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과의 우연한 만남

정광정혜원

by 갈잎의노래


목포 유달산 언덕 아래 작은 사찰이 하나 있다. 정광정혜원이라는 작은 절이다 . 목포를 여행할 때 다른 볼거리에 비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스쳐 지나갈 수 있다. 도심의 주택가 내에 묻힌 자그마한 사찰일 뿐이다. 절이라고 할 때 언뜻 상기되는 웅장한 면모를 갖춘 것도 아니고 주택가의 약간 큰 집터 정도의 공간에 들어선 절이다. 특별히 국보급 불상이나 탑과 같은 진귀한 유물이 안치된 유서 깊은 사찰로 보이지도 않아 탐방의 매력을 느끼기는 어렵다.


이러한 작은 사찰에 순간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우연이다. 무심코 앞을 지나다 사찰 앞에 설치된 사람 조형물을 힐끗 보았다. 아. 조형물이 다름 아닌 법정 스님이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증장년,노년층 중 카톨릭계의 김수환 추기경을 거의 알듯이 불교계의 법정 스님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법정 스님이 목포 주택가 외진 곳의 작은 절과 어떤 인연이길래 이 분의 조형물이 설치되었을까.

이 절 이름은 정광정혜원이다. 법정과 정광정혜원은 어떤 관계일까.


법정은 무소유로 유명한 승려이자 수필작가이다. 세속적이면서 탈 세속을 끊임없이 추구했던 구도자였다. 여기서 세속적이란 산속에 은둔하여 고고하게 수행에만 매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정은 중생을 계도하기 위해 은둔했던 산속에서 세속으로 끊임없이 내려왔다. 맑은 글로써 중생을 깨치고 법문으로서 세속 인간들에게 도리를 가르쳤다. 생의 한가운데서 중생들에게 부처의 깨달음을 전하고자 했다. 세속의 욕망과 욕심은 부질없음을 대중들에게 계도하면서 청빈하고 소박한 삶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이 절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일본 사찰이다. 광복 후에는 한국 불교의 정화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종교의 본질에 충실한다면 조선사찰이든, 일본 사찰이든 무엇이 문제 될까. 종교가 종교의 순수한 가치를 이탈하여 이데올로기화 되거나 정치 도구화될 때 비로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떤 종교든, 어느 지역 종교든 종교의 근본에 충실하다면 결국 사랑, 자비, 박애로 귀결되지 않을까. 이러한 가치를 벗어나면 제 아무리 종교의 위엄과 권위를 내세우더라도 알맹이 없는 껍데기 종교일 따름이다.


이 절이 법정과 인연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청년 시절이었다. 법정이 삶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고뇌하며 마침내 불교에 귀의하는 계기가 되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는 대학생 때 불교 청년회 신앙생활을 하면서 출가를 결심했다. 나중 한국 사찰의 큰 스님으로 성장한 법정이 자그마한 동네 사찰에서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조형물은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다. 왼쪽은 청년의 모습이고 오른쪽은 법정 스님이다. 왼쪽 청년의 상은 법정의 청년 때 모습이다. 젊은 청년이 삶을 번민하다가 생의 답을 찾기 위해 결국 불교에 귀의한다. 이후 평생 청빈한 구도자로서의 정진을 통해 오른쪽의 큰 스님 법정으로 재탄생했다.

왼쪽의 청년이 오른쪽의 스님으로 변신하는 인연의 장소가 이곳 정광정혜원이었던 것이다.


옆 사찰 보조 건물 벽에는 법정의 솔직 담백한 무소유의 정신이 한 줄의 문장으로 잘 표출되고 있다.

‘산이 나를 에워싸고 밭이나 갈면서 살아라 한다.’


바로 길 건너 맞은편에 카페가 하나 있다. 통상 카페명은 톡톡 튀는 어감으로 세련미가 넘치는 데 이곳의 카페 이름은 ‘구도’이다. 맞은편 정광정혜원 사찰을 마주한 카페로서 사찰에 대한 격식을 갖춘 그곳에 딱 어울리는 카페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도란 불법에서 정도(正道)를 구하는 것이다. 진리나 종교의 깨달음을 얻고자 정진하는 자세이다.


맞은편 사찰을 보며 차 한잔의 사색 속에 빠지면 좋을 듯 하다. 카페에 머무는 순간이나마 꽉 찬 세속의 속내를 내려놓고 무심하게 평정심여유를 가져봄 직하다


법정은 종교의 본질을 집요하게 추구한 스님이다. 그가 말한 어록을 보면 스스로를 매진하여 정진한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뜻밖에 그는 ‘친절’이라고 말한다. 인간에게 예의를 갖추고 배려하고 위해주는 행위가 가장 위대한 인간됨이며 종교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곧 모든 종교들의 근본은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것이다. 인간애.


살아서 소박하고 청빈하게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그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무소유의 정신을 놓지 않았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과잉 소유하거나, 불필요한 것들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법정은 승려로서 글을 통해 사회 개혁을 말하고 중생 계도를 위해 법문을 설파하는 등 세속에서의 불교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세속에 매몰되지 않았다. 수많은 시간을 산골 암자에서 은둔하며 고고하게 불법에 정진했다.


법정은 수필가로도 유명한 데 그의 글은 쉬우면서도 청량하고 담백하다. 우리 모두에게 와닿는 삶의 화두, 인생 문제들을 담담한 필치로 정갈하게 풀어가고 있다. 그의 수필집은 스테디셀러로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양식으로 사랑받으며 꾸준히 읽혔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무소유 정신의 정점을 찍는 유언장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들을 절판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그는 남겨진 글조차도 타인에게 누가 될지도 모르는 글빚이라고 여겼다. 입적하면서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홀연히 자연으로, 흔적없이 무(無)로 돌아가기를 희망했는지도 모른다.


꾸준히 사랑받았던 그의 수필집들은 책 제목에서 벌써 메세지가 읽힌다. 책이 담고 있는 주요한 액기스 몽땅을 제목 한 귀절로 암시하고 있다.

<무소유>,<버리고 떠나기>,<텅빈 충만>,<서있는 사람들>..

제목만 봐도 책의 요지는 감지된다. 과한 욕심을 버리고, 지나친 집착을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 작지만 큰 행복을 추구하라고.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 본래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다. 태어날 때도 아무것도 없었고, 세상을 떠날 때도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법정의 무소유 정신을 떠받치는 정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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