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날 산하를 뒤덮은 녹색빛의 단조로움이 울긋불긋 수려한 색채로 탈바꿈되는 과정이 경이롭다. 계절이 변화면서 내 시야에 들어오는 전경은 이전과 딴 세상이다. 소리 없이 멈춤 없이 진행되는 자연의 오묘한 운동이 경외스럽다.
가을 풍경은 맘속에 묻혀서 잊고 지냈던 사색 거리를 자꾸만 들추어낸다. 다채롭고 다양한 칼러풀한 가을빛은 단일한 빛깔을 지양한다. 다종 다양한 색깔이 어우러져 멋스러운 풍경을 펼쳐 보인다. 문득 저토록 수많은 색 가운데 나다움의 색채가 뭘까. 군중 속에 묻혀 희미해진 나의 존재의 색깔을 선명하게 떠올리고 싶다. 나를 캐묻고 나를 알아가고 싶은 욕구가 꿈틀거린다. 가을 자연의 다채로움은 이처럼 개개인이 품고 있는 저마다의 색깔이 되살아나도록 개인들을 유혹하고 부추긴다. 가을에 시가 넘치고, 사유가 깊어지며, 뭇 사색들이 꼬리를 무는 이유이다. 이처럼 가을의 형형색색은 저마다의 개성을 찾게 하는 강렬한 마술의 색이다.
가을은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가을은 정직하다. 그 무더웠던 여름날 빗방울처럼 흘렸던 노동의 노고에 결실과 수확으로 응답한다. ‘뿌린 만큼 거두리라’. 수고의 땀이 맺히지 않은 곳에 풍요로운 결실은 없다. 수고 없이 거두려는 심보에서 부정이 싹트고 부조리가 빌붙는다. 정성스러운 인풋(in-put)을 통해서만 만족한 아웃풋(out-put)을 성취할 수 있다.
과정을 등한시하고 과실, 실적, 업적, 성과 등 결과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작은 사람이다. 큰 사람은 과정에 전심전력한다.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다. 공들이지 않고 높은 탑을 세우겠다는 심상은 사상누각을 짓겠다는 것과 같다. 과정의 속재료들이 결과물의 특성을 결정한다. 곧 과정의 여하가 결실의 여부를 판가름한다.
청송의 마을 사방에 펼쳐진 사과밭에는 사과가 붉게 익어가고 있다. 나날이 사과 색채의 붉은 빛깔이 또렷해지고 있다. 어느 시처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가 그렇게 울었듯이 한그루의 빨간 사과를 열기 위해 가을의 따가운 낮 볕과 새벽 찬서리가 수많은 날들을 내리쬐고 내려앉았는가.
사과 한 개 속에는 만감의 자연이 교감되어 녹아있다. 무심코 먹는 과일 한 조각에는 자연의 깊은 섭리가 실타래처럼 엮여 있다. 그 지난한 세월 동안 햇볕, 바람, 비, 흙, 기후 등과 같은 자연의 기운을 가득 머금으면서 영글었다. 한 개의 사과에 자연의 철학이 오롯이 깃들어 있다.
가을은 담담히 겨울에 맞설 채비를 한다. 세찬 바람과 차가운 기운이 다가오고 있음을 가을은 또렷이 직시한다. 결실의 수확이 끝나면 겨울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고맙게도 가을이 가져다준 결실은 비축물로서 겨울을 이겨내는 생존 양식이 된다. 들녘, 밭두렁 곳곳에서 겨울 준비를 위한 가을걷이에 농부들은 여념 없이 바쁘다.
겨울의 세찬 기운은 우리들의 몸과 맘을 위축시킬 것이다. 사람들 간의 정이 훈훈하게 넘친다면 냉랭한 시기를 수월하게 넘길 수 있으련만 우리들은 자신할 수 없다. 모두들 그 누군가로부터의 정을 그리워하고 누구에게로의 그리움은 커져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정을 갈망하는 이들은 많지만 정을 건네는 이들이 드물기 때문인가.
가득 찬 가을 들녘은 그 자체가 인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가을의 한아름을 가슴속에 한가득 담아 일상의 사소한 이해타산은 툭툭 털어버리라 한다. 찬란한 가을볕의 따사로움으로 싸늘해진 가슴을 따스이 데워라 한다. 갖가지 색채로 물든 산야처럼 조화로움과 어울림의 소중함을 새겨라 한다. 이런 가을 마음으로 냉랭한 겨울 세파에 꿋꿋이 맞서라 한다.
자연의 한 조각인 인간이란 존재는 자연의 순리에 오만 불순하지 않아야 행복할 수 있다. 현실 인간들은 인간 중심적인 시도들을 남발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거스른다. 자연이 부여한 본질적인 존재성과 인간 본위의 현실적인 실체가 불화하고 있다. 이렇듯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스스로 소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