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음과 초라함의 미학

목포 서산동 시화마을

by 갈잎의노래


목포 서산동 시화마을.

통상의 여행지와는 이질적인 여행 공간이다.

거대하거나 웅장하지 않다. 그렇다고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도 못하다. 아니면 유서 깊거나 오랜 역사성이 배인 유적지도 아니다. 그냥 작고, 낡고, 소박하다. 심지어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수수하고 조촐한 공간에서 솔솔한 감성의 아우라가 품겨져 나온다. 느리고 깊게 찬찬히 관찰한다면.



서산동 시화골목은 목포 어촌마을 서산.온금동 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담겨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이 이어온 삶을 기억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이다. 인문도시사업의 일환으로 목포의 문인, 화가. 주민들이 뜻을 모아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조성하였다.


시화 골목길은 첫째 골목, 둘째 골목, 셋째 골목 세 갈래로 나뉘어 있다. 각 골목마다 나무액자판에 아기자기하게 새겨진 시화, 수필 글들이 담벼락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담벼락에도 갖가지 사연 글귀들이 쓰여있고, 동화 그림, 풍속 스케치들도 격식 없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다. 조그만 동네 통째가 격의 없는 문예 풍속 공간이다.



서산동 시화마을은 통상 여행지의 고풍스러움이나 품격과는 거리가 멀다. 좁은 골목, 가파란 언덕길, 굴곡진 골목, 헤어진 담장, 낡은 창문, 닳아진 지붕 .. 작고 낡은 공간들의 집합체이다.

하찮고 작은 것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이처럼 보잘것없는 풍경에서 애잔한 감성이 떠오르고, 이 같은 조촐한 구조물들에서 잔잔한 미감이 되살아난다.

서산동 시화골목은 작은 행복을 찾는 소시민 여행자들의 마음을 은근히 사로잡는다..



이곳 방문을 위해서는 걷는 여행자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수도승들이 구도 입문을 위해 속세의 마음을 텅 비워야 하는 것처럼. 발품을 팔지 않고 승용차를 이용해 휘~익 훑어보는 손쉬운 감상은 시화골목에는 통하지 않는다. 아무리 성능 좋은 고급차라도 서산동 언덕배기는 오를 수 없다. 좁고, 가파르고 꼬불꼬불 굽이진 시화골목은 오로지 발걸음으로만 체험할 수 있다.



속전속결의 온갖 편리한 문명의 수단이 시화골목에는 먹히지 않는다. 애써서, 조금 힘겹게,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며 낡음과 초라함을 업신 여기지 않는 뚜벅이 여행자들에게만 길을 터준다. 마치 이곳을 살아온 사람들이 수많은 날들을 그처럼 고단함과 불편함 속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헤아려 보라는 듯.


이곳에 걸려있는 낡은 액자의 사연들은 이곳을 지킨 사람들의 질퍽한 삶의 돌아봄이다. 명색이 이름 있는 문인이나 시인들의 문예 작품들이 아니다. 이곳 사람들의 생애를 넔두리로 소소하게 풀어놓은 고백의 언어들이다. 날 것 그대로의 생애의 회상이자. 회고들이다.



여기에는 위선과 거짓이 없다. 미화하거나 채색하는 덧붙임의 가면이 없다. 적나라하게 이곳 사람들의 삶의 풍경이 아련하게 그려져 있을 뿐이다.


지금은 이곳을 떠난 주민들도 적지 않다. 마을에 빈집이 늘어나 스산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감돈다. 새롭게 정비할 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쉬움을 접는다.


서산동 벽화마을은 평이하고 초라하다. 그리 대단한 큰 볼거리가 있거나 특출한 그 무엇도 없다. 그냥 목포 한 자락 가난한 어촌 산동네 사람들의 고단했던 세상살이 풍경이 있는 공간이다. 동네 풍경은 너무나 평이하기에 담백하다. 허황한 겉치레가 없기에 진솔하다. 꾸밈이 없기에 순수하다. 허세가 애당초 들어설 여지가 없기에 진실되다.



우리는 꾸미는 화장에 익숙하다.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외향적인 화장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내실은 간과하면서 겉치장에 집착하고 실속은 없으면서 허세에 몰두한다.

서산동 벽화마을의 비루한 동네 풍경은 소탈하다. 여기에는 짐짓 허장성세의 거드름이 없다.


이곳의 풍경은 찬찬히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주마간산 격으로 휘~익 둘러보면 특별히 볼거리랄 게 없다. 무조건 걸어야 한다. 비좁은 골목길을 올라야 한다. 비탈길 계단길도 한 계단씩 느리게 오르내려야 한다. 서산동 시화마을의 감성에 한번 푹 빠져보고 싶다면 누구도 예외 없다.

비탈길을 약간의 거친 숨을 내쉬며 올라야 하고 작은 골목 사이사이를 비좁게 움직여야 한다. 이곳의 낡은 시화첩, 골목 담벼락에 적힌 이곳 사람들의 세상살이 사연들을 읽으려면 골목길 어귀나 골목 계단 한켵에 불편하게 서야 한다.



노쇠하고 낡은 구조물에 새겨진 마을 풍경들은 느린 몸짓 일수록 자세히 보인다. 한 편의 시화나 수필, 담벼락의 글귀나 그림들도 허투루 볼 수 없다. 거기에 새겨진 글귀들과 그림들에는 마을의 정체성이 오롯이 담겨있다. 이곳 사람들의 삶의 사연과 애환, 심정이 은근히 표출되고 있다.



굴곡진 골목 여기저기, 외지고 구석진 곳에도 눈길을 주어야 한다. 낡은 담벼락, 무너지고 헐린 담장, 부서져 내려앉은 집 처마, 낡아서 패인 페인트 벽칠, 빛바래고 삭은 시화 패널, 벽담에 쓰인 희미한 동화와 낙서,. 세세한 골목 현장 현장을 가볍게 스쳐가서는 안된다.


서산동 벽화마을에서는 산뜻한 아름다움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낡음의 애틋한 미학을 발견하는 곳이다. 유서 깊은 유적지의 감동 대신 쇠락해가는 마을이 간직한 삶의 애환을 느끼는 곳이다. 압도적인 멋진 뷰가 아니라 골목 곳곳에 숨겨있는 소소한 미적 풍경과 잔잔한 감동을 포착하는 곳이다.

작은 것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깨달을 수 있다. 미천하고 남루한 형색도 때론 감동적인 이유를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추함의 숭고함, 낡음의 고고함, 쇠락의 의연함.

미적 아이러니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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