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속살 엿보기

옥단이길

by 갈잎의노래


목포의 깊은 도시 속살을 빨리 맛보고 싶은가.

그럼 옥단이길을 걸어보면 된다.

옥단이길은 목포의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생활 역사의 길이다. 목포의 근대역사거리가 일제와 밀접한 근대의 역사성에 치중된 역사문화공간이라면 옥단이길은 목포의 역사성과 서민의 생활상이 얽히고설킨 생활사 공간이라 볼 수 있다.


옥단이는 목포에 실존했던 인물로서 이 지역의 출신 극작가 차범석의 작품 <옥단이>에 등장하는 이름이다. 이 공간에 살았던 한 서민의 삶을 연출하여 목포의 정체성을 가다듬고자 옥단이 길이 탄생했다.



옥단이가 살았던 목원동은 목포의 원도심이다. 모든 도시의 역사는 원도심에서 출발한다. 원도심은 곧 지금의 시간에서 보면 구도심이다. 도시가 발전하고 권역이 팽창하면 신도시권이 형성되고 자연스레 옛 주민 거주지는 구도심권이 된다. 신도시권을 중심으로 발전이 가속화되면서 구도심은 상대적으로 정체되고 낙후되어 간다.


그렇지만 실제 구도심이 그 도시의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는 핵심 공간이다. 서울로 말하면 강남권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구도심 종로를 빼고는 서울의 도시 정체성을 논하기 어렵다, 구도심권이 그 도시의 핵심 가치를 담아내면서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다. 신도심권은 개발로 공간 외형은 웅장하고 화려할지 모르지만 도시의 역사성이 부재하기에 내심은 공허하다.


미국 문명이 아무리 발전했더라도 유럽처럼 오랜 기간의 역사성을 갖는 뿌리 문화가 없기 때문에 미국 문화는 속 깊은 맛이 없다. 미국 문화의 외형은 첨단을 달리고 세련미를 갖추었을지언정 수천 년의 역사 과정에 다듬어지고 성숙해진 유럽같은 깊은 향을 내뿜기는 어렵다.


목원동은 목포의 상징 유달산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바다 근방 동네이다. 목포의 초창기의 역사성을 오롯이 간직하고 오늘날까지 목포가 걸어온 역사를 증언해오는 지역이다.


옥단이길은 여기에 착안한다. 목원동을 솔직 담백하게 대변하는 탐방지 20곳을 선정하여 골목길 투어로 연결 지웠다. 이 지역 주민들의 삶에 나름의 역사적인 의미와 생활사적인 가치가 배어 있는 20곳을 선정하여 두루 둘러보도록 짜여져 있다.


20곳의 역사 공간을 탐방하기 위해 골목길을 이리저리 걷다 보면 목포의 운치가 물씬 나는 의외의 숨겨진 공간도 엿볼 수 있고, 목포만이 갖는 도시 정체성의 요소들도 발견할 수 있다.


골목길을 걸으며 옛 추억의 시절도 떠올려보고 골목길에 새겨진 지난 세월의 흔적들에서 시대를 앞서간 이들이 남긴 지난 삶의 자취들을 음미해 볼 수 있다. 탐방 장소마다 목포가 품고 있는 도시 이야기들이 다정다감하게 풀어져 나온다. 곧 살아가는 민초들의 여기저기에 아로새겨진 사건들이 역사이고 이러한 역사적인 현장과 증언물들이 역사 해석의 토대가 된다.


20곳 탐방 장소들을 찾기 위해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녀야 하기 땜에 지루할 틈이 없다.

요리조리 골목길을 투어 하면서 탐방 장소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숨은 그림 찾기 놀이처럼 재미도 솔솔하다. 건강 증진에 도움되는 적당한 워킹 운동은 덤이고.



걷기에도 적절한 코스이다. 탐방 골목길 투어 거리는 약 4.6km 정도라 소요되는 시간도 3~4시간만 하면 된다. 반나절 체험 관광에 적합하다.


탐방지에는 법정스님이 젊은 시절에 출가를 전후해 생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작은 사찰이 있는가 하면 영문을 모르면 궁금증으로 어리둥절하기 쉬운 ‘콩나물 동네’란 곳도 있다. 처음 ‘콩나물 동네’란 말을 듣고는 공간적으로 콩나물같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소박한 마을로 추측했다. 그러나 실제는 잔잔하게 애환 스토리가 깃들어 있었다.


끼니 잇기도 어려운 시절에 이 마을의 한 가족이 콩나물을 길러 팔아 그럭저럭 생계를 이어나갔다. 이를 계기로 당시 가난했던 마을 전체가 콩나물을 재배하여 팔아 가정 경제를 꾸리게 되었는데 이러한 사연으로부터 콩나물동네라고 희자되었다. 재미있는 마을 작명 스토리이자 어렵던 시절 서민들의 삶의 비애가 담긴 마을명이다.



탐방 공간 20곳에는 유적지, 역사 상징물, 생활관습, 예술터, 골목벽화 등 종류도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명칭만 들어도 대충 알만한 것들도 있지만 꼭 현장에 가서 해설판을 읽어야만 이해되는 곳이 있다, 이 가운데 ‘불종대터’, ‘구종명비’란 곳은 명칭만으론 여간 감을 잡기가 쉽지 않다.

‘불종대터‘는 불교의 사찰 터를 일컫는 줄 알았다. 근데 실은 불이 나면 타종을 울리는 종이 있는 장소란다. 웃음이 나왔다. 옛날에 불이 나면 종을 쳐서 불난 사실을 급히 알렸다. 화재 위험이 큰 지역에 설치한 일종의 화재 알림종이였던 것이다.



‘구종명비’도 직접 현장을 찾지 않으면 무엇인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언뜻 일종의 옛 유적비로 이해하기 쉬운데 실제로 일제 때 한 조선 경찰관에 대한 칭송비다.


‘구종명비에서 구종명은 사람 이름이다. 일제 때 경찰관이었다. 일제때 조선인 경찰관은 곧 친일 경찰관이고 민족적으로 지탄받던 직업이 아니었던가. 근데 구종명이란 사람은 일제시절 조선인 경찰관이었지만 여타 경찰관과는 달랐다. 당시 경찰관들은 조선인들을 통제하고 핍박하던 게 주 임무였을 텐데 이 사람은 비록 일제의 경찰관 직책을 맡고 있는 어려운 여건임에도 조선인의 권익을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한다. 후대에 이러한 그의 선공을 기리기 위해 공덕비를 세웠다. 이 자리는 목포 개항 이후 이 지역 최초 경찰서였던 경무서가 있던 곳이었다.



옥단이가 걸었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목표의 역사를 어렴풋이 나마 또롯이 되새겨 볼 수 있다. 우리 근대사의 여러 면면들에서 소회를 느낄 수 있다.


반나절에 이런 살아있는 역사 체험을 할 수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이것도 숨바꼭질 찾기처럼 재미와 운동까지 곁들여졌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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