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그 오묘한 정체를 음미하다

by 갈잎의노래


개성의 시대, 요즈음은 음식 취향도 가지각색이다. 이곳저곳 채널에서 먹방 프로그램은 인기리에 방영된다. 다양한 음식과 차별화된 요리법으로 개인의 음식 미감은 점점 섬세해지고 개별화되고 있다.

이 와중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들 좋아하는 음식이 있을까. 있다. 짜장면이다. 짜장면을 싫어한다거나 못 먹는다는 사람을 여태 본 적이 없다. 모름지기 짜장면은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만인의 음식이다.


짜장면은 인천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개항 이후 중국 산동에서 건너온 화교들은 인천 중구 조계지에 자리 잡았다. 이들이 생활의 방편으로 시작한 중국 요릿집에서 현지인의 입맛에 맞게 탄생시킨 요리가 짜장면이다. 막상 중국에는 한국식의 짜장면이 없다. 짜장면은 중국 면요리가 한국화 되어 이 땅에 뿌리내린 우리식 중화요리이다.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는 짜장면 박물관은 짜장면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짜장면을 처음 만들어 팔았던 화교 중화점인 공화춘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짜장면 박물관을 만들었다. 공화춘은 화강암 석축 위에 2층으로 벽돌을 쌓아 올려 만든 벽돌조 건물로서 근대 초기 화교의 생활 모습이 담겨있다. 인천시에서는 이 건물을 근대문화유산 건축물로 지정했다.



공화춘의 짜장면 박물관은 짜장면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짜장면을 모티브로 짜장면 조리법, 짜장면 조리기구, 수타에 대해 말하고 심지어 짜장면 배달통의 변천, 짜장면 가게 상호의 변화도 알려준다.


짜장면은 우리네 삶의 추억을 머금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거부감이 없고 유혹적인 짜장면의 그 오묘한 맛은 대체 어디에서 나올까. 물론 요리 솜씨가 크게 좌우하겠지만 짜장면의 맛을 탄생시키는 원재료들은 무엇일까. 궁금했던 짜장면의 속재료들을 한때 정통 중화요리의 본점 공화춘의 짜장면 박물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면(수타면), 춘장 소스를 기본으로 해서 식재료와 양념으로 양파, 대파, 호박, 돼지고기, 다진 생강, 다진 마늘, 식용유, 청주, 간장, 굴소스, 설탕, 참기름, 물녹말이 짜장면의 진정한 탄생 요소들이다. 이제 이 재료들을 어떻게 적절히 배합하여 섞고, 지지고, 볶고, 요리하느냐에 따라 짜장면의 맛 승부는 결정된다.

짜장면은 서민의 생계 음식이자 기호품이었다. 부유해진 오늘날 빈곤의 시대에 생존을 위해 섭취했던 끼니식들이 추억의 음식으로 새삼스레 소환되고 있다. 추억의 먹거리가 요즈음엔 별미거리지만 나이 지긋한 이들에겐 회한과 향수를 불러오는 음식들이다. 수제비, 칼국수, 찐빵, 국밥.. 이 범주에 짜장면은 당연히 소속된다.

짜장면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우리네 삶에 필수적인 별식 먹거리이다. 배고프던 시절 한 그릇 짜장면은 별미였고 특정인들에게는 한턱 쏘는 접대요리이기도 했다.


짜장면은 갈등의 기억도 품고 있다.

짜장면과 짬뽕의 대립.

중국집에서 짜장면과 짬뽕의 선택 갈등이 심심찮게 촉발된다.



짜장면을 먹으러 기분 좋게 중국집에 들어섰다가 메뉴판을 보자마자 갑자기 마음이 혼란스러워진다. 짜장면을 염두에 두었지만 막상 얼큰한 비주얼의 짬뽕을 보자 마음이 흔들린다. 짜장면의 욕구에 짬뽕이 순간적으로 균열을 내버렸다. 옆 테이블에서 각종 해산물이 푹 잠긴 붉그스레 한 국물을 얼큰하게 들이키며 짬뽕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짜장면에 대한 일편단심은 요동친다. 결국 초심을 잃고 짬뽕에 한 표를 던진다.

짬뽕 주문을 하자마자 곧이어 후회로 자탄한다. 순간적인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짜장면을 저버린 것에 대한 후회막심이다.

짜장면이 빠지면 중국집 식후에는 뭔가 허전하다. 중화요리군에서 짜장면은 단연 찐빵의 앙코이다.


갈등은 해소책에 대한 열망을 재촉한다. 어느 순간 짜장면과 짬뽕의 갈등이 일거에 해소되었다. 바로 짬짜면이 탄생한 것이다.


짬짜면의 등장은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사고관이 바뀌는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처럼 중화요리계에서 획기적인 사건이다. 창안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중화요리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음을 자평해도 좋다. 짬짜면은 두 칸으로 나뉜 한 용기에 짜장면 짬뽕이 반반씩 담겨 갈등 없이 두 가지 모두를 맛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중화요리점에만 가면 직면해야 했던 번민이 드디어 사라졌다.

짬짜면의 발상은 중화요리점에서 한 단계 높게 응용되고 있다. 짜장면과 짬뽕만의 조합이 아닌 짜탕(짜장면+탕수욕)으로, 짬탕(짬뽕+탕수욕)으로 나아갔다. 앞으로도 다양한 중화요리 세트 메뉴로 한층 발돋움할 여지가 충분하다. 짜꾼(짜장면+꾼만두), 짬꾼(짬뽕+꾼만두), 짜우(짜장면+우동), 짬볶(짬뽕+볶음밥), 짜볶(짜장면+볶음밥)..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여러 가지 메뉴를 두루 맛볼 수 있는 다종 조합 세트로 자가 발전할 수도 있다. 짜짬꾼(짜장면+짬뽕+꾼만두), 짬탕꾼(짬뽕+탕수육+꾼만두), 짜탕볶(짜장면+탕수육+볶음밥) 등등. 메뉴 세트 조합은 수학의 힘을 빌려야 할 만큼 무궁무진하다.


이쯤 되면 짬짜면을 최초 창안한 사람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중화요리계는 심심한 마음으로 감사패를 전달해야 할 것 같다.


짜장면은 서민 물가를 가름하는 경제 지표가 되기도 한다. 짜장면 값이 오르면 물가가 오른다는 경고였고 동시에 서민들의 지갑은 가벼워졌다. 서민들의 일상 먹거리 기호품인 짜장면은 가격면에서 돈턱이 낮아 누구나가 쉽게 먹을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서민 음식의 대명사였다. 짜장면 가격이 오르면 서민들은 긴장한다. 내손아귀에 있는 음식이 내 경제력이 미치지 못하는 가격대로 훌훌 떠나 영영 멀어질까 하는 조바심으로.

값싸고 서민스럽지만 고상한 어느 누구도 짜장면을 무시하지 못한다. 외향 꾸밈이 별로 없이 단지 요리된 짜장소스만 맛깔스럽게 면위에 가득 얹힌 짜장면 한 그릇의 유혹을 그 누구도 떨쳐내기 어렵다.

출처: 짜장면 박물관



짜장면은 비주얼이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운 음식이 아니다. 음식 내용도 그저 일반 식재료들의 평범한 조합으로 구성될 뿐이다. 그럼에도 맛의 향연이 벌어진다면 지지세력이 적지 않아 짜장면은 도전할 자격을 갖추고 있다. 어쩌면 맛의 왕중왕에 등극할 내공까지 지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평범함이 빚은 오묘한 맛의 비범함을 무기로.


불현듯 짜장면이 먹고 싶다. 곱빼기로.

좁은 동네 골목길 끝 모퉁이에 있는 작은 중국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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