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행은 입이 즐겁다. 풍성한 먹거리로.
비빔당면, 유부전골, 밀면, 돼지국밥, 파전, 양곱창, 구포국수, 완당.. 여러 가지 음식 재료로 만든 다양한 식단이 부산 곳곳에 차려져 있다. 음식 명소를 잘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특히 바다 도시라 해산물을 재료로 하는 해산물 먹거리도 많다. 조개구이, 곰장어 구이, 물회, 부산어묵, 생선구이, 복어국, 냉채족발, 멸치쌈밥,낙지볶음..
바다 도시 부산에서는 해산물 요리가 시민들이 가장 애호하는 주류 먹거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곳저곳 다니며 부산 음식 세계를 눈여겨보면서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다름 아닌 돼지국밥 집이 엄청 많다는 점이다.
내륙 먹거리로 간주될 수 있는 돼지국밥 집이 해양 도시 부산 여기저기에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돼지국밥 집 상호도 돼지국밥 집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지방 이름을 걸고 지방의 맛을 강조하는 상호명이 있는가 하면, 가게가 위치한 지명을 따서 붙인 가게 명도 있고, 혹은 애칭 식당 상호명 간판을 내걸기도 했다.
쌍둥이 돼지 국밥, 형제돼지국밥, 합천돼지국밥, 밀양돼지국밥, 진주돼지국밥, 할매돼지국밥, , 창녕돼지국밥, 원조돼지국밥, 수영돼지국밥, 이기대돼지국밥, 장원돼지국밥, 영진돼지국밥, 명품돼지국밥, 사철돼지국밥, 돌고래돼지국밥, 웰빙돼지국밥...
돼지국밥은 돼지의 뼈와 살코기를 푹 고아 우려낸 육수에 삶은 살코기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국밥이다. 돼지국밥이 어떻게 탄생했는냐에 대해서도 여러 설이 있다.
한국 전쟁 당시 경상도 지방으로 피난 간 피난민들이 먹을 게 없어 미군 부대에서 나오는 돼지 뼈를 우려내어 먹었다는 설이 있다. 또 전통적으로 소뼈를 우린 국물을 요리에 응용한 한국 음식 문화에 빗대어 부산 지역에서는 돼지뼈로 육수를 내는 일본식 문화가 접목돼 돼지국밥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돼지국밥도 국물에 넣는 고깃살이 어떠냐에 따라 다양하게 국밥 종류가 세분화된다. 살코만을 넣어주는 돼지국밥, 살코기와 순대를 같이 넣어주는 순대국밥, 내장을 고명으로 넣어주는 내장국밥, 살코기와 내장을 같이 넣어주는 섞어국밥, 산살, 내장, 순대 모두를 섞어 한 움큼 넣어 주는 모둠국밥도 있다.
국밥에는 마늘과 고추, 양파, 쌈장이나 된장, 새우젓이 양념으로 나오고, 밑반찬으로 배추김치와 깍두기, 부추김치 등이 주로 나온다. 돼지 냄새를 없애고 얼큰한 간 맛을 위해 부추와 새우젓을 국밥에 넣어 먹는다. 면사리가 국밥에 들어있거나 따로 챙겨주기도 하는 데 한 움큼의 면사리가 국밥 내용을 풍성하게 한다.
돼지는 특유의 군내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돼지 군내를 없애기 위해 군내의 주범인 비계를 녹여내고, 국물에 녹아 나온 군내를 날리기 위해 여러 가지 고기를 넣고 오래 푹 끓여 돼지 육수를 만든다. 이런 연유로 돼지국밥집은 심야에도 쉬지 않고 24시간 영업을 하는 집이 많다. 이른 시간부터 노동을 해야 하는 서민들에게 돼지국밥은 새벽 시간에 배를 든든히 채우고 뜨거운 국물로 몸을 데운 후 일터로 나가기에 좋은 아침식사가 된다.
돼지국밥은 서민들에게 적절한 한 끼 밥이다. 서민이 먹기에 가격도 적당하고 식당 격식도 부담이 없어 편하다. 식탁 메뉴 차림도 간단해서 신속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서민들이 자주 갈 수 없는 비싼 생고기집을 대신하여 적은 비용으로 육식 단백질을 보충하기에도 그만이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우석 변호사(송강호 분)가 식사 때만 되면 자주 들락거리는 곳도 돼지국밥 집이었다. 이 국밥집이 당시 운동권 학생으로 체포되어 고초를 겪는 대학생 진우 학생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돼지국밥 집이다. 돼지국밥 집은 곧 우리네 서민들이 끼니 민생고를 해결하는 순박한 식사 공간임을 암시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이 국밥집과의 인연으로 송변호사는 국밥집 주인 아들이 연루된 사건의 변호인으로 나선다.
‘변호인’ 촬영지였던 흰여울 문화마을 담벼락에는 송우석 변호사가 진우 어머니의 간절한 요청에 변호인을 하겠다는 승낙의 명대사가 나온다.
“이런 게 어딨어요?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할게요! 변호인 하겠습니다!”
돼지국밥 집은 대체로 시장통이나 서민들이 모여사는 골목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 고급 음식점 거리에서는 잘 볼 수 없다. 부유층이 애호하는 품격 높은 식당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저 일반인들이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식당일 뿐이다.
요즈음 바깥에서 혼밥을 먹으려면 식당 선택에 조금 신경 쓰인다. 전골이나 찌개 전문 식당에서 특정 메뉴를 시키려면 최소 인원이 2인 이상되어야 주문 가능한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식당에서는 왠지 혼자 들어가 1인 메뉴를 골라 식사하기가 부담스럽다. 내 돈 내고 밥 먹는 데 슬그머니 식당 주인의 눈치를 의식하게 된다. 주인과 손님의 처지가 뒤바뀐 듯한 묘한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식당 처지에서 이해는 된다. 기본 찬을 차릴 경우 2인 이상되어야 세팅이 수월하고 경제적으로도 수지 타산이 맞을 수도 있겠다.
이런 면에서 돼지국밥 집은 혼밥 식사하기에 전혀 눈치 볼 필요가 없는 식당이다. 기본적으로 1인 차림표가 정식화되었기에 부담 없이 혼밥 식사를 할 수 있다. 국밥은 한 그릇 단위의 뚝배기 그릇으로 나오고 기본 반찬도 딱 한 그릇에 맞추어져 있다. 1인 정식 식단으로 손색없다.
바다는 거칠다. 부산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세찬 풍랑과 거센 파도와 싸워야 한다. 농사를 짓는 심성은 온순하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계절별 씨를 뿌리고 꾸준히 가꾸면서 때가 되면 자연이 가져다주는 결실을 수확하면 된다. 바다에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은 다르다. 때론 자연의 흐름에 맞서 어획해야 한다. 세찬 바다에 뛰어들어 고기를 잡고, 해초를 채취하고, 해산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생활력이 억세야 한다.
생활고에서 몸이 허기지고 마음이 지칠 때 뜨뜻한 돼지국밥 한 그릇은 순간 몸과 마음을 푹 녹인다. 특히 차가운 날씨에 전신이 움츠려질 때면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몸의 기운이 데워지고 덩달아 위축된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기운이 회복되면 다시 일상 생계를 꾸려갈 채비를 갖출 수 있다. 돼지국밥은 서민에게 일종의 원기 회복제 역할을 한다.
돼지국밥은 소뼈와 고기를 우려낸 육수를 사용하는 설렁탕과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설렁탕이 깔끔하고 잡냄새도 없으며 담백한 육수 맛을 낸다면 돼지국밥은 돼지 고유의 향취가 나는 진득한 육수에 끈끈한 맛이 배여 있다. 설렁탕이 고운 새색시 같은 은은한 맛이라면 돼지국밥은 억센 머슴 같은 거친 맛이다.
시인 최영철은 돼지국밥을 야성이 깃든 국밥이라고 말했다. 돼지국밥에는 쉰내 나는 야성이 있다고 했다. 수육 냄새가 강렬하고 짙게 국물에 배인 돼지 특유의 야성의 냄새를 느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 돼지국밥은 부산 냄새가 풀풀 나는 야성 음식이다. 타지 부산 사람들에게는 고향 그리움을 불러오는 애향 음식이다.
야성이 깃든 돼지국밥.
이제 진해 진미 해산물 요리를 제치고 부산의 대표 향토 음식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