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공곶이에서 맞은

by 갈잎의노래

여행은 미지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경이로운 곳을 체험하게 된다.


내발로 직접 찾아가 본 장소 중에 경탄을 금치 못할 불가사의한 곳들이 있다. 인간의 경지로 어떻게 가능했을까?라는 큰 울림을 받은 현장들이 있다. 하나만 꼽으라면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 사원을 들고 싶다.

앙코르 사원은 거대한 돌로 건축된 신전이다. 거의 전체에 걸쳐 신전내·외벽에 아름다운 조각과 디테일한 예술·종교적 문형을 새겨놓았다. 나무에 새겨도 쉽지 않을 것 같은 정교한 조각들이 돌 구조물 표면에 섬세하게 입체적인 부조 양식으로 새겨져 있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조각 기술을 뛰어넘는 듯이 보였다.

인간의 위대성은 예술 작품을 통해 발견할 수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앙코르 사원 조각들이 집단적인 장인들의 작품이었다고 본다면

한 개인의 열정과 끈기가 얼마나 큰 일을 이룰 수 있는가를 거제도에서 또 한 번 실감했다.

매미성 구조물과 공곶이 화원에서.


매미성 건축물은 한 시민의 작업으로 시작되었다. 2003년 태풍으로 경작지를 소실한 후 자연재해로부터 작물을 지키기 위해 축대 쌓기를 시작한다. 처음에는 미관을 고려하지 않고 시멘트 콘크리트 벽돌 등을 쌓았지만 점차 미관을 고려해 화강암으로 바꾸고 성곽처럼 쌓기 시작했다. 조금씩 쌓아가는 중에 형체를 다듬게 되고 지금은 서양 중세 성의 축소판처럼 예쁘고 아담한 성채가 되었다. 십수 년간의 긴 시간에 걸쳐 한 사람의 집념과 끈기 있는 노동으로 일구어낸 구조물이다.


매미성과 함께 또 한 편의 인간 승리 드라마는 공곶이 화원에서 찾을 수 있다.

공곶이는 거제도 일운면 예구마을 포구에서 산비탈을 따라 동쪽 20여분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 척박한 땅을 한 노부부가 평생 피땀 흘려 꽃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마을 산택 중에 공곶이 경관에 탄복한 강명식, 지상악 부부는 1969년 공곶이에 터를 잡았다. 가파르고 척박한 산비탈 지형이라 농기계는 아예 이용할 수 없는 지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미와 삽, 곡괭이로 손수 밭을 일구고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꿨다. 오로지 순수하게 땀방울이 맺힌 손노동으로 농원을 일구었다. 산비탈 아래 바다 해변 언덕에 위치한 농원 곳곳에 노부부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거의 없다.


4만 평에 이르는 넓은 땅에 심어진 나무와 꽃만 해도 동백나무, 종려나무, 수선화 등 50여 종에 이른다. 겨울철엔 동백꽃으로 물들고 3월~4월이면 수선화와 설유화가 만개한다. 공곶이는 꽃과 식물을 사랑하는 한 인간의 열정이 이루어낸 생명의 숲이 되었다.


봄을 알리는 많은 꽃들이 있다. 시골 마을 곳곳을 노랗게 물들이는 개나리가 있고 산등성이를 붉게 물들이는 진달래가 있다. 은은한 향기를 뿜는 매화, 화사한 복사꽃이 있고 청순한 목련도 봄에 활짝 핀다.

그러나 공곶이의 봄의 전령사는 수선화다. 수선화는 자기에 대한 지극한 사랑의 꽃이다.

수선화의 꽃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스라는 청년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그리스 신화에 목동 나르시스는 호숫가에서 물속에 비친 아름다운 사람을 보게 된다. 그 사람이 물에 비친 자신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물속의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 결국 물속에 비친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과 깊은 사랑에 빠져 물속으로 들어가 숨을 거둔다. 나르시스가 있던 자리에서 꽃이 피어났고 그것이 수선화(narcissus)이다.

수선화가 활짝 핀 공곶이는 곧 지극한 ‘자기 사랑’의 장소이다.


만개하는 아름다운 자연농원 공곶이는 교통이 불편하고 인적이 드문 곳이라 세인들에게 감추어져 있었다. 그 후 2005년 종려나무 숲 영화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관광 명소가 되었다. 지금은 거제 8경에도 선정되었다.

공곶이 아래에는 몽돌해변이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멀찍이나마 감상할 수 있다. 몽돌소리를 머금은 파도와 새들의 노랫소리는 이곳을 방문하는 이의 세상 시름을 어루만지며 식혀준다.


외비탈을 지나 해안가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꽃밭을 보면서 이 넓은 화원을 한 부부가 일구어냈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인간의 열정과 끈기가 이룰 수 있는 결실이 어디까지일까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의 공곶이는 이를 일구어낸 노부부의 지난한 수고가 배어 있는 곳이다.

다른 누군가의 땀의 노동 덕분에 우리가 지금 누릴 수 있다는 게 감사하고 미안하다.


한 카페 입구 푯말 글귀가 맘 속에 들어온다.

‘행복은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가 아니라 여행 중에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다. 삶을 산다는 것은 과정이다. 인간은 살아가는 과정에 희로애락을 맛보며 생로병사의 운명을 맞는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 순간순간들이 의미가 있고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과 사람들이 소중한 것이다.


공곶이에서 봄의 향취를 흠뻑 맡았다,

강렬한 봄의 상큼함을 흡입했다.

운이 좋게도 공곶이에서 맞이하는 봄은 그냥 봄이 아니었다.

봄의 기운을 한가득 머금은 봄다운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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