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감한 얘기들이 담겨있는 곳

묵호 ‘논골담길’

by 갈잎의노래


강원도 동해안의 대표적인 해안 도시를 떠올리라면

아마 대부분은 강릉, 속초, 동해를 꼽을 것이다.

묵호를 떠올리는 이들은 별로 없을 다.

아니 묵호라는 도시 이름이 생소한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다.



묵호는 동해안 강릉 아래쪽, 동해항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강릉과 동해에 가려서 이름이 희미해졌다.


도시는 흥망성쇠를 겪는다. 산업시설의 규모, 주요 관광지 유무, 교통망의 입지와 확충, 도시 계획 등에 따라 발전하기도 하고 쇠퇴하기도 한다.


목포가 1900년대 개항기 시절만 해도 부산, 인천에 이어 우리나라의 3대 항구 도시였다. 그만큼 상업 유통이 활발했고 도시가 컸다는 것을 시사한다. 지금은 그 당시의 명성을 많이 잃어버렸다. 전남권에서만 비교하더라도 광주는 차지하고 순천, 여수보다도 도시 인구수가 적다.

묵호도 마찬가지의 도시 운명을 겪는다. 한 때는 동해안 제1의 무역항이었다. 경제 성장기 때에 석탄과 시멘트 운송을 위해 전국의 화주와 선원들이 묵호항에 몰려들었다. 도시가 북적북적했고 지역 경제가 들썩였다. 도시 경제가 활성화되자 돈이 넘쳐나고 흥청망청 유흥 산업도 덩달아 발전했다. 얼마나 대단했던지 이 당시 호경기로 유흥 업소들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는 ‘술과 바람의 도시’라고 불렸다.



언제까지나 번창할 것 같던 묵호도 운명이 바뀐다. 80년대 초반부터 바로 인근 동해항이 성장함에 따라 쇠퇴기를 겪는다. 설상가상으로 풍부했던 명태의 어획량까지 크게 줄면서 더욱 위축된다. 지금은 강릉과 동해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가 되어 옛 명성을 추억하며 조용히 기억되고 있다.



묵호의 본래 이름은 검은 새와 바위가 많은 포구라 해서 오진(烏津)이라고 불렀다. 검은 까마귀 오자를 써서 검은 항구인 셈이다. 그런데 당시 강릉 부사 이유응이 이곳을 보고 산과 물이 멋지게 어울려져 좋은 글씨를 짓는 데 딱 좋은 경관이라 경탄하며 묵호라는 지명을 하사했다고 한다. 글씨를 쓰는 먹 묵(墨) 자를 써서 묵호(墨湖)라고 지은 것이다.


이렇듯 세월의 부침 속에 애환이 서린 묵호에는 ‘논골담길’이 있다.

도시 재생 사업으로 되살아난 산동네이다. 부산에는 감천마을이 있고, 통영에는 동피랑 벽화마을이 있다면 묵호에는 등대마을 ‘논골담길’이 있다.


묵호는 명태, 오징어 등의 어획량이 풍부했던 전통적인 어촌 도시였다.

산비탈로 이어지는 묵호진동은 어부들과 그의 가족들이 많이 살았다. 산비탈 좁은 곳곳에 블록으로 담을 올리고 판자와, 슬레이트지, 양철로 지붕을 이어 판잣집을 일구었다. 지금도 마을 위쪽 논산골에는 ‘덕장길’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어족이 풍부하던 시절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리던 때에 이 덕장에서 오징어, 대구, 가오리 등을 말렸다.



언덕 비탈에 촘촘하게 들어서 있는 판잣집 불빛들은 서글프게 찬란하다. 바다 외항선에서 보면 마치 항구 도시의 고층 빌딩 숲에서 내뿜는 불빛 같다.

옛 명성은 잃었지만 묵호항 산비탈 마을에 조성된 '논골담길' 벽화마을은 묵호의 옛 기억들을 아련히 추억한다.



‘논공담길’은 네 갈래로 아기자기하게 골목길이 조성되었다. 골목마다 특징 있는 벽화와 소품들로 묵호의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여기의 벽화와 소품들에는 논골 주민들의 삶에 좀더 다가갈 수 있는 정서와 향수가 가득 담겨 있다.


'논공담길'을 걸으면서 골목 여기저기 벽화를 감상하는 재미가 적지 않다. 그러나 논공담길 벽화에서 그림 감상에만 머무를 수 없다. 그림에서 품어져 나오는 벽화의 이야기를 읽어야 한다. 묵호의 이야기, 이곳 사람들의 삶의 사연들을 벽화의 그림과 글에서 독해해야 한다.

벽화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마을의 이야기를, 이곳을 지탱해 온 주민들의 삶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곧 진솔한 벽화 감상은 주민들의 삶의 애환에 젖어들면서 공감하는 것이다.



묵호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는 묵호의 '논공담길'은 묵호가 궁금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그들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논골1길, 논골2길, 논골3길을 찬찬히 둘러보면 비로소 묵호 사람들이 보이고 묵호의 정체가 감지된다.



도시마다 곳곳에 마을 이야기를 품은, 도시 이야기가 담긴 마을들이 있다. 이런 마을들을 속칭 ‘생활 문화재’이자 ‘마을 문화재’라 부를 수 있다. 문화재란 유적지나 유물에만 국한될 수 없다.

‘마을 문화재’들이 지역마다, 도시마다 곳곳에 보존된다면 숨 쉬는 역사와 더불어 역사를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묵호의 옛 향기를 맡으며 논골담길을 걷다 보면 어느덧 제일 높은 곳에 이른다. 이곳 정상에는 묵호항이 시원스럽게 펼쳐지며 묵호등대가 우뚝 서 있다.



묵호의 애잔한 우여곡절의 세월을 아는지 모르는지

등대는 오늘도 하염없이 먼바다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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