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탑으로는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이 불탑의 표준을 제시한다. 불상으로는 석굴암의 불상이 거의 최고의 숭고함과 불교 예술의 미를 대변한다.
불국사의 다보탑과 석가탑을 보면서 정교하고 정형화된 탑의 예술성에 감동한다. 석굴암에 있는 석가여래 좌상의 고고하며 그윽한 풍채는 기묘함과 영묘함이 어우러져 불교 예술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운주사는 영 딴판이다.
운주사는 석불석탑이 각각 1천구씩 있었던 천불천탑의 사찰로 알려져 있다. 마치 운주사 앞마당이 불상, 불탑 만들기 경연장이었던 것처럼.
지금은 석불 93구와 석탑 21기가 남아있다. 불상과 석탑의 형태와 풍채, 조각 양태가 제각각이다. 말 그대로 운주사에는 모델로 여겨질 불상이나 불탑의 형상이 아예 없는 듯하다.
불상들의 표정은 엄숙하기보다 가지각색이다. 웃고, 울고, 새침하고, 눕고,. 제각각의 불상과 석탑들의 양식이 자유분방하다. 모범으로 삼을 정형화된 틀이란 게 없다. 석공들의 자유분방한 기질 때문일까, 아니면 개방적인 운주사의 불심 풍토 때문일까.
운주사에 발을 들이면 천태만상의 불상과 불탑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보는 순간 신선한 충격과 함께 곧이어 감상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운주사는 타 사찰처럼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태도를 가지기를 재촉하지 않는다. 천차만별한 불상들의 표정들과 색다른 양식의 불탑들을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다.
현재 남아있는 불상들은 10m의 거불에서부터 수십cm 소불까지 각양각색이다.
통상적인 사찰처럼 대웅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근엄한 불상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갖가지의 용모와 제각각의 독특한 풍모를 풍기는 불상들은 운주사 경내와 주변 산야 여기저기 산개되어 있다.
불상들의 모습도 평면적이고 토속적인 얼굴 모양을 하고 있다. 신체 모양도 불상마다 제각각이다. 돌기둥 모양,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는 손과 발, 어색하면서도 규칙적인 선이 새겨진 옷 주름 등 여러모로 천차만별이다. 이 모든 게 뒤죽박죽 어우러져 운주사의 불심을 표출하고 있다.
석탑 또한이와 다르지 않다. 형태가 일관되지 않고 각양각색이다. 둥근 원형탑, 원판형탑과 같은 특이한 탑이 있는가 하면, 3층, 5층, 7층, 9층 등 크기와 층수가 제각각인 탑들이 여기저기 즐비하다. 석탑에 새겨진 무늬도 천태만상인데 기단이나 탑신 면에 엑스자(×)나, 다이아몬드 무늬(◇), 로마자( Ⅲ)와 같은 기하학적인 문형들이 새겨져 있다. 일반적으로 탑에 새기는 문양으로는 엉뚱하다.
통상 일반 사찰 경내는 근엄함이 감돈다. 근데 운주사의 사찰 분위기는 이와는 영다르다. 경내에 감도는 절의 자유로움에 짐짓 놀랐고, 사찰 탐방에 수반되는 심적 경건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어 둘러보는 내내 탐방 발걸음은 가벼웠다.
어떻게 이토록 자유로움의 극치를 달릴 수 있는가. 운주사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갔다. 자유분방함의 극치를 치닫는 운주사를 언제 누가 조성했을까. 한 학술기관에서 발굴 조사와 학술 조사를 진행했지만 운주사의 창건시대, 창견세력, 조성 배경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했다. 운주사가 더욱 신비의 베일에 쌓이는 이유이다.
달리 보면 운주사는 오히려 불심이 직시하는 세계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듯 하다. 이 땅의 인간들이 엮어가는 인간사는 뭇인간 군상들의 천태만상이 아니던가. 세상을 살아가는 한결같지 않은 인간들이 상상하는 불심의 형상도 천차만별이지 아닐까. 자신의 신념 속에 자리하는 불상과 불탑의 이미지도 개개인마다 각양각색이어야 하지 않을까. 운주사의 천불천탑은 세상사의 만물이 제각각의 형형색색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각양각색의 천불천탑은 종국에는 하나의 이치로 수렴된다. 이른바 만수일리(萬殊一理)이다. 불심(佛心)은 곧 자비인 것이다.
경내 건물 한 벽면에 붙어있는 교시 글귀가 눈앞에 선명히 다가온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경-
우리 개개인은 모든 만물의 토대가 되는 소중한 존재이다. 개체가 없으면 전체가 있을 수 없다. 개별 요소들은 집합을 구성하는 핵심 인자이다.
동시에 불교에서 개인은 인연을 매개로 타자, 전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인연이란 자아와 타자의 연결고리이다. 개별 존재는 인연이란 업보로 인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탄생했다. 인연이 있기에 나와 타인과는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 결과로 자아는 늘 변화하고 새롭게 탄생한다.
결국 인연의 고리는 가장 자아적인 게 가장 타자적이게 한다.
운주사에서 평범함에서 풍겨져 나오는 비범함을 본다.서툴고 어색함 속에 깃든 완결함의 일단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