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은 탄광촌에서 탄광을 채굴하는 굴의 끝자락이다. 곧 막장이란 갈 곳까지 간 삶의 마지막 언저리에 있는 장소가 아닌가. 더 갈 곳도 없고 더는 물러설 곳도 없는 진퇴양난의 삶의 끝자락이 아닌가.
소위 탄광촌에 모인 사람들 간에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 과거의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왔고 왜 이곳까지 흘러 왔느냐고 묻지 않는다. 기구한 삶, 굴절된 삶, 산전수전을 겪은 삶들이 있을 수 있기에 시답잖은 과거 질문은 불온시된다.
탄광촌의 주역들, 이들을 우리는 광부라고 한다.
강원도 태백시에 철암탄광역사촌이 있다.
쇠퇴한 도시를 부수어야 하나, 역사적인 유물로 남겨야 하나. 기로에서 갈등하다가 근대 탄광 지역 생활사의 역사적인 가치가 적지 않아 보존키로 했다. 태백시 탄광촌인 철암마을 전체를 역사관으로 꾸며 기억하기로 했다.
탄광은 자연의 질서에 역행하여 고투하는 노동의 현장이다. 발 딛고 사는 일상적인 지상을 벗어나 깜깜한 지하에서 헤드라이트에 불빛에 의존해서 노동한다. 암흑의 갱도에서 한줄기 불빛으로 이어가는 그들의 고된 노동은 막장 노동이다. 깊은 땅 속에서 그들이 부딪힐 위험과 감내하는 수고가, 그들의 땀범벅과 힘겨운 심호흡이 국가 경제 성장의 발판이 되었다.
넓고 확 트인 개방 공간이 아닌 좁고 폐쇄적인 공간은 인간의 심리를 억누르고 몸을 억압한다. 그곳에서의 온종일 고된 작업을 하면 인간의 심신은 당연히 쇠약하게 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서글프게 말했다. 광부들의 몸속에는 인체에 유익한 영양소가 아닌 귀중한 것들이 풍부하다고. 석탄, 철, 석회석, 중석, 흑연, 닉켈, 망간 등 귀한 광물성 자원(가루)들을 몸속 가득히 품고 있다고.
그런 연유인지 광산촌에서 광부들에게 돼지 삼겹살은 인기 메뉴였다. 힘든 채굴작업으로 지친 체력을 보전하고, 채탄 과정에 들이마신 석탄가루를 돼지기름이 씻어준다고 하여 삼겹살 구이 등을 즐겨 먹었다.
언론에도 보도되고 했던 당시 잦은 탄광 갱도 매몰 사태는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가족들의 애달픈 절규 속에 들것에 실려 나오는 희생자의 처절한 현장 모습은 가슴을 메이게 했다.
산업전사 위령탑이 있다. 기념 공간에 새겨진 희생된 광부들의 명부가 수백이 아니라 수 천이다. 전쟁터도 아니고 산업 현장에서 희생된 사람이라니 경악스럽다. 수 십 년에 이만큼 희생되었다는 사실이 광산 노동의 강도와 위험성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광부는 국가 경제 성장기에 산업 동력의 근간이자 수출 자원이던 원자재 채굴에 일생을 바쳤다. 이들의 노고는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싸우는 장병들과 하등 다를 바 없다. 광부는 갱도에서 곡괭이로 광물과 투쟁한 무명용사들이다.
파독광부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벌기 위해 머나먼 독일로 가서 몸을 불살라 번 외화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우리들의 삶의 윤택함은 일정 부분 이들의 노고와 희생에 짐짓 빚을 지고 있다.
심신을 살찌우는 따사로운 햇볕의 기운을 받는 걸 누군들 싫어할까. 푸르게 녹음진 숲 속의 맑은 공기를 한껏 들이쉬고, 숲의 영양소 피톤치드를 쬐며 숲 속 길을 힐링스럽게 누군들 거닐고 싶지 않겠는가.
자연이 주는 축복은 탄광촌 광부들의 일상생활을 비켜갔다. 그들은 태양의 빛을 뒤로하고 깊은 지하 채굴의 터널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한나절이 지고 어둑어둑 어둠이 깔릴 때 이들의 하루 노동은 끝이 난다. 갱도를 빠져나와 지상에 다다를 즈음엔 빛의 기운은 희미해져 가고 어둠이 빚어내는 주변 실루엣 그늘들이 이들을 맞는다.
광부로서의 대부분의 삶의 궤적은 그늘이었다. 곧 이들에겐 삶이 어둠이요, 생활공간이 암흑 현장이었다. 밝고 따사한 햇볕을 의도적으로 등져야 했고, 밝고 상큼한 숲의 상쾌함과 건강한 내음을 직업적으로 외면해야 했다. 삶의 많은 시간들을 하늘을 외면하고 땅 밑만을 바라보았다. 운명적으로 갱도에서 어두움과 함께, 검은 돌덩어리와 같이 부대껴야 했다.
에너지 산업의 변화로 이제 기존의 탄광은 대부분 폐광이 되었다. 탄광의 주인공인 이들도 빠르게 잊혀지고 있다. 우리네 기억에서 여운 없이 너무 빨리 지워지고 있다.
국가개발 과정에 있는 한 시대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잊혀지거나 희미해진 이름, 광부. 어둠의 공간에서 어둡게 살다 간 탄광촌의 검은 사람들. 그러나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다. 고단하고 거친 노동이었지만 그네들의 삶에는 진실과 진솔함이 담겨있다. 손쉽게, 때 묻히지 않고, 땀방울을 경시하며, 허세에 젖어 인생 태평을 누리고자 꿈꾸는 이들과는 확연하게 대비되는 그들의 생은 검은색과 땀범벅으로 얼룩졌지만 날 것 그대로의 삶 순수 그 자체였다.
검은 탄가루로 뒤범벅이 된 광부의 검은 얼굴이 뽀얀 얼굴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무겁고도 깊다.
생의 기로에서 마음이 심란할 때 탄광촌에 가볼까 보다.
인위적으로 자연의 수혜로부터 배척당한 자들이 머물러 있던 곳. 푸른 하늘과 화사한 볕을 외면하고, 푸른 녹음과 상큼한 바람을 숙명적으로 등지며 살아야 했던 곳. 땅 밑의 늘 컴컴하고 아찔한 밀폐된 공간에서 평생 땀 노동을 일군 치열했던 삶의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