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옥포항에서 만난 이순신

by 갈잎의노래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나이다‘(今臣戰船 尙有十二)


파직을 당하고 백의종군을 하는 이순신의 결연함이 맺혀있다.


임진 전란 통에 나라는 온천지가 도탄에 빠졌다. 조정은 왜군에 대처할 능력도, 싸우겠다는 의지도 상실한 채 도망가기에 급급했다. 이때 조선의 운명을 운명적으로 짊어질 이순신이 등장한다. 시대가 영웅을 탄생시킨다고 했던가. 영웅이 자신의 시대를 필요로 한다고 했던가.


거제 옥포항은 이순신의 최초 해전이 있었던 곳이다. 오늘날 이곳에는 웅장한 한국의 조선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3대 조선소라 일컫는 울산 현대 조선소, 거제 옥포 대우해양조선,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 가운데에 두 곳이 거제도에 있다. 이중 옥포항에는 대우해양조선이 있다. 이순신이 왜적 함선을 최초로 격파했던 곳에 당당히 우리 조선산업이 웅비하고 있다.


임진년(1592) 4월 14일 일본은 월등한 군사력과 병기로 무장한 군사 20여만 명을 이끌고 조선의 산하를 침략했다. 경상도 부산포에 침입한 왜적은 무방비 상태였던 조선의 국토를 유린하며 20여 일 만에 한성까지 쳐들어왔다. 왕과 조정은 백성을 팽개치고 한양을 버리고 명나라로 피난길에 올랐다.

국가의 운명이 절체절명에 처했을 때 조선과 일본 간의 최초의 해전이 벌어진다.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과 일본 수군이 옥포 앞바다에서 맞붙었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 함대는 일본의 도도 다카토라 함대를 섬멸한다. 왜군에게 속절없이 밀리기만 하던 당시 조선군이 일본을 격파한 승전이기에 옥포해전은 특별하다. 이를 통해 이순신 휘하의 수군이 남해안 제해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된다.


‘망령되이 움직이지 말라! 산처럼 무겁게 침착하라!’(勿令妄動 靜重如山)


옥포 해전을 개시하면서 이순신이 내린 진중한 지침이다. 이번 전투는 백척간두 위기에 처한 국가의 위기를 한고비 넘기 위해서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투이다. 군사 한 사람 한 사람 사사로이 행동해서는 안되고 전심전력을 다해 신중히 싸움에 임해야 할 것을 무겁게 명하고 있다.


조선 함대는 옥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적선 50여 척을 발견한다. 동서로 포위한 후 포구를 빠져나오려는 적선들에 맹렬한 포격을 가해 적선 26척을 격침시켰다. 큰 전과를 올린 최초의 해전 승리였다.


옥포해전의 승전은 단지 적의 전함 수십 척을 격침시켜 적의 전투력을 약화시킨 전과의 의미를 훨씬 넘어선다. 옥포해전에서 승리함으로써 조선 수군은 임진왜란에서 가장 중요시되었던 남해 제해권 장악에 유리한 고지에 선다. 또한 왜군에게 거듭 패퇴하여 전의를 상실했던 조선군의 사기를 높였고, 큰 저항 없이 조선 반도를 장악해간 기세 등등한 왜군의 전의를 떨어뜨렸다.


이순신은 천재적인 전략 전술을 펼치면서 수군 통솔을 엄정하게 지휘한 군지휘관이었다. 더불어 휘하 장병들과 수군 통영지의 주민들을 위무하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목민관이기도 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여 사익 추구나 아첨을 거부하고 공정과 절제를 중시한 원칙론자였다.

왜란 말미에는 왕을 위시한 조정에서의 핍박과 후임자의 무능한 실책으로 군사·군선들을 거의 상실한 상태에서 이순신에게 전장 지휘봉이 넘겨진다. 이러한 최악의 내. 외적인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출전한 해전이 명량해전이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


명량해전은 아군 십 여척의 배로 적군 백 여척의 전함에 당당히 맞선 이순신의 비장한 결행이었다, 당시 조선 수군 13척 대 일본 수군 133척 이상이 명량수도에서 맛 붙었다. 이기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이 해전에서도 기어코 이순신 휘하 조선 수군은 적을 대파하고 큰 승전보를 울린다. 그리고 나라를 구했다.


조선 산업의 중심지인 옥포항은 충무공 이순신의 애국심과 충절이 배인 곳이다. 옥포항에는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 블록 조립 공장 등 선박 건조에 필요한 웅장한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다. 쉼 없이 대형 컨테이너선, 대형 탱크, LNG선, LPG선 등 대형, 고급 상선들이 건조되고 있다.


이제 우리 조선 산업은 세계에 우뚝 섰다. 최고 수준의 설계, 건조 역량으로 배 만드는 기술과 수준은 세계의 최정상에 도달했다. 한때 세계 경기 침체로 조선 산업이 쇠퇴한 적도 있었지만 최근에 선박 수주 물량도 늘면서 조선 경기도 되살아나고 있다.



옥포항 인근에 세워진 옥포대첩 기념공원을 돌아보며 이순신의 발자취를 느껴본다.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봉착했을 때 나라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몸소 껴안은 장수. 임금과 조정 관리들로부터 박해와 수난을 당하면서도 끝내 묵묵히 백의종군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 군 통솔력은 엄격하면서도 병사들과 백성들의 민생은 세심하게 보살펴 준 목민관 같은 덕장(德將).

위대한 명장이자 최고의 위인으로 이순신이 한국인에게 기억되는 이유이다.


전력이 열세였던 당시 이순신은 몇 척이라도 더 조선 수군의 전함을 간절히 원했을 것이다. 이순신의 염원을 떠올리며 거제 옥포항에 펼쳐진 우리 조선 산업의 위용을 우러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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