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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갈잎의노래 May 30. 2024

고양이가 꿈꾸는 나라


이스탄불에서 고양이는 객이 아니다.

엄연한 도시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이곳 사람들에게 고양이는 이스탄불의 영혼과 같은 존재이다.

지나가다 고양이를 만나면 사람들은 다정한 애정을 표한다.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먹을 것을 건네기도 한다.      


아야 소피아 사원에는 고양이가 살고 있다. 고양이들은 이 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이전에 글리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가 있었다. 글리는 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거주지로 삼은 야생 길고양이였다.

     

모스크내 세정 장소. 예배드리러 본당에 들어가기 전 손.발을 씻어 몸을 청결하게 한다.


글리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아야 소피아 박물관을 방문할 때 함께 사진도 찍어 유명세를 탔다. 글리는 자연스럽게 아야 소피아 박물관의 상징적인 애완묘가 되었다. 이 고양이는 2020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아야 소피아가 박물관에서 모스크로 용도 변경됨에 따라 이곳의 길고양이들 정리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다행히도 당국의 배려로 고양이들은 예전대로 아야 소피아 박물관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스탄불 고양이들의 활동 반경은 넓다. 거리, 부둣가, 상점 계단, 사원 어느 곳이든 거칠 것  없이 돌아다닌다. 그만큼 고양이들에게 이스탄불은 기거하기에 딱 좋은 도시다.



‘가난한 이들에게 자선하라’는 무슬림 신앙인의 의무가 떠돌이 길고양이에게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것인가. 고양이도 무슬림 교리의 수혜를 받을 자격을 가진 것인가. 길고양이가 느긋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이스탄불은 그래서 팍팍한 도시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다.     


고양이에 대한 이스탄불 시민들의 애정은 고양이 동상 건립 사연에서도 찾을 수 있다.

빈번하게 도시 화단 보도에 비스듬히 기대어 쉬고 있는 길 고양이 모습이 화재가 되었다. 고양이 사진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자 고양이를 보러 오는 관광객이 몰려 왔다. 졸지에 고양이 한 마리가 지역 명소를 탄생시켰다. 그 고양이는 터키어로 통통한 동물이라는 뜻을 가진 ‘톰볼리’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이후 고양이가 병으로 숨지자 고양이의 천덕스러운 옛 모습을 그리워하는 시민들이 고양이 동상 건립 청원 운동을 벌였다. 마침내 톰볼리가 느긋하게 머물렀던 그 장소에 고양이 동상이 세워졌다.   

  


이스탄불을 거닐다 보면 동네 벽에 고양이 그림이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거리 벽 그림은 모든 이들이 개방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벽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이곳을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그림을 통해 어떤 비판적인 의견이나 아니면 호의적인 의사 표시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다. 눈에 확 띄는 그림을 통해 의도된 메세지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 공감을 유도한다.     



고양이 벽 그림은 멋스럽다. 벽 한면을 가득 채울 만큼 큼직하다. 그림에는 고양이에 대한 친밀과 호감이 배여있다. 고양이 표정도 매섭지도 않 촌스럽지도 않 코믹스런 표정으로 준수하게 그렸다. 고양이의 자태를 잘 묘사하여 입혀진 채색도 산뜻하다. 그림이 참신하면서도 애교스럽다. 이 벽 그림을 그린 화가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 같다. 섬세하게 고양이의 자태를 묘사할 수 있을 만큼 고양이에 대한 평소 이해도 깊었을 것 같다.      

     


미국이나 유럽 서구에서는 애완동물이라면 개를 떠올린다. 그만큼 애완견이 대세이다. 근데 유독 이스탄불에서는 무슨 이유로 개보다 고양이에 더욱 호의적일까. 풍설로 잠자는 무함마드를 물려는 뱀을 고양이가 막아주었다는 얘기도 전하는 등 예언자 무함마드가 고양이를 좋아했다고 한다.

     

애완견과 애완묘 중 어떤 동물을 선호하는냐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아직도 집에서 기르는 애완 동물이라 하면 태반이 반려견이지만 점차 애완 동물의 종류와 수도 늘어가는 추세이다. 그 와중에 애완묘의 수도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개는 친밀도가 느껴질 정도로 행동거지가 활달하고 주인과의 교감 의식이 뛰어나다. 주인의 의도에 잘 순응면서 주인의 지시에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특히 개들은 집을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제대로 한다. 이질적인 물질 냄새도 잘 맡고 평소와 다른 익숙치 않은 외부 물체를 잘 식별한다. 낮선 사람이나 물체의 인기척이 들리면 주의 신호로서 크게 짖는다. 주인에게 주변 상황을 살펴보고 경계하도록 주지한다.      


고양이는 개와 달리 주체적 면이 있다. 행동에서 개보다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다. 고양이는 온순하고 조용하며 과잉 움직임을 잘 취하지 않는다. 행동거지도 특유의 동작으로 민첩하지만 사뿐사뿐 움직일 뿐 크게 요란스럽지 않다. 주인과의 상호 반응적 행동은 발달하지 않았지만 주인 곁에 차분히 자리해 다정한 벗이 되어 준다.      


고양이는 크게 소리내어 짓는 법이 없다. 가냘프지만 날카로운 단발성 발성만이 있을 뿐이다. 외부의 자극에도 조용히 반응한다. 외계체에 대해서도 그냥 물끄러미 천덕스럽게 응시한다. 가끔식 필요할 경우 야생의 기질가 답게 재빠르게 움직인다.  

    


모스크에 가면 고양이들이 불쑥 불쑥 얼굴을 내 비췬다. 명색이 모스크를 지키는 든든한 지킴이로 여겨주길 바라는 걸까. 요란스러움이 없어도 고양이가 해당 장소에 뚝 버티고 있는 것 자체가 지킴이 되고 경계가 된다.        

   

피폐해가는 인간을 변화시킨 고양이도 있다. <내 어깨위의 고양이,밥>이라는 영화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한 인간과 고양이의 우정을 담은 영화이다.      


약물에 중독된 노숙자 주인공은 희망과 미래가 없는 체념된 삶에 빠져 산다. 낡은 기타 하나로 길거리 버스킹을 하면서 적선되는 돈으로 근근히 생활을 잇는다. 길가는 행인들은 몰골이 초췌하고 행색이 꾀째째한 노숙자의 노래에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우연히 집으로 찾아 든 길고양이를 운명적으로 나게 된다. 이후 버스킹도 같이 다니면서 둘은 한 가족처럼 생활한다. 고양이와 단짝이 되어 공연하는 버스킹에 사람들은 점점 흥미와 호기심을 가지면서 인증샷 열풍도 이는 등 관심은 커져간다. 점차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받으면서 주인공도 패배주의적 생활 태도를 청산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마침내 고양이와의 생활 체험을 소설로 써서 크게 히트를 치게되고 마칭내 주인공은 약물을 완전히 끊고 심기일전하여 새 삶을 펼쳐간다.      


영화 포스트

고양이의 인간 구원 스토리이다. 고양이와의 만남이 한 인간을 체념에서 희망으로 탈바꿈시켰다. 주인공 주변에 가족을 비롯해서 근친과 무수한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지만 정작 낙오자 주인공을 구한 이는 없었다.     

 

영화 속 삶의 낙오자 주인공의 현실은 지금도 우리 현실에서 그대로 복제되고 재현된다. 그럼에도 주변 수 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체념한 주인공을 치유할 처방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누가 가여운 주인공을 치유할 것인가.     


때로는 반려동물이 인간보다 더욱 인간적이다. 군중 속의 고독을 해소하기 위한 방책을 인간들로 부터는 찾을 수 없지만 우리 곁에 있는 반려 동물로 부터는 감지할 수 있다.

     


인간은 동물을 순응적으로 길들일 수는 있지만 본성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러나 좋은 반려 동물은 상처받은 주인에게 위안이 되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 심신이 허약해진 주인 인간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외로움을 이겨내고 기를 회복하는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      


인간은 셈법이 복잡하다. 순수를 가장한 이율배반적 이중성을 잠재적으로 품고 있다. 이해 관계에 눈이 멀면 즉각적으로 감정이 이성을 앞지른다. 평소 품위있게 행동하던 처신들도 자신의 이익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상황에 맛딱뜨리면 팽겨쳐버린다. 눈밖에 나는 사람들에겐 마음의 벽을 쌓고 매몰차다.      


애완 동물의 행동 지향은 단순하다. 자기를 아껴주는 사람에게 지극 정성으로 반응한다. 후덕한 사람을 해치는 표리부동한 행동 하는 경우는 없다.     


생이 나락에 떨어져서 삶이 피폐해 진다면, 누가 내 곁을 지켜줄까.

인간일까, 고양이일까,

사람일까, 동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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