를 딱 하루 앞둔 오늘, 귀농준비과정에 대한 기록을 마무리 할 수 있어 뿌듯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