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쏘는 짜릿한 일침

영산포 홍어거리

by 갈잎의노래


모든 해산물은 신선도가 생명이다.


신선도가 그 생물의 맛과 가치를 결정한다. 싱싱할수록 횟감으로 적합하고 먹거리로 각광받는다. 여기에서 유독 한 어종만은 예외이다. 적절히 상해야만, 다시 말해 적당히 삭혀야만 생선 특유의 맛을 머금으면서 가치가 높아지는 어종이 있다. 바로 홍어이다.


홍어는 삭아야 말 그대로 진짜 홍어이다. 신선도를 잃어버려야만 홍어 특유의 매력적인 맛이 탄생하고 비로소 진가가 드러난다. 홍어는 이제 일반 횟감과는 유별나게 자극적인 맛, 독특한 향내, 특유한 식감으로 개성 있는 먹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영산포에는 홍어거리가 있다. 여기에 홍어 맛의 탄생 비화가 있다.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영산강을 따라 영산포까지 배에 실려 오는 도중에 홍어는 신선도를 잃고 숙성되어버렸다. 신선도를 잃은 생선은 속 빈 강정과 다름없을 테지만 이 과정에서 홍어 특유의 독특한 맛이 형성되었다.


숙성된 홍어는 톡 쏘는 케케 한 냄새를 풍기며 코끝을 찡 울리는 짜릿한 감각적인 맛을 선사한다. 예전에 없던 독특한 홍어의 맛이 탄생한 것이다. 처음에는 비위에 거슬리는 맛과 내음이지만 은근슬쩍 몇 번 접하다 보면 저도 모르게 이 맛에 사로잡혀버린다.


격한 내음과 자극적인 맛을 풍기는 홍어를 먹는 방법으로 ‘홍탁삼합’이 있다. 삼합은 홍어 식도락에서 찰떡궁합으로 3성 화음 같은 어울림이다. 삶은 돼지고기와 묵힌 묵은지 김치를 잘 삭힌 홍어 한토막과 함께 냅다 한입에 넣는다. 여기에 막걸리를 곁들이면 홍어의 맛 세계로 무아지경 빠져들기 시작한다. 삼합은 홍어 맛의 별미를 느껴볼 수 있는 최적의 맛 조합이다. 세 재료 모두 적절히 숙성되고 익혀져 어울려진 삼합은 말만 들어도 홍어 맛에 길들여진 식자들에게 입안 가득 침을 돌게 한다.


영산포 홍어 거리에는 영산포 역사갤러리가 있다. 그곳을 방문하면 홍어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다.

홍어 맛에 익숙하지 않으면 구리한 시골 뒷간 같은 미퀘한 향을 풍기는 홍어 질감을 참기 어렵다. 반면에 홍어 마니아들은 구린 듯 역한 홍어의 짜릿하고 자극적인 향내와 미감을 결코 잊지 못한다. 코끝을 찡 울리며 묘한 감칠맛을 내는 홍어만의 식감을 진득하게 그리워한다. 지금은 홍어 맛을 제대로 음미할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 홍어 마니아 층도 두꺼워졌다.



홍어는 다른 생선과 차별화되는 독특한 맛으로 독보적인 미식 세계의 한 영역을 점하고 있다. 신선도와 싱싱함으로 대변되는 일반적인 횟감 생선들의 가치 등급 기준을 허물어 버렸다. 홍어는 싱싱함 보다도 시간을 두고 어느 만큼 잘 삭혔느냐가 홍어 품질을 판단하는 관건이 된다


홍어의 깊은 맛이 탄생하는 과정은 마치 김치가 숙성하는 과정과 같다. 갓 절인 생배추가 양념과 버물려졌을 땐 싱싱하지만 말 그대로 생김치 맛이다. 시간의 숙성을 거처야 우려 나오는 양념이 잘 배인 깊은 맛은 없다. 숙성된 김치 맛이 되려면 버물린 후 일정한 숙성의 시간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세월 따라 조금씩 삭혀지면서 시간 따라 은근히 익혀져야만 감칠맛 나는 김치가 된다. 기다림의 시간을 감내해야만 비로소 묵은지로 거듭나는 것이다.


홍어가 시간의 섭리를 따라 깊은 맛에 도달하는 과정은 인생과 닮은 면이 있다. 인생살이도 세월을 머금으며 삶의 지혜를 발견하고 생의 이치를 깨닫는다. 산전수전을 껶으며, 죄충우돌 부대끼며 야금야금 인생을 알아간다.


홍어는 역설적이다.

홍어는 신선도를 잃어야만 비로소 농밀한 홍어 맛을 낼 수 있다. 홍어 맛의 진국은 싱싱함이 아니라 상함이고 삭혀짐에 있다. 해산물 세계에서 홍어의 위치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도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다.



삶도 때로는 그러하다. 버릴 줄 알아야 획득할 수 있고, 비워야 채울 수 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익히 알아 진부한 에디슨의 교훈이 불현듯 비범한 통찰로 다가온다. 시간의 함수 속에서 성숙된 새로움이 발견된다. 조급성에 매이면 숙성 단계에 진입할 수가 없다. 곧 깊은 이치에 다가설 수 있는 기다림의 시간 문턱을 넘어설 수 없다. 눈앞의 욕망에 휘둘리는 삶의 단타성은 꾸준함의 결실로부터 착상되는 참신한 발상을 잉태하기 어렵다.

세월 따라 자기다움을 채우고, 시간 따라 자아를 다듬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숙성은 성숙을 튀우기 위한 기다림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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