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이란 함경도 사투리로 나이 많은 남성을 부르는 말이다. 토속적이면서 친근한 이북 함경도 사투리다.
그러나 속초 ‘아바이 마을’은 운명의 장난이 빚은 슬픈 마을이다.
속초 청호동에 ‘아바이 벽화 골목’이 있다. 실향의 애환을 담은 벽화 골목 거리이다. 벽화 곳곳에 실향의 그리움이 표현되어 있다.
청호동은 한국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온 이북민들이 분단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살고 있는 곳이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골목 담 벽에 잔잔히 그리움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림으로, 때로는 풍자스런 글귀로 향수를 달래고 있다. 담벼락 벽화 골목에는 격식이 없는 글과 그림들이 군데군데 수놓아져 있다. 순박하면서도 투박스럽고 유모스런 표현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북 실향민들이 맘속에 품고 있는 고향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감지하게 된다.
지금은 분단의 철조망이 이들을 갈라놓고 있지만 그리움이 언제 가는 길을 만들 것이라는 애절한 소망을 가지고 있다. 이념이나 사상이 인간의 애뜻한 그리움을 덮어버릴 수 없다. 이데올로기는 결코 인간의 정을 이길 수 없다.
잠깐의 이별을 예상하고 보따리를 둘러매고 북녘의 고향을 떠났다. 고향 마을을 뒤돌아보며 곧 돌아오겠다고 다짐했다. 아뿔싸 잠시 난리통에 몸을 피한다고 떠나온 발걸음이 분단의 고착화로 반세기의 이별, 평생의 헤어짐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혈혈단신으로 이 땅에 내려온 그들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맘을 억세게 먹어야 했다. 억척스럽게 생활했다. 극단적인 벼랑 끝 생의 처지가 그들을 강인하게 단련시켰다. 남한 땅에서 달랑 보따리 하나로 새살림, 새 출발을 해야 할 운명 앞에서 일터에서의 성실과 근면성은 생존의 필수 요건이었다. 살아가기 위해서 생업 전선에 전심전력으로 집착해야 만 했다. 생존을 위해 더는 물러설 곳도, 돌아갈 곳도 없는 삶. 더는 뒷걸음칠 수 없는 배수진의 삶의 형편이 그들의 생활력을 단단하게 무장시켰다.
이들이 이 땅에서 기필코 살아가기 위해 벌인 음식 장사 식당업은 다양한 음식거리를 창출했다. 덕분에 북한 생활에서 이들이 먹었던 음식 메뉴들이 남한 사회에서는 북한의 식문화를 접할 수 있는 별미로 자리 잡았다.
아바이 순대, 평양냉면, 함흥냉면과 같은 북한 음식들은 우리들의 미식 세계를 풍부하게 했다. 북녘땅에 고향을 둔 이들 실향민들로부터 전해오는 북한 토박이의 음식 맛을 맛볼 수 있어 행운이고, 북쪽 식문화의 면면들을 엿볼 수 있어 다행이다.
우리 사회의 음식문화는 그들이 식문화에 기여한 만큼 더욱 풍성해졌다. 분단으로 인해 언어, 생활 습관, 가치관 등은 이질적으로 변해갔지만 식문화에서는 남북한의 소통이 뜻하지 않게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쌍방향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전수된 일방향이지만.
실향민들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서는 훌쩍 한평생이 지나버린 야속한 세월을 반대로 거슬러 올라야 했다. 추억의 고향. 옛적의 정겨운 기억, 아련히 향수 젖은 생각들을 회고해야 한다. 고향의 기억들을 복원해야 한다. 잊힌 고향을 마음속에서 나마 다시금 살려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들의 그리움은 절절히 사무쳐 아픔이 되고 고통스러운 상처가 되어 한스러움으로남았다.
고향은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공간이자 끝날에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다. 때론 형편상 돌아갈지 못갈지 기약할 수는 없어도 우리들 마음 한 칸에는 늘 귀향의 그리움을 품고 있다. 인생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 그리움과 의무감으로 생의 최종 발걸음이 머물 귀착지가 고향이다. 결국 살아 다시 고향땅을 밟지 못하는 사람조차 ‘고향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통해 죽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을 갈망한다. 고향이라는 말 앞에 인간들은 얼마나 여려지고 순수해지는가.
고향을 노래하는 시들은 한결같이 그립고 애절하며 아늑하다. 고향에는 내가 태어나서 뛰놀며 자란 산, 바다, 들녘과 같은 정겨운 자연이 숨 쉬는 곳이다. 부모님, 형제자매,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앳살스럽게 부대끼던 살가운 곳이다. 그곳이 어찌 그립고 정겹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향을 잃어버린 실향민들에게 온전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고향 그리움에 몸과 마음이 지쳐 어쩌면 반쪽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자나 깨나 고향 그리움에 날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른다. 한스러운 심정으로 고향 앓이를 수많은 시간 동안 앓았을지도 모른다.
아바이 골목 벽화에는 이들의 애닮은 마음이 녹아 있다. 한 구절, 그림 한 폭이 세련되지는 못했을망정 결코 허투러지게 느껴지지 않는다. 간절함으로 다가오고 서러움으로 와닿는다.
누구나 자신의 생의 보따리가 있다. 급히 떠나야 할 위급한 상황을 맞았을 때, 불가피하게 여정을 서둘러 떠나야 할 때가 있다. 이때 최소한의 생활 도구를 챙겨 떠날 채비를 해야 한다. 자신의 보따리를 꾸려야 한다. 보따리는 떠남, 어려움, 고난, 빈곤, 좌절, 아픔과 관련된 상징성을 갖는다. 위급한 상황에서 막바지 길을 떠나기 위한 최소한의 여정 물품이다. 보따리를 안고 떠나는 길은 고달픔과 애처로움을 예고한다. 모든 이들의 인생사가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피해 갈 수 없지 않은가.
아바이 마을의 대다수 고령분들은 꿈엔들 잊을 수 없는 고향땅을 결국 다시 밟지 못했다. 남은 이들도 무정한 세월에 밀려 점점 이 땅을 떠날 생이별의 보따리를 꾸리고 있다.
고향 그리움에 사무쳤던 아바이들은 아마도 최후의 수단으로 아바이 순대에서 고향의 향수를 되새김질했을지도 모른다. 함흥냉면에서 고향 내음을 한껏 들이켰을지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