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는 실제 가슴 설레는 바다 명소가 많다. 그래서 모두들 부산하면 푸르게 확 펼쳐진 바다를 떠올린다. 그러나 바다 못지않게 진짜 부산다운 데가 있다. 부산에서 부산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놓치지 않아야 할 곳, 바로 산복마을이다.
부산 산기슭에 형성된 산복마을은 현대 역사를 품고 있다. 산복마을에는 부산의 역사와 지리, 자연과 주민들의 생활사가 담겨 있다. 그곳에는 힘겨웠던 시절을 꿋꿋하게 살아온 사람들의 서사가 있다. 빈궁한 운명에 맞서 억척스럽게 살아왔던 지난 우리 이웃들이 있다.
산복마을을 올라서면 두 가지가 가슴에 휑하니 와닿는다. 하나는 산복마을 어디 곳에서나 조망되는 눈부신 부산시의 전경이다. 광경은 광대하고 감탄스럽다. 또 하나는 산복마을 주민들이 겪었을 고단했을 삶에 대한 연민이다.
여러 산복마을 가운데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특별하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지금은 유명해진 감천마을과 언덕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감천마을도 한때 낡고 낙후되어 재개발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도시 재생 사업의 성공으로 되살아나 지금은 부산의 명품 관광지가 되었다. 반면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따라서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이웃 감천마을에 비해 쓸쓸하다. 하지만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정체성은 더욱 강렬하다.
한국전쟁(1950-1953년)과 산업화(1960-1980년)를 지나오면서 부산의 인구는 급증했다. 특히 전쟁시기에 많은 피란민들은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모든 것을 고향에 두고 부산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에게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거주할 최소한의 생존 공간이 필요했다.
이들은 도심 주변의 경사지에 임시 주거지를 마련했다. 먼저 온 사람들은 기존 시가지와 가까운 낮은 지역에 주거지를 잡았고, 그 뒤에 온 사람들은 앞선 사람들보다 좀 더 높은 지역에 생활 터를 잡았다. 이후 더더욱 늦게 온 사람들은 앞서 온 사람들이 일군 집터 사이의 자투리 공간을 찾거나 더 외곽으로 밀려났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가장 외진 곳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거주지였다.
<비석문화마을에는 최민식의 사진 갤러리가 있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 있던 곳은 본래 일본 점령지 시절에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다. 해방 후 방치되었다가 부산으로 밀려온 피난민들이 이곳까지 떠밀려와 터를 잡았다. 여기에서 주거지를 만들어야 했던 피난민들에게 당시 집을 지을 건축 재료들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급기야 사람들은 묘지 위에 판자를 놓았고 비석과 상석을 건축 자재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이렇게 죽은 자의 집단 안식 터인 공동묘지에 이들은 삶터를 조성했다. 살아가야 할 숙명을 지뉜자들이 운명을 마치고 떠난 자들의 땅에 염치불구하고 들어가 형성한 마을이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이다.
공동묘지가 주거지 터라니, 묘지 위에 집을 짓다니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모진 세월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강한 생존 의지를 심어주었다. 극도로 궁핍했던 시절 몸 하나 뉘일 수 있는 한 뼘의 땅이 이들의 소망이었다. 악착같이 생존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기 위해서 발 디딜 한 평의 땅이 이들에겐 간절했다. 이 같은 냉혹한 현실 앞에서 무덤 땅이면 어떻고, 공동묘지인들 어땠으랴.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골목길을 찬찬히 걷다 보면 마을 계단이나 담장에 비석과 상석들이 군데군데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묘지에 사용된 돌들은 당시 집을 지을 때 요긴했던 건축 자재였다. 어떤 집 담벼락에서는 당시 일본인들이 새긴 문양과 글귀가 선명하게 박힌 비석들도 발견할 수 있다.
비석을 품은 집들을 보면 마음 한켠 서글퍼진다.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껴안은 이들을 마주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암울했던 지나간 역사의 실체가 나의 목전에 생생하게 현시되고 있다. 호기심 어린 비석마을의 풍경 앞에서 눈앞의 생경함과 마음속의 숙연함이 교차하고 있다.
비석문화마을은 죽은 자의 땅이 산자의 땅으로 탄생한 곳이다. 죽음의 땅을 삶의 터로 일군 사람들이 거쳐왔을 인생의 고단함을 상상해 본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내면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의 상흔이 배어 있다. 거친 역경의 시대를 온몸으로 헤쳐온 윗 선대의 삶이 응축되어 있다. 이들의 힘겨운 생활사에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돌아 된다. 이들의 거친 삶에서 암울했던 시대의 상처를 되짚어 본다.
비석문화마을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단지 죽은 자는 산 자에게 자신이 가진 한 자락의 땅을 내어놓았고, 산자는 살기 위해서 그 터에 자신의 삶의 밭을 갈았다. 죽음의 공간과 삶의 공간이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서 일체가 되었다. 죽음과 삶은 절연 관계가 아니라 소통임을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말하고 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지 않았는가. 과거의 유산이 현재에 고스란히 스며있지 않은가. 예법에 제사를 지낸다는 것, 추모한다는 의미는 떠난 이를 지금 이곳에 불러내는 의례가 아닌가. 그리고 살아생전의 그의 존재 의미를 되새김해 보는 행위가 아닌가. 좋은 기억이든, 떨치고 싶은 기억이든 떠난 이가 남긴 자취를 오늘날 나의 삶에 반추해보고자 함이 아닌가.
역사를 마주한다는 것은 과거를 대면함과 동시에 현재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이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남긴 유산은 과거 속에 봉합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끊임없이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한다. 어제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 없는 내일도 없다. 현재의 삶이란 항상 과거와 공존하는 것이고 과거와 함께 미래로 가는 길이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의 과거를 보면서 현재를 음미했다. 마을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지금의 역사를 소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